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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프와 노끈의 부활

입력
2022.05.13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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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지난달 13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제각기 장바구니를 들고 있다. 뉴스1

지난달 13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제각기 장바구니를 들고 있다. 뉴스1

2020년 1월 1일. 마트에서 포장용 테이프와 플라스틱 끈이 사라졌다. 당시 마트를 찾은 소비자들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시민 불편하게 하는 방법도 가지가지" "환경보호 취지는 공감하지만 너무 불편하다"는 등 불만을 쏟아냈고, 일부는 박스 테이프를 내놓으라며 마트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환경부가 소비자들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형마트 내 포장용 테이프와 플라스틱 끈을 없앤 건 빠르게 늘어가는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당시 대형마트 3사의 연간 포장용 테이프와 노끈 소비량은 각각 202만7,489개, 35만3,260개에 달했다. 약 1만여㎡에 달하는 상암구장 857개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양이다. 게다가 포장용 테이프가 붙은 종이상자는 재활용이 어렵다.

우려와 달리 소비자들은 빠르게 적응했다. 대형마트들이 도입한 다회용 대형 장바구니가 톡톡한 역할을 했다. 이제는 집집마다 대형마트 대형 장바구니가 1, 2개씩 있기 마련이고, 대형마트에 갈 때 이를 챙겨가는 게 당연해졌다. 소비자들은 포장용 테이프와 플라스틱 끈이 없는 것에 익숙해졌고, 이 두 가지가 없다고 해서 항의하는 사람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정부는 이달 초 느닷없이 '소비자 편의성'을 들먹이며 테이프와 플라스틱 끈 재배치를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업계와 소비자 모두 "이미 적응했는데, 이제와서 굳이 왜?"라는 반응을 보일 정도로 황당한 정책이다. 환경을 위한다는 건 어느 정도의 불편을 감수하는 것인데, 그들이 말하는 '편의성'은 지나치게 억지스럽다.

앞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이와 관련해 친환경 소재 종이테이프가 개발돼 재활용 측면에서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면면을 뜯어보면 그렇지 않다. 종이테이프 또한 접착제 성분이 있어서 플라스틱 테이프처럼 박스와 분리해 버려야 한다. 종이를 재활용할 때 접착제 성분이 있으면 재생종이의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종이테이프를 쓴다 해서 무조건 친환경이라 보기도 어려운 이유다.

무엇보다 '자원순환'의 사전적 정의는 '생산이나 소비 등의 경제 활동에 수반해 불필요한 것이 발생하지만 그들을 폐기하지 않고 이용하는 것'이다. 안 써도 되는 건 최대한 쓰지 않고, 어쩌다 나오는 불필요한 것들을 최대한 재활용하자는 것이지 일단 쓸 만큼 다 쓰고 나서 남는 걸 재활용하는 게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플라스틱 쓰레기를 비롯한 각종 쓰레기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2020년 생활폐기물은 1,730만 톤으로, 전년 대비 3.3% 늘었다. 2021년 발생량은 이보다 더 많이 늘었을 것으로 전망된다. 쓰레기 매립지는 포화상태가 된 지 오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쓰레기 발생량 자체를 줄이려는 노력이다. 편리성을 명분 삼아 쓰레기 배출 증가에 눈을 감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새 정부는 인수위 시절, 매장 내 일회용 플라스틱 컵 사용 금지 정책도 뒤엎었다. 덕분에 지난달 초부터 금지됐어야 할 매장 내 일회용 플라스틱 컵 사용이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 혹여나 전 정권 정책 뒤집기에만 골몰하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환경은 정치적 도구나 목적이 될 수 없다. 가야 할 방향이 정해져있음에도 애써 눈감고 다른 곳으로 향하는 건 우리 모두의 삶을 망가뜨리는 지름길이다.

김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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