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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가 무거워야 일을 잘한다?

입력
2022.05.24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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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한기 ‘세일즈맨’(문학사상 2022 5월호)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에 따라 대기업의 사옥출근 비율이 늘고 있다. 18일 오후 전면 재택근무가 종료된 서울 강남구 포스코에서 직원들이 점심식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에 따라 대기업의 사옥출근 비율이 늘고 있다. 18일 오후 전면 재택근무가 종료된 서울 강남구 포스코에서 직원들이 점심식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코로나 이후 의미가 재정립된 것 중 대표적인 게 바로 ‘일’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재택 근무를 경험하게 됐고, 회사에 성실하게 출근해야지만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됐다. 물론 재택근무의 효용에 대한 생각은 업종별로, 고용자의 신념에 따라 저마다 복잡하다. 어떤 기업은 거리두기가 종료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다시 회사 출근을 지시했고, 어떤 기업은 아예 근무 장소를 직원의 자율에 맡긴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성실함을 증명하는 표현이었던 ‘무거운 엉덩이’는 확실히 근로자의 ‘장점’ 항목에서 더 이상 큰 영역을 차지하지 않게 된 것처럼 보인다. 문학사상 5월호에 실린 오한기의 단편소설 ‘세일즈맨’은 바로 이 '엉덩이'와 '일'과의 역학관계를 통해 오늘날 일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소설가인 ‘나’는 미국에 있는 연인을 만나러 가기 위해 미국 문학상을 타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물론 최소 5년은 걸릴 여정이라 그전에 일단 일자리를 구하기로 한다. 그러나 애매한 경력과 나이를 가진 소설가에게 구직시장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고, 면접 자리에서는 매번 소설가라는 편견에서 비롯된 질문이 이어질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아파트 단지 게시판에서 ‘궁둥이를 대여합니다’라는 구인 공고를 보게 된다. 1년 계약직에 근무시간은 9~18시, 점심 식대도 제공하는 데다 대여료는 무려 월 100만 원이라는 솔깃한 공고다. 나는 ‘엉덩이 채용’ 이력서를 쓰기 위해 ‘탄력이 좋다’ ‘변비에 걸린 경험이 없다’ ‘소설가라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다’ 등 ‘내 엉덩이만의 강점’을 떠올린다.

오한기 소설가. 문학사상 제공

오한기 소설가. 문학사상 제공


그러나 채용의 목적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떤 것이 필승 전략인지 알 수 없고, 나는 차라리 소설가답게 이력서에 ‘엉덩이에 대해 사유하는 여정’을 쓰기로 한다. 그렇게 합격해 향한 면접 장소에는 정장의 엉덩이 부분만 뚫은 사람부터 ‘엉덩이 탐정’ 캐릭터 가면을 쓰고 온 사람까지 다양한 구직자들이 모여 있다. 그러나 정작, 이 수상한 엉덩이 채용의 전말은 온갖 상상을 한 게 무색하게도 평범하다. 대기업 10년 차 과장이라는 40대 미혼 남성인 고용주는 ‘엉덩이 채용’의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힌다.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 중인데 대신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대출을 받아서 암호 화폐에 투자하고 있는데 이자를 갚기 위해 배달 알바를 병행해야 한다(…) 상사가 자리에 있냐고 물으면 착석 중이라고 답하면 된다. 이게 전부다. 자리를 뜨지 않은 채 대답만 충실히 하면 뭘 해도 상관없다.”

이야기의 마지막, 고용주는 배달을 떠나고 소설가인 ‘나’는 그의 자리에 앉아 상사의 메시지에 대신 답한다. 일의 성취를 엉덩이로만 증명하면 됐던 날들은 끝났다는 것이 오히려 재택근무의 맹점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한국일보도 거리두기가 종료된 직후 재택근무를 해제했다. 이 기사는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무실에 나와서 쓰고 있다. 현재 시각은 오후 5시고 퇴근시간까지는 아직 한 시간이 남아 있다. 남은 한 시간 동안 나는…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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