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윈난 민족 ③루량(陸良)·스린(石林)·위엔머우(元謀)
갑골문의 나무(木)는 단순했다. 나뭇가지와 뿌리가 글자가 됐다. 나무가 모여 숲(林)을 이뤘다. 시경의 기회여림(其會如林)은 ‘그 깃발이 마치 숲과 같다’는 상나라 장병에 대한 비유다. '회'를 모임이라 번역하는 경우가 있는데 군대의 깃발이다. 고대부터 숲은 나무만이 아니라 ‘여럿이 한군데 모인 사람이나 사물’을 의미한다. 선비가 모이면 사림(士林)이고 모래가 모이면 사림(沙林)이다. 석림(石林)과 토림(土林)도 있다. 윈난 삼림(三林)이라 부른다. 모두 쿤밍 부근에 있다.
모래 숲의 왕국, 루량 사림(沙林)
쿤밍에서 동쪽으로 약 130㎞ 거리에 루량(陸良)이 있다. 수억 년 전 지각운동과 지진 및 마그마 분출, 풍화와 침식이 반복돼 천태만상의 토양이 생겼다. 루량 일대 180만㎡에 이른다. 기차역 가까이에 채색사림(彩色沙林)이 있다. 입구에 새긴 벽화가 흥미를 끈다. 신화와 역사가 두루 펼쳐져 있다. 기나긴 민족사를 보는 듯하다. 찬사(爨史)라 적혀 있다.
나무(木)가 두 개 있고 아래에 불(火)이 있다. 30획인 찬(爨)은 부뚜막이란 뜻이다. 베이징 서북쪽 외곽에 있는 촨디샤(爨底下)가 떠오른다. 두메산골에서 세상과 떨어져 600여 년을 살아온 한(韓)씨 집성촌이다. 부뚜막 있는 집에서 살았다. 루량에서 만난 찬은 성(姓)이다. 부뚜막과 무관하다. 사림을 보러 왔는데 뜻밖에 역사 공부를 한다. 땅이 넓어 구석구석 다니면 미처 몰랐던 생경한 과거와 만난다.
벽화를 지나자 사림이 드러난다. 산책로를 따라 낙타 등을 닮았다는 타봉(駝峰)을 넘어간다. 동굴과 관문도 몇 군데 있다. 스르르 부서질 듯한 사암이 갖가지 형상을 구현했다. 풍파를 겪어 색깔도 다채롭다. 삭막한 토양 틈새에서 생명을 이어가는 나무가 군데군데 뿌리를 내리고 있다. 나지막한 협곡을 따라 천천히 내려간다.
모래성처럼 무너질 길은 아니다. 산채로 들어가는 문이 보인다. 맹획문(孟獲門)이다. 맹획은 소설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로 일곱 번이나 사로잡혔다는 칠종칠금(七縱七擒)의 당사자다. 사실로 믿는 역사학자는 아무도 없다. 근거 없이 소설에 등장할 리 없어 논란도 많다. 이름이나 생몰 시기도 오리무중이다. 한족인지 이족인지 논쟁도 있다.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명성만큼은 대단하다. 드라마 ‘삼국지’를 촬영했던 장소다. 안내문에도 맹획의 고향이라 당당하게 적었다.
맹획의 산채였다는 곳은 조채구(雕寨區)다. 모래로 조각한 작품이 너무 뜬금없어 웃음이 나왔다. 2001년에 국제 사조(沙雕) 축제를 열었던 흔적이다. 해리포터와 손오공이 나란하다. 유럽과 러시아 고성도 있다. 동화로 만든 테마파크다. 로빈슨 표류기, 애정지야(愛情之夜), 해양 왕국, 이족 영웅도 있다. 근거를 알기 힘든 괴상한 신화도 많다. 낙타 한 마리가 혀를 삐죽 내밀고 서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조각이라 해도 믿을 뻔했다.
산채를 나오면 ‘채색사림’을 새긴 바위가 있다. 바위에 징표를 남겨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관광지가 대개 그렇다. 마차가 다니는 길을 따라간다. 이름도 거창한 만안계(萬安溪)는 연못 수준이다. 꽃과 나무와 어울린 사암이 줄줄이 늘어섰다. 능선 산책로와는 또 다른 풍광이 이어진다. 부서지기 쉬운 사암이라 불쑥 솟기도 하고 각을 세운 네모도 있다. 다시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다른 모양으로 변할까, 그때까지 지구는 온전할까?
