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창단 '강북올앤뉴' 부자 8쌍 소속
화합과 성적을 동시에, 비결은 '패밀리십'
2020년부터 2년 연속 하반기 일요리그 우승
"저 팀은 연령대가 다양하네. 대체 무슨 팀이야?"
사회인 야구 경기 시작 전, 양 팀이 도열을 하는 그 순간부터 서로에 대한 탐색전은 시작된다. 그때마다 상대팀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아무리 봐도 서 있는 선수들의 평균 나이대를 알 수 없어서다. 몇 명은 아직 앳된 티가 나 대학생 팀인가 싶다가도 또 다른 몇 명은 꾹 눌러쓴 모자 밑으로 주름이 번져있기도 하다. 경기 결과야 이길 때도, 질 때도 있지만 이 도깨비팀의 분위기는 늘 최고다. 파이팅이 끊이질 않는다. 흥분과 격려가 뒤섞인 아우성 속에서는 종종 이런 말도 흘러나온다.
"아들도 안타 쳤는데 이번에는 아빠가 보여줘야지."
2008년에 대구서 창단된 부자(父子)야구단 강북Old&New(강북올앤뉴)의 이야기다. 이곳에는 김남주(45) 강민(18), 김상기(51) 성헌·정헌(24·21), 박명호(52) 정현(23), 박성식(43) 준석(15), 서명원(50) 동희(18), 서병태(53) 보규·보성(26·24), 이준영(51) 주현(23), 장진호(48) 현세(21) 등 총 8쌍의 부자가 주축이다. 한때는 아들들이 4명이나 나라의 부름을 받고 떠나 팀 운영이 힘든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군복무 중인 서보성씨와 장현세씨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매주 주말마다 운동장에 나와 승부라는 드라마를 써가고 있다.
사춘기 아들과의 물꼬는 야구로부터
아들을 가진 아버지라면 으레 꿈꾸는 것들이 있다. 함께 목욕탕을 가는 것은 기본, 운동을 좋아하는 아버지라면 아들과 함께 땀 흘리기를 소망한다.
강북올앤뉴 아버지들은 야구 덕분에 아들의 사춘기 극복은 물론 부자관계도 끈끈해졌다고 얘기한다. 시작은 초등학생 때 시작한 리틀야구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로 전국적인 야구붐이 일어나자 아버지들은 야구를 하고 싶어하는 아들의 손을 잡고 리틀야구팀 '강북리틀'로 들어갔다. 당시 주말마다 아들들은 리틀야구팀에서, 아버지는 아버지끼리 만든 사회인 야구팀 '강북파파스'(강북올앤뉴 전신)에서 야구를 했다. 서로의 플레이를 응원하고 평일에는 훈련도 같이하며 야구는 부자의 연결고리가 됐다.
아들 강민 씨가 초등학교 2학년일 때부터 함께 야구를 다닌 김남주 씨는 "평일에는 일이 바빠 아들에게 전혀 신경을 못 써줬지만 주말만이라도 함께 야구를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았다"며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야구 덕에 꿈을 이룬 것 같다"며 흐뭇해했다.
제도적으로 리틀야구는 중학교 1학년까지만 뛸 수 있다. 주말마다 가던 야구를 가지 않자 자연스레 부자는 함께 있는 시간이 줄어 들었다. 아버지들은 아들과의 추억을 더 쌓고 싶었고, 아들들은 주말에 하는 야구를 통해 쌓인 학업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은 2012년 주니어야구팀 '위너스'(현 강북주니어)를 창단했다. 청소년이 참가해 성인이 되기 전까지 뛸 수 있는 팀을 직접 만들어낸 것이다. 그 덕에 부자의 주말야구는 계속 됐다.
이준영 강북올앤뉴 감독은 "곧잘 얘기를 잘하던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한 뒤로 점점 거리를 두는 것이 느껴졌다"며 "다행히 야구라는 매개체가 있어 대화의 물꼬를 트고 진로 등 다른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해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들 주현씨 역시 "당시에 일주일 동안 아버지와 얘기를 안 하다가도 야구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함께 그날 경기분석을 하며 침묵을 깬 적이 있었다"며 "아버지도 주말에 쉬고 싶은 마음이 크셨을 텐데 나를 위해 애써주신 것에 감사드린다"며 화답했다.
