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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도 ‘구로구 사건’ 판박이… 마약 살인 공통점은 ‘잔혹·예측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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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도 ‘구로구 사건’ 판박이… 마약 살인 공통점은 ‘잔혹·예측 불가’

입력
2022.05.13 04: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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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1, 2심 선고 마약살인 판결문 분석>
2012년 생면부지 피해자 벽돌로 살해
망상 사로잡혀 가까운 가족 상대 범행
심신미약으로 징역 2년형 그친 경우도
전문가들 "유사 범죄 증가할 가능성"

서울 구로구 구로동 한 아파트 입구 폐쇄회로(CC)TV에 촬영된 무차별 폭행 사건 현장. 가해자인 40대 남성 A씨가 피해자 B씨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

서울 구로구 구로동 한 아파트 입구 폐쇄회로(CC)TV에 촬영된 무차별 폭행 사건 현장. 가해자인 40대 남성 A씨가 피해자 B씨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

서울 구로구 아파트 앞 거리에서 필로폰을 투약한 40대 남성이 지나가던 60대 남성을 도로 경계석 등으로 무차별 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을 두고 마약 투약에서 비롯하는 강력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판결문 분석 결과 마약 환각 상태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은 △돌발적이라 피해자가 대비하기 어렵고 △범행 수법이 잔혹하고 치명적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에 따라 유사 사건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며 마약 범죄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0년치 마약 살인 사건 판결문 살펴보니

12일 한국일보가 2012년부터 올해까지 10년간 1, 2심 선고가 이뤄진 살인 사건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마약 환각 상태에서 범행이 일어난 사건은 14건이었다. 투약한 약물은 이번 구로구 사건처럼 필로폰이 7건으로 가장 많았고 본드가 4건, LSD·대마·진통제가 각각 1건이었다.

2012년 2월 발생한 진주 아파트 벽돌 살인 사건은 구로구 사건과 여러 면에서 흡사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85세였던 피해 여성 A씨는 사건 당일 아침 거주지인 경남 진주시 아파트 계단에서 운동을 하다가 일면식도 없는 B씨에게 맞아 숨졌다. B씨는 인근 건물 옥상에서 톨루엔 성분이 들어 있는 본드를 흡입한 채 이동하다가 A씨를 발견한 뒤 현장에 있던 시멘트 벽돌로 머리를 내리치고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낮 카페에서 음료수 마시다 친형 살해

마약 살인 사건 대부분에서 피해자는 창졸간에 잔혹한 폭력에 노출됐다. C씨는 2020년 11월 새벽 본드를 마시고 투숙하던 모텔 주인(66세 여성)을 때려 살해했다. C씨는 수사기관 조사에서 환각 상태에서 복도에 있는 화분을 걷어찼다가 피해자가 화를 냈고 카운터 내 폐쇄회로(CC)TV가 자신을 감시하려는 장치라고 오인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D씨는 필로폰을 투약한 직후인 2019년 6월 한낮 카페에서 아이스티를 마시며 형과 대화하다가 갑자기 흉기로 형을 10여 차례 찔렀다. 카페 주인과 손님들은 눈앞에서 범행 장면을 목도해야 했다. E씨는 필로폰 투약 상태에서 갑자기 동창을 칼로 살해하고 여자친구 눈을 주방 집게로 찔렀다.

F씨는 2014년 12월 오전 본드를 들이마신 뒤 '나와 여동생만 없으면 부모님이 편하게 살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자고 있던 21세 지체장애 여동생을 깨워 집에 있던 바벨과 원판으로 내리쳤다.

모친·이모 살해하고도 징역 2년에 그치기도

14개 사건 피고인의 평균 형량은 19.5년이었다. 형법 10조 3항은 '위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 상실을 야기한 경우엔 면책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사건에 따라선 선고량이 징역 6년과 2년에 그친 경우도 있었다.

징역 2년형을 받은 G씨는 2016년 8월 집에서 이모와 어머니를 살해했다. LSD 투약 상태에서 60세 이모가 '옷 속에 뭔가 숨기고 있다'는 망상에 빠져 이모를 식칼로 공격했고 이를 말리려던 어머니도 살해했다. G씨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에 몸이 지배당해 다른 동작을 할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외국인 학교를 모범적으로 졸업하고 범죄 전과 없이 밝게 자라온 학생"이라며 "친구가 가져온 마약을 호기심으로 투약했다"며 선처 이유를 밝혔다.

79세 아버지를 살해해 6년형을 받은 H씨에 대해 재판부는 "심신 미약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고 피고인 가족들이 선처를 호소하는 점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2017년 6월 "아버지 몸에 붙은 귀신을 떼어 내기 위해" 아버지의 목을 졸랐다.

여동생을 살해한 F씨 역시 심신미약 상태였던 점,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을 참작받아 징역 12년형을 받았다. 그는 자신에게 마약을 판 판매자가 기소될 수 있도록 수사기관에 협조한 점도 인정받았다.

"환각 땐 완력 3, 4배 강해지는 효과"

전문가들은 마약 살인이 갈수록 증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바깥 활동이 자유로워지면서 억눌렸던 마약 수요가 폭발할 가능성이 있고 이에 따른 강력 범죄도 늘어날 수 있다"면서 "경찰은 마약 범죄를 우선순위에 두고 인력 개편을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선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독성학과장은 "진정 작용이 일어나는 모르핀이나 펜타민은 정확한 동작을 하기 힘든 반면 필로폰은 심박수가 증가하고 완력이 3, 4배가량 증가하는 특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원다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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