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생과고 김영국 교사와 아프간 학생들
"한국어 배우기와 음식 적응이 가장 걱정"
"제때 진로 선택할 수 있게 적응 교육 최선"
“선생님 고맙습니다”
스승의 날을 앞둔 12일 울산 동구 화정동 울산생활과학고 다문화 교실에서는 작지만 의미 있는 깜짝 이벤트가 열렸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남녀 학생 4명은 "선생님 사랑해요" "행복한 스승의 날 되세요"라고 쓴 도화지를 들고 선생님께 감사의 말을 전달했다. 아프간 학생들에게 축하와 감사를 받는 주인공은 바로 이 학교 다문화반 담임인 김영국(63) 교사다.
32년 차 교사가 만난 특별한 아이들
영어 담당인 김 교사는 정년퇴직을 했다가 올해 다시 교편을 잡은 기간제 교사다. 작년 2월 울산외고에서 교직을 마쳤지만, 아프간 특별기여자의 자녀들을 위한 교사 모집에 응시해 1년 만에 다시 교단에 선 것이다.
김 교사가 담당하는 4명의 학생들은 지난해 8월 한국으로 온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의 아이들이다.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간 내전에서 승리하자, 한국대사관 등에서 일하던 아프간인들은 서방 국가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 몰렸다. 결국 이들은 한국 정부의 구출작전 끝에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피신했고, 이곳에서 안전하게 둥지를 틀 수 있었다.
아무 연고도 없는 낯선 땅에서 새로운 문화를 익히려 노력하는 아프간 아이들과 함께한 지난 몇 달은, 31년 경력 베테랑 교사에게도 매우 새롭고 신선한 경험이었다. 김 교사는 "이 아이들이 배울 곳이라곤 학교밖에 없다 보니, 하나라도 더 익히려고 눈이 반짝반짝하는 게 보인다"며 "저도 저절로 가르칠 맛이 난다"고 말했다.
스승의 가장 큰 걱정, 아이들의 말과 밥
그의 소망은 아이들이 하루빨리 한국어를 익히는 것. 김 교사는 “언어는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바탕이자 소통을 위한 기본 도구”라며 “언어장벽을 제때 해소하지 않으면 마음의 장벽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김 교사의 또 다른 관심사는 아이들의 '밥' 문제다. 한국과 아프간의 음식문화가 달라 적응이 어려운 상황에서, 지난달 아이들은 라마단을 맞아 아예 식음을 전폐했다. 김 교사는 “4명 모두 독실한 무슬림(이슬람교도)이라 내내 굶더라”며 “한창 클 나이에 제대로 못 먹다 보니 2명은 아파서 결석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다음 달 나흘간의 제주 수학여행을 앞두고 걱정이 앞서는 부분도 식사 문제다. 김 교사는 “아이들의 첫 여행이 불편하지 않도록 먹을 음식을 따로 준비해 갈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때마침 만난 고1 여학생 스이에라(16)에게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스이에라는 “부라면”이라고 답했다. 수차례 되묻다 결국 글로 써보라며 내민 종이엔 ‘푸 라면'(신라면의 辛을 한글처럼 읽은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제서야 이해한 김교사는 폭소를 터트렸고, 스이에라도 한참을 따라 웃었다.
학습·식사·등하교까지 챙기는 선생님
스승으로서는 아이들의 빠른 적응을 바라지만, 사실 기간제 교사로서 아이들의 빠른 적응은 다문화반의 해산, 곧 김 교사의 근로계약 종료를 의미한다. 그럼에도 김 교사는 한시라도 빨리 아이들을 적응시켜 일반 학급에 돌려보내는 일에 공을 쏟는다. 쉬는 시간에는 교실에서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점심때는 급식소에서 식사를 도우며, 하교 때는 버스정류장까지 따라가 아이들이 집에 가는 버스를 맞게 타는지를 살핀다.
아이들의 미래도 걱정거리다. 김 교사는 “보통 직업계고는 2학년 때 진로를 결정하는데 기존 재학생들과 비교하면 아프간 친구들(고1, 고2)은 늦은 편”이라며 “지금의 적응 속도가 아이들 미래를 좌우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면 잠시도 가만 있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초·중·고에 다니는 다문화 가정 학생 수는 16만58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학생 중 다문화 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은 3%다. 김 교사는 “다문화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긴 했지만 여전히 사회 곳곳에 차별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라며 대화를 나누는 내내 “출신에 관계없이 아이들은 모두 소중한 존재”라고 강조했다.
“30년이 넘는 교직생활에서 깨달은 교육의 키워드는 사랑과 공평입니다. 모든 아이들은 사랑받을 권리가 있고,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아프간 네 학생에겐 한국에서 만난 첫 스승으로 평생 기억될 김영국 교사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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