함께 야구장을 갔지만 줄곧 다른 팀에서 뛰던 이들은 지난 2015년 성인이 된 서보규씨의 강북올앤뉴 가입을 시작으로 한 팀에서 뛰게 됐다. 처음엔 소속된 부자가 한두 쌍에 불과했지만 매년 성인이 된 아들들이 줄지어 가입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강북올앤뉴를 통해 부자관계가 애틋해질 뿐만 아니라 재미는 덤이다. 김상기 성헌 부자가 배터리를 이루고 그 뒤에는 박명호 정현 부자가 키스톤콤비를 맡는다. 서로 간의 호흡이 중요한 포지션인 만큼 부자 사이의 시너지가 뜨겁다.
안정된 제구력을 바탕으로 팀의 에이스를 맡고 있는 김성헌씨는 "나도 모르게 아버지가 포수를 보실 때는 평소보다 어깨에 더 힘이 들어간다"며 "블로킹이 필요한 변화구를 던질 때 다른 사람에게는 미안할 때도 있지만 아버지한테는 편하게 던질 수 있어서 좋다"며 웃었다.
분위기와 성적을 동시에, 비결은 패밀리십
강북올앤뉴 구성원 대부분은 강북리틀 때부터 10년 넘게 서로를 지켜봐 온 사이다. 그렇다보니 야구장 안과 밖에서 모두가 우리 아들, 우리 아버지가 된다. 회식은 물론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는 삼삼오오 모여 특훈도 한다.
탁월한 수비력으로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하는 박정현 씨는 "아버님들이 웬만한 야구교실보다 더 꼼꼼히 훈련을 시켜주신다"며 "물론 가끔은 과도한 부담을 주셔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지만 그마저도 다 팀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래 본 사이인 만큼 아버지들은 아버지끼리, 아들들은 아들끼리 모임도 자주 갖는다. 서로 단순한 팀원으로 생각하기보단 땀방울을 흘리며 희로애락을 함께한 형제로 생각해서다. 아들 중 맏형인 서보규씨의 역할이 컸다. 아버지들과 아들들 사이의 소통창구는 물론 동생들의 진로는 물론 연애상담까지 도왔다. 그는 늘 동생들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술 한 잔을 사곤 하는데 서씨 역시 학생 신분이다 보니 비용이 부담이 될 법도 했다. 하지만 서씨는 오히려 동생들이 연락올 때마다 되려 반가웠다. 그는 "다들 제가 돈을 많이 쓴 줄 알지만 사실 동생들을 만나러 가는 날은 아버님들의 용돈이 쏟아지는 날"이라며 "늘 '술값 걱정 없이 찐한 우정을 나누라'며 격려해주신다"고 말했다.
친목 비용 지원에 가장 적극적인 장진호 씨는 "세상이 점점 개인화가 심해지고 있지만 우리 애들이 사람 간에 나누는 따뜻한 정을 잊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돈독한 분위기는 곧장 팀 성적으로 이어진다. 강북올앤뉴는 2020년, 2021년 2년 연속 하반기 일요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단단한 팀워크 덕분이었다.
강북올앤뉴를 오랫동안 지켜봐온 권오기 대구광역시북구야구소프트볼협회장은 "강북올앤뉴를 시작으로 미성년이라도 아버지가 함께 운동장에 있을 경우에는 사회인야구 리그를 뛰게끔 하는 조항을 만들었다"며 "이로 인해 아버지와 아들이 한 팀에서 뛰는 팀들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지만 강북올앤뉴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라며 강북올앤뉴를 치켜세웠다.
야구장으로 향하는 차 운전대의 주인이 바뀔 만큼의 세월이 지났다. 박명호 강북올앤뉴 단장은 이제 새로운 목표를 위해 달려갈 참이다.
"강북올앤뉴의 지향점은 바로 가족입니다. 다음에 우리 애들도 자식이 생기면 3대가 함께 뛰는 팀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 누구보다 제가 운동을 열심히 해야겠죠?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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