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프랑코 필리핀 국립대 교수 인터뷰]
"독재자 부친 외교정책 기조 따를 가능성 높아"
"중국 우선에, 미국과는 군사동맹 유지할 것"
"한국 내 7만 필리핀인 인권 문제 관심 가져야"
필리핀 16대 대통령 선거가 혼전 끝에 막을 내렸다.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 마르코스 주니어 후보가 비공식 집계에서 압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득표 2위 레니 로브레도 후보는 지난 13일 "이번 선거 결과가 우리의 꿈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자"며 사실상 패배선언을 했다. 16일 현재 선거부정 항의시위 등 현지의 대선 후유증은 여전하지만, 독재가문의 부활은 이제 기정사실이다.
필리핀의 과거 회귀에 중국과 미국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필리핀은 남중국해(서필리핀해) 영유권 분쟁의 당사국이자 인도-태평양 지역 미중 대치의 최전선에 위치한 나라다. 마르코스 신정권의 외교방향에 따라 이 지역의 갈등은 증폭 혹은 안정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시진핑 국가주석과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1일 마르코스 후보와 경쟁적으로 접촉해 '협력 강화'를 약속하기도 했다.
마르코스 후보의 외교 기조는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난 바 없다. 다만 장 엔시나스-프랑코(Jean S. Encinas-Franco) 필리핀 국립대학 정치학 교수는 지난 10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마르코스 가문의 '독재 DNA'를 중심으로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장 프랑코 교수와의 일문일답.
-마르코스 후보의 압승 배경은 무엇인가.
"마르코스 후보는 2016년 부통령 선거 패배 이후 철저히 준비했다. 독재 시대를 낭만적으로 그려냈고, 인기가 여전한 로드리고 두테르테 현 대통령의 딸과도 동맹을 구축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필리핀에 30만 명이 넘는 실업자가 생기는 등 불안이 현재를 잠식한 것 역시 호재였다. 시민들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강력한 리더십으로의 회귀를 선택한 것이다."
-마르코스 후보의 외교 기조가 모호하다.
"언론과의 접촉을 계속 피했던 마르코스 후보는 외교 분야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몇몇 유세 현장에서 ‘외교를 포함,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모든 정책은 항상 옳았고 나도 그것을 따를 것’이라고 말한 부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부친처럼 철저히 국내 정치에 기준해 외교정책의 방향을 설정하겠다는 의미다. 실제 그는 최근까지도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독재가문의 유전자 힘은 강하다."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도 함께 당선됐다. 결국 현 정권의 외교정책이 이어지는 것 아닌가.
"마르코스-두테르테 선거동맹 이전, 마르코스 측이 현 정권의 미중 외교 등 정책 방향을 수용키로 합의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마르코스 후보도 측근들에게 '중국과 우호를 이어가되, 서필리핀해에 대한 중국의 독단적 태도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들었다. 중국이 필리핀 경제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점을 감안하면, 마르코스의 외교는 일단 친중(親中)으로 설정될 가능성이 높다."
-필리핀이 미국을 멀리하기도 어렵지 않나.
"마르코스 후보는 '피플파워' 민주화 운동으로 미국 하와이로 도주한 후인 1995년 현지 법원으로부터 부정축재 자산 지급명령 판결을 받았다. 판결에 불복한 그는 아직도 미국으로 갈 수 없다. 당연히 후보 본인의 반미(反美) 감정도 강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현존하는 중국의 위협 때문에, 그가 완전히 미국을 배척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마르코스 정권은 지난달 재개된 미군과의 합동 군사훈련(발리카탄) 등 선택적 이슈에서 미국을 활용하며 정권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마르코스 정부가 출범하면 한국과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한국은 필리핀에 많은 공적개발원조(ODA)를 주고 있으며 경제ㆍ문화 측면에서의 교류도 깊다. 필리핀을 지배했던 일본과 달리 역사적인 악감정도 없다. 마르코스 후보가 한국에 대한 기조를 바꿀 이유 역시 보이지 않는다. 다만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한국 내 7만 필리핀인의 인권 문제는 양국 사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한국과 필리핀의 멋진 관계가 유지되려면, 이 부분에 대한 관심과 노력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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