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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벌어졌던 남녀 공용 화장실, 얼마나 바뀌었을까

입력
2022.05.17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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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지자체, 건물주 대상 화장실 분리 예산 지원
대다수 지자체 참여 저조… 보조금 그대로 반납도
공중화장실 강력범죄 매년 100건 이상 '위험 여전'

서울의 한 지하철 역사에 설치된 화장실 안내 픽토그램.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의 한 지하철 역사에 설치된 화장실 안내 픽토그램. 한국일보 자료사진

# 지난 13일 오후 10시 서울 광진구 건대 맛의거리에 있는 술집. 금요일 밤 회식을 즐기는 이들로 북적이는 이 가게에선 화장실을 이용하려다가 불편을 겪는 상황이 수차례 연출됐다. 한 여자 손님은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남자 손님이 있는 걸 보고 화들짝 놀라 문을 세게 닫았다. 매장 내 화장실이 남녀 공용 1곳이었던 탓에 이런 상황이 반복된 것이다. 손님 서경우(33)씨는 "남녀 공용 화장실을 쓰면 서로가 불편하고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까 봐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 12일 서울 영등포구 상가 화장실. 길 건너편에 영등포구청이 있어 유동인구가 많고 입주한 가게도 많지만, 화장실이 남녀 공용이고 시설도 낡아 이용에 불편이 컸다. 무엇보다 치안 문제를 우려하는 여성들의 고충이 컸다. 하지만 건물주가 2020년 영등포구청이 지원하는 남녀 공용 화장실 분리 사업에 참여하면서 이용객 만족도가 높아졌다. 김모(56)씨는 "들어가기 꺼려지던 곳이었는데 공사 이후 깔끔해졌다"며 "남녀 구분도 되면서 더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남녀공용화장실 분리 지원 사업에 참여하기 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상가 화장실 전경(왼쪽 사진). 남녀공용화장실 분리지원 사업 이후 화장실 전경. 영등포구청 제공·김재현 기자

남녀공용화장실 분리 지원 사업에 참여하기 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상가 화장실 전경(왼쪽 사진). 남녀공용화장실 분리지원 사업 이후 화장실 전경. 영등포구청 제공·김재현 기자

2016년 5월 17일 30대 남성이 초면의 20대 여성을 흉기로 무참히 살해한 '강남역 살인사건'은 노래방 건물의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발생했다. 참사 이후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민간 건물 화장실을 대상으로 남녀 공간 분리 및 환경 개선 사업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위생상 불편을 덜고 무엇보다 여성을 노리는 우범지대를 없애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사업이지만, 진척도는 여전히 저조하다. 참여 건물이 없어 지원금을 고스란히 반납하는 지자체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16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행정안전부는 2019년 예산 22억여 원을 투입해 남녀 공용 화장실 분리 지원 사업을 진행했다. 지자체에 보조금을 내려보냈고, 각 지자체는 남녀 화장실이 분리돼 있지 않은 민간 건물의 참여를 독려했다. 참여 건물엔 남녀 분리 500만 원, 층간 분리 100만 원, 안전시설 설치 50만 원의 공사비를 지원하되 일정 기간 개방 화장실로 운영하는 조건이었다.

서울의 경우 정부 예산 지원 이후에도 자치구별로 자체 예산으로 남녀 화장실 분리 사업을 이어가면서 지난해까지 총 35개 건물이 참여했다. 올해의 경우 영등포구가 이달 26일까지 참여 건물을 모집하고 있고, 강남구도 화장실 분리 2곳, 안전시설 설치 4곳 등을 계획하고 있다. 출입구 분리에 예산 지원을 받으면 1년간, 층간 분리 또는 안전시설 설치 땐 6개월간 화장실을 개방해야 하는 의무가 따른다.

하지만 다른 지자체에선 화장실 분리 사업이 일회성으로 그친 사례가 많았다. 화장실을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고 환경도 개선할 수 있다는 이점을 내세웠지만, 사업에 참여하겠다는 건물이 의외로 적었기 때문이다. 관련 보조금을 고스란히 반납해야 했다는 강원 지역 지자체 관계자는 "건물 대다수가 남녀 화장실 분리 지원에 큰 장점을 느끼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건물주들은 지원을 받을 경우 공사비 일부를 자부담해야 하는 데다 의무 개방에 따른 관리 부담이 따르는 점을 제약으로 꼽았다. 여기에 코로나19 상황이 지속되면서 시설 투자에 나설 여력이 부족했던 점도 이유로 꼽았다. 서울 마포구의 건물주는 "공실 때문에 월세 수입도 크게 줄어든 상황"이라며 "성중립 화장실 이야기도 나오는 마당에 굳이 화장실을 분리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2016년 시민들이 서울 강남역 부근에서 살해된 피해자를 추모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6년 시민들이 서울 강남역 부근에서 살해된 피해자를 추모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시민단체 등에선 공중 화장실이 주요 범죄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인 만큼 사회적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6~2020년 전국 공중화장실에서 발생한 연간 범죄 건수는 각각 2,050건, 2,081건, 4,224건, 4,529건, 3,852건이다. 이 가운데 살인, 강도, 강간, 강제추행 등 강력범죄는 169건, 138건, 190건, 168건, 143건으로 매년 100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표혜령 화장실문화시민연대 대표는 "법적 규제가 있다면 가장 효과적이겠지만, 건물주와 시민들의 인식 개선이 먼저"라며 "남녀 화장실 분리를 통해 누구나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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