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할 수 없는 미국’ 시대, 영리하게 대비해야 한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5일자 편집위원 칼럼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패권국 지위에 도전하는 가운데 일본이 전통적인 미일 동맹에만 목매지 않고 우방과의 연대를 폭넓게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다. 영국은 일본과 오랜 기간 국익을 함께해온 대상이다. 일본은 영국 및 호주와 방위·군사 합동훈련 등을 목적으로 입국 시 절차를 간소화하는 '원활화 협정'을 맺고 '준동맹' 수준의 관계 강화를 꾀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에 어디까지 기댈 수 있는가"
중국의 부상과 북한의 잇따른 탄도미사일 발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국제질서가 변화하는 지금 일본에선 ‘굳건한 미일 동맹’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인식이 싹트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미국이 파병하지 않자 ‘유사시 일본을 미국이 지켜줄 수 있느냐’는 우려가 꿈틀거리는 것이다. 물론 우크라이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 아닌 데다 일본처럼 미국과 동맹을 맺은 경우와 다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참혹한 피해를 지켜보는 일본 여론은 “일본이 미국에 어디까지 기댈 수 있느냐”는 근원적 불안을 다시 자극하게 됐다.
일본의 안보 불안은 지난달 외무성이 발간한 ‘2022 외교청서’에도 드러난다. “미국이 압도적인 정치·경제·군사력으로 선진 민주주의 국가와 주도력을 발휘해 국제사회 안정과 번영을 지지하는 시대에서, 미중 경쟁, 국가 간 경쟁 시대로 본격 돌입했다”고 진단했다. 교도통신은 “냉전 후 유일 초강대국이던 미국의 국력이 상대적으로 약해지고 있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취약한 것도 한 요인이다. 에너지 가격 급등 등 인플레이션으로 민심이 악화돼, 민주당은 11월 중간선거에서 하원은 물론 상원마저 잃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정권 당시 미국은 동맹을 스스로 깨는 듯한 행동을 한 바 있어 공화당의 재부상은 미일동맹에 대한 일본의 믿음을 흔들리게 한다.
호주 영국과 '준동맹' 수준 협력... 독일 프랑스와도 협력 강화
일본은 가치관을 공유하는 국가와 외교안보 협력을 지속적으로 넓혀왔다. 아베 신조 내각 당시 중국을 겨냥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슬로건을 내세워 유럽과 호주를 공략해왔다. 일본은 올해 1월 호주와 원활화 협정에 서명했고, 지난 5일(현지시간)에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고 원활화 협정의 대략적 내용에 합의했다. 일본이 미국을 제외한 국가와 방위 관련 협정을 맺는 것은 미일지위협정 이후 처음이다.
선거 등 정치적 변환기를 끝낸 독일, 프랑스와의 협력도 강화한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달 28일 방일해 기시다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어려운 국제 환경에 ‘미들 파워’의 결속이 필요하다”며 “초강대국엔 미치지 못하지만 경제·외교력을 갖고 가치관과 이념을 공유하는 일본, 독일, 프랑스 등이 국제질서 안정을 담당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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