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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 털어 제작비 지원했던 분인데”… 강수연에 대한 추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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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 털어 제작비 지원했던 분인데”… 강수연에 대한 추억들

입력
2022.05.08 14:18
수정
2022.05.08 15:02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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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연의 빈소가 8일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돼 있다. 강수연 배우 장례위원회 제공

강수연의 빈소가 8일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돼 있다. 강수연 배우 장례위원회 제공

7일 오후 56세로 세상을 떠난 배우 강수연은 생전 주변 사람 돕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영화인들에게 지갑을 열어 용기를 북돋웠고, 막내 스태프들과도 어울리며 영화계 그늘진 곳에 관심을 두기도 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직지코드’(2017)와 ‘직지루트: 테라인코그니타’(2021)의 우광훈 감독은 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고인과의 인연을 돌아봤다. 우 감독은 “아주 오래전 (미국 아이오와주) 작은 해외 학생 영화제에 초청하면서 고인과 인연을 맺게 됐다"며 “(한국에 돌아온 후) 짜장 시켜 면만 점심에 먹고 짜장은 남겨 두었다가 밥 비벼먹고 그러던 시절에 있었던 일"이라고 했다.

2004년쯤 어느 날 고인이 우 감독을 서울 압구정 술집으로 불렀고, 처음 보는 낯선 이를 소개하며 기획 중인 단편영화에 대해 말해 보라고 했다. 동석자는 우 감독의 영화 이야기를 반신반의하며 들었지만 고인은 “독특하고 좋네! 이 아이 잘 될 아이니까 빨리 지갑 털어. 나중에 후회 말고”라며 ‘투자’를 종용했다. 결국 고인이 100만 원, 동석자가 100만 원가량을 내놓아 200만 원가량의 제작비가 단숨에 마련됐다. 고인은 “잘 찍고 시사회도 해. 이분도 초대해 드리고”라며 우 감독을 격려했다. 우 감독은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지갑 털린 분은 모 대기업 회장이었다"며 “나중에 정말 시사회까지 하고 뒤풀이 비용까지 내주셨다”고 고인의 마음 씀씀이를 기억했다.

우 감독은 이날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2000년 아무 연고 없이 연락드려 영화제 초청을 했는데 자비로 미국에 오셨다"며 “한국에 돌아온 후 단편 시나리오도 봐주며 ‘내 역할은 없냐’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진심이었던 듯하다”고 말했다. 우 감독은 “어려운 친구들을 보면 항상 도와주려 했던 배려 많고 매우 섬세한 분”이라고도 돌아봤다.

윤영미 아나운서도 이날 SNS에 글을 올려 고인의 생전 모습을 떠올렸다. 윤 아나운서는 “나의 단골집 주인에게 들은 얘기, 그녀가 종종 와 술을 마시던 식당이 장마로 물이 차 보일러가 고장 나 주인이 넋을 놓고 앉아 있는데 강수연 그녀가 들어와 연유를 묻고는 따지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수리비 600만 원을 헌사했다”라고 고인의 사연을 소개했다.

7일 세상을 떠난 배우 강수연이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시절이던 2015년 10월 21일 모습. 고인은 해외 출장을 앞두고 김포공항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당시 고인은 큰 짐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7일 세상을 떠난 배우 강수연이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시절이던 2015년 10월 21일 모습. 고인은 해외 출장을 앞두고 김포공항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당시 고인은 큰 짐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고인의 마음 씀씀이는 단지 주변 사람들에게만 미친 건 아니었다. 부산영화제 집행위원과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며 한국 영화계 발전에 힘을 쏟기도 했다. 부산영화제 집행위원 시절 기업 후원을 받기 위한 자리에 자주 참석해 힘을 보탰다. 부산영화제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이빙 벨’ 상영으로 위기에 처하자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영화계에 따르면 당시 외압을 막기 위한 방패로 몇몇 유명 영화인이 집행위원장 후보로 거론됐다. 여러 후보들의 고사 속에 고인이 집행위원장으로 나섰다.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신인 독립영화 감독들에게 유난히 관심을 쏟았다. 박진형(전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 부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영화제에 왔던 신인 감독들과 따로 송년회를 했는데, 그냥 인사치레가 아니라 다들 고인과 추억을 하나씩 만들어 갈 정도로 진심이 있었다”고 돌아봤다. 박 프로그래머는 “고인이 ‘내가 해야지, 누가 해’ 하며 시원스레 나서서 일을 하시곤 했다”며 “해외 영화인들과의 인적 관계가 생각보다 훨씬 강해 올리버 스톤 감독 등 굵직굵직한 해외 손님이 영화제를 찾는 데도 큰 힘을 쓰셨다”고도 말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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