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호 연출 손잡은 서울시무용단의 신작
전통과 현대 조화 이룬 의상·음악·안무
속도감에 매스게임 같은 군무로 지루함 깨
두 줄로 선 남성 무용수 18명이 긴 검을 움직인다. 고갯짓으로 갓 양쪽에 붙은 긴 깃까지 움직이면 춤사위의 엄숙함도 증폭된다. 한 다리를 살포시 올리는 동작에서도 익숙한 전통무용의 느린 박자감이 느껴진다. 장면이 전환되고 속도감이 느껴지는 음악이 나오자 무용수의 옷차림도 안무도 180도 바뀐다. 소복 같은 간소한 옷을 입은 남녀 무용수 55명이 대열을 맞춰 빠르게 춤을 추는 것이 매스게임을 연상케 한다. 바닥을 훑는 등의 동작이 현대무용 같으면서도, 또 현대무용이라기엔 음악도 손짓도 한국적이다.
'일무'가 2022년 관객을 위해 새롭게 탄생했다. 일무는 조선 시대 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신 종묘에서 거행되는 종묘제례악 속 무용이다. 우리나라 무형문화재 1호이자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인류무형유산인 종묘제례악은 기악과 노래, 춤이 함께 하는 종합예술로서 가치가 높지만, 안타깝게도 일반 관객에게는 지루한 전통 의식일 뿐이다. 패션디자이너로서 영화 미술, 무용 연출 등 장르를 넘나드는 활동으로 유명한 정구호는 일무의 현대적 감각을 발견하고 이런 편견을 깨보자고 결심했다. 오는 19일 개막하는 서울시무용단의 신작 '일무(佾舞)'의 시작이다.
1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서울시무용단 연습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연출을 맡은 정구호는 이번 작품의 시작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구성이나 요소가 현대적 감각이 있어서 기존 민속무와는 다른 형태가 보였어요. 현대무용과 접목하는 작업이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먼저 제안했죠." 전통 그대로 보전하는 작업은 국립국악원 등이 하고 있으니 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현재의 관객과 소통해보자는 생각에서다.
공연은 1막 일무연구, 2막 궁중무연구, 3막 신일무 등 총 3막으로 구성됐다. 극이 진행될수록 전통에서 현대로 넘어간다. 3막은 특히 제목 그대로 현대 무용 안무가인 김성훈, 김재덕과 정혜진 서울시무용단장이 함께 새롭게 만든 작품이다. 이날 무용단은 전통성이 강한 1막 3장과 재해석을 전면에 내세운 3막 2장을 시연해 두 무대의 극명한 대비를 보여줬다. 3막의 매스게임 같은 군무는 좁은 연습실이 아닌 대극장 무대 전체(36m*33m)에서 펼쳐졌을 때 충분히 관객을 압도할 만했다.
의상, 음악, 안무 전반에서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찾아보는 것도 이 공연의 재미다. 음악 작업을 맡은 김재덕 안무가는 "전통악기 같으면서 서양악기 같은, 모호성을 표현해 관객이 컨템퍼러리성(현대성)을 느끼길 바랐다"고 설명했다. 음악의 시작과 끝에 주로 쓰는 전통악기 어를 드럼의 하이햇처럼 박자를 타는 악기로 사용하는 식이다. 3막 신일무의 경우 일무의 핵심인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합, 그 통일성을 기반으로 두되 바닥에 누워서 추는 춤처럼 한국 전통무용에서 볼 수 없는 요소를 넣어 새로움을 더했다. 공연은 19일부터 2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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