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죽음을 앞둔 아버지에게" 시청자 울린 조현철 부친상

알림

"죽음을 앞둔 아버지에게" 시청자 울린 조현철 부친상

입력
2022.05.22 22:11
수정
2022.05.23 10:14
0 0

'공해연구회' 만든 명지대 명예교수 조중래씨
22일 별세

배우 조현철. 프레인TPC 제공

배우 조현철. 프레인TPC 제공

시상식에서 죽음을 앞둔 아버지를 위해 쓴 편지를 읽어 시청자의 안타까움을 산 배우 조현철(36)이 22일 부친상을 당했다.

소속사 프레인TPC 관계자는 "조현철의 아버지가 투병 중 병세가 악화해 이날 별세했다"고 밝혔다. 조현철의 아버지 고 조중래씨는 명지대 교통공학과 명예교수로, 교통공학분야 전문가이자 환경운동가이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도시교통연구부장, 서울메트로 이사 등을 지냈고, '공해연구회'를 만들었다. 빈소는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24일.

배우 조현철이 6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제58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은 뒤 투병 중인 아버지 얘기를 하고 있다. JTBC 방송 캡처

배우 조현철이 6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제58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은 뒤 투병 중인 아버지 얘기를 하고 있다. JTBC 방송 캡처

조현철의 아버지를 향한 마음은 각별했다. 조현철은 6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제58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은 뒤 "죽음을 앞둔 아버지에게 조금 용기를 드리고자 잠시 시간을 할애하겠다"며 아버지에게 인사를 전했다.

아들의 사부곡은 애틋했다. "어... 아빠가 지금 보고 있을지 모르겠는데, 아빠가 눈을 조금만 돌리면 마당 창밖으로 빨간 꽃이 보이잖아. 그거 할머니야. 할머니가 거기 있으니까 아빠가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진통제를 맞고 병상에 누워 있다는 아버지를 향해 띄운 전상서로 아들은 '또 다른 시작'을 얘기했다. "죽음이라는 게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냥 단순히 존재 양식의 변화인 거잖아." TV를 통해 자기의 모습을 지켜볼 아버지를 위해 조현철은 끝까지 엷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아버지 얘기로 시작한 배우는 시상식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죽음'을 하나둘씩 호명했다.

조현철은 "작년 한 해 동안 내 첫 단편영화였던 '너와 나'라는 작품을 찍으면서, 난 분명히 세월호 아이들이 여기에 있다는 거를 느낄 수 있었어"라고 말했다. 조현철은 지난해 독립영화 '너와 나'를 제작했다. 10대들의 수학여행 전날 꿈 같은 사랑 이야기를 영화로 제작하면서 2014년 4월 16일 세상을 떠난 세월호 아이들을 늘 떠올렸다는 얘기다.

조현철은 이 작품을 6년 동안 준비했다. 이 과정에서 세상이 편견과 착취로 짓밟은 약자들을 그는 가슴에 품었다. 조현철은 "'너와 나'를 준비하는 6년이란 시간 동안 내게 아주 중요했던 이름들"이라며 고 박길래 선생, 김용균, 변희수 등의 이름을 또박또박 불렀다. 박 선생은 연탄공장 밀집 지역에서 살다 석탄 먼지가 폐에 쌓이는 진폐증 진단을 받고 열네 번의 재판을 받고서야 공해병을 인정받았다. 이 재판을 도운 이가 바로 조현철의 큰아버지인 고 조영래 변호사다.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과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 참여하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결성을 주도하는 등 평생 자유와 인권을 위해 싸웠던 법조인이다. 조현철이 언급한 김군은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때 사망한 비정규직 노동자고, 변씨는 지난해 세상을 떠난 성소수자 군인이었다.

조현철의 이 묵직한 수상 소감에 시상식은 엄숙해졌다. "잠시만요, 기억이 안 나네요". 긴장한 조현철은 손에 쥔 꽃을 바닥에 내려놓고 상의 오른쪽 주머니에 수첩을 꺼냈고, 이경택군의 이름을 얘기했다. 이군은 2005년 숨졌고, 유족은 "학교폭력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조현철에 이날 트로피를 안겨준 넷플릭스 드라마 'D.P.'도 군에서 대물림되는 폭력을 꼬집는 작품이었다.

조현철은 "외할아버지, 할머니, 외삼촌, 아랑쓰"라며 "나는 이들이 분명히 죽은 뒤에도 여기 있다고 믿어, 그러니까 아빠 무서워하지 말고 마지막 시간 아름답게 잘 보냈으면 좋겠어"라고 수상 소감을 마무리했다.

그들만의 화려한 시상식에 세상에서 관심받지 못하고 스러진 이름들이 소환되자 당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엔 공감의 글이 쏟아졌다.

누리꾼 'chanseo***'은 "조현철 배우의 수상소감 듣다가 울컥 눈물이 났다. 김용균군, 변희수 하사, 세월호 아이들을 꼽을 줄 상상도 못했다. 아버지의 죽음을 앞두고 아버지에게 '죽음은 존재방식의 변화'라고 말한 부분 또한 울컥했다"고, 누리꾼 'sollb***'은 "스스로의 자리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지 끊임없이 생각하는 사람이 돼야지. 계속 목소리 내는 사람이 돼야지. 조현철 같은 사람들 덕에 세상이 조금은 환해져"라고 SNS에 글을 올렸다.

조현철은 2010년 단편영화 '척추측만'으로 데뷔했다. 드라마 '호텔 델루나'와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통해 이름을 알린 뒤 'D.P.'에서 현병대 일병 조석봉 역을 맡아 지속적인 폭행과 괴롭힘으로 무너져 내리는 청년을 묵직하게 연기해 배우로서 조명받았다.

양승준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