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집 '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 낸 황인찬 시인
시를 사랑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일단 시집이 한 권 필요할 것이다. 나와 꼭 맞는 시인이 누구인지 아직 알지 못한다면, 일단은 여러 시인의 주옥같은 시들만을 모아놓은 선집으로 시작해도 좋겠다. 물론 아무리 훌륭한 시들만 모아놨다 한들 내 삶과 공명하는 요소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사랑으로 향하는 여정은 험난할 수 있다. 그 여정에 다정하고 섬세한 시 선생님 한 명이 함께한다면, 누구라도 시를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황인찬(34) 시인의 첫 산문집 ‘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은 바로 그 ‘다정한 시 선생님’ 같은 책이다. 황 시인이 직접 고른 49명 시인의 시 각각에 해설 같은 에세이를 더한 것으로,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연재했던 ‘황인찬의 읽고 쓰는 삶’에 소개한 100편 중 49편을 골라 엮었다.
2010년 현대문학으로 데뷔한 후 역대 최연소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고 ‘구관조 씻기기’, ‘희지의 세계’, ‘사랑을 위한 되풀이’ 등의 시집이 2만 부 가까이 팔리며 ‘문단 아이돌’로 불려온 그다. 그간 산문집 제의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산문집 한 권을 낼 만큼 ‘나의 이야기’가 충분하지 않다” 싶어 머뭇거리던 차에 네이버오디오클립 연재 제안이 왔다. 지난 6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황 시인은 “‘시’를 통해서라면 내 이야기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시가 어렵다는 말을 듣는 게 익숙하면서도 지겨웠어요. 어려운 게 아니라 낯설어서 그런 건데. 세상의 다른 많은 어려움은 이해하기 위해 그렇게나 노력하면서, 왜 시는 그렇게 하지 않을까 싶어 답답했거든요. 그래서 이 책만큼은 낯섦을 덜어내고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었으면 했어요.”
책에서는 정지용이나 윤동주, 김소월 같은 근대 시인의 시부터 얼마 전 등단한 시인의 시까지 다양하게 소개한다. “한 걸음이라도 흠잡히지 않으려고 생존하여 갔다”(김종삼 ‘이 짧은 이야기’)는 시구를 읽은 뒤 “저에게는 착한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습니다”라고 고백하고, “나는 제주에 사는 웃기고 이상한 사람입니다”(이원하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라는 시구에서는 “한때 제가 이상한 사람이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을 정도로 혼잣말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털어놓는다.
시에 내 삶을 겹쳐 읽는 방식은 시가 한층 친숙하게 느껴지도록 한다. “시를 읽는 방식은 층위가 워낙 다양해요. 알면 알수록 읽어낼 수 있는 게 많아지죠. 하지만 시를 처음 접하는 분들한테는 ‘시에서 삶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알아차린 뒤 내 삶에서 똑같은 형상을 발견하는 게 가장 좋은 접근이죠.”
제목이 된 ‘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은 황 시인이 생각하기에 ‘시가 우리 삶에서 작동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보면 결국 내가 저 아름다움과 무관하다는 걸 알게 돼요. 우리가 어떤 의미에선 다 단절된 존재라는 걸 깨닫죠. 그렇기 때문에 좋은 시는 얼마간의 슬픔을 품고 있을 수밖에 없어요.”
책에 유독 ‘사랑시’가 많이 소개된 것도 같은 이유다. 그는 “우리가 이렇게 단절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다가가려는 시도를 포기하지 않는 게 결국 사랑의 본질이기에, 어떤 시든 결국엔 사랑의 원리를 담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시를 읽지 않아도 삶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유용한 것과는 가장 무관한 것이 시일지도 모른다. 바로 그렇기에 시가 우리 삶에 필요하다고, 그는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유용함으로 계산하는 순간 시는 순식간에 무너져 내릴 거예요. 하지만 물질적인 가치, 실용적인 영역에 속하지 않는 것들이 하는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똠양꿍을 좋아하는데, 똠양꿍 맛을 몰라도 사는 데 지장은 없었겠지만 저는 똠양꿍의 새콤매콤달콤한 맛을 알고 나서 삶이 한층 다채로워졌다고 느껴요. 시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쓸모없는 것들을 삶에 채워 넣기를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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