공소장 변경 없이 법원 직권 가중처벌 "부당한 판결"
피해자가 같더라도 범행 수법이 다르면 별개 범죄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최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 등을 받는 A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여행대행업체 대표인 A씨는 2011년 1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원금 손실이 없어 안전하다"며 항공권 블록사업 투자를 유도해 B씨 등을 포함해 피해자 21명으로부터 109차례에 걸쳐 30여억 원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크루즈 여행사업을 위해 B씨로부터 4억 9,000여만 원을 빌렸다가 갚지 않은 혐의도 받았다. 항공권 블록사업은 항공사로부터 항공권의 특정 구간을 매우 싼 값에 대량 구매해 성수기에 여행사들에 비싼 가격에 판매하는 투자 기법이다.
1심은 A씨의 죄가 인정된다고 보고 징역 13년의 중형(서울중앙지법 7년·서울동부지법 6년)을 선고했다. 사건을 병합한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일부 투자금을 반환했다는 점을 참작해 징역 10년으로 형량을 소폭 줄였다.
대법원에선 항소심 재판부가 직권으로 특경가법상 사기 혐의를 적용한 게 타당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B씨에 대한 항공권 블록사업 투자금 및 크루즈 여행사업 차용금 사기 혐의에 대해선 특경가법이 아닌 형법상 사기죄를 적용해 A씨를 추가 기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추가 기소 부분을 이미 기소된 혐의와 합쳐 포괄일죄로 판단하고 공소장을 변경하지 않은 채 특경가법상 사기죄를 적용해 판결했다.
대법원은 항소심 재판부가 법리를 오해했다고 봤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같더라도 범행 방법이 동일하지 않으면 포괄일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포괄일죄는 동일한 범죄행위가 수 차례 반복되거나 연속된 경우, 전체를 하나의 범죄행위로 보고 처벌하는 것을 뜻한다.
대법원은 항소심 재판부가 A씨에 대한 직권으로 특경가법상 사기 혐의를 적용한 것에 대해서도 "(형법상 사기죄가 아니라) 형이 더 무거운 형량으로 처단하는 건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 불이익을 초래하므로 허용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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