붉게 글씨 쓴 바위가 보인다. 간략하게 썼지만 분명 찬(爨)이다. 중원에서 이주한 찬씨 집단이 남중(南中) 땅에 일가를 이룬다. 촉나라 남쪽 지방이다. 정사 ‘삼국지’에 등장하는 찬습(爨習)이 선조다. 촉나라 장수인 이회의 고모부로 제갈량을 도와 종군했으며 북벌에도 참가했다.
맹획의 칠종칠금과 관련이 있을까? 아무리 따져도 아니다. 후손이 루량을 근거지로 왕국을 세운 후 400년 이상 군림했다. 406년의 찬보자비(爨寶子碑)와 458년의 찬용안비(爨龍顏碑)가 발굴돼 전해진다. 중원의 비문만큼 수려한 필체로 서예가의 극찬을 받고 있다. 748년 남조국(南詔國)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사림의 왕국이었다.
바위 숲에 얽힌 역사와 전설, 스린 석림(石林)
루량 서남쪽 50㎞ 거리에 스린이족자치현(石林彝族自治縣)이 있다. 행정구역으로 쿤밍에 속한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석림이 있다. 수억 년 전 융기로 형성된 카르스트 지형이다.
전동차를 타고 들어가 대석림 입구로 간다. 바위에 예서체로 쓴 ‘석림’이 반겨준다. 1931년 국민당 윈난성 주석 룽윈의 필체다. 이족 출신으로 해방 후에 공산당으로 전향했다. 석림은 두 번 갔다. 처음 갔을 때 비가 살짝 내렸는데 운치가 남달랐다. 무채색 돌과 어울린 울긋불긋한 우산이 너무나 많았다.
검봉지(劍峰池)가 있다. 연못으로 돌기둥 하나가 추락했다. 1833년 북쪽 100㎞ 지점에서 발생한 지진의 영향이다. 일부러 세운 듯, 넘어지지 않고 똑바로 섰으니 신기하다. 비 오는 날이라 그저 칼날에 새긴 붉은 글자만 보였다. 쾌청한 날에도 반영이 방해해 칼의 길이를 가름하기 어려웠다. 연못 속으로 박힌 칼자루를 확인하고 싶지만 평균 수심이 6m가 넘는다. 주변 봉우리가 연못 깊이 스며들었다. 연못 옆 돌다리를 따라 둘러본다.
변화무쌍하게 생긴 바위가 많아 작명도 사자성어 같다. 봉우리 사이에 백척간두처럼 낀 천균일발(千鈞一髮)이 있다. 전설 속 새가 날개를 활짝 펼치니 대붕전시(大鵬展翅), 꼬불꼬불한 계단을 따라가 난초 모양의 좁은 틈은 유란심곡(幽蘭深谷)이다. 봉황을 닮고 머리는 얼레빗인 봉황소비(鳳凰梳翅)도 있다. 전망대로 올라가면 상거석대(象距石臺)가 나타난다. 무리에서 홀로 벗어난 코끼리가 바위 위에 올라선 모양이다.
망봉정(望峰亭)이 있다. 40m 높이의 바위에 자리 잡아 전경이 훤하다. 쭈뼛하게 칼날처럼 생긴 바위가 수두룩하다. 바다 풍광이 그대로 솟아오른 듯 숨이 막힐 정도로 다닥다닥하다. 수억 년의 세월에 날카롭게 된 듯하다. 어느 방향이든 볼수록 장관이다. 멀리 보면 나무가 촘촘히 자란 평지다. 여기만 왜 우글우글 모였는지 알 길이 없다. 바다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까.
대석림 옆에 연화지(蓮花池)가 있다. 타원형의 연못에 주변 바위들이 고스란히 비친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가면 소석림이다. 대석림이 무채색이라면 소석림은 잔디와 나무가 풍성한 초록색이다. 두툼하게 병풍을 이룬 모양이다.
이족의 갈래인 싸니족(撒尼族) 전설이 담긴 아스마(阿詩瑪) 바위가 유명하다.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전해지니 관광객이 잔뜩 모였다. ‘금빛 보석같이 빛나고 아름답다’는 이름의 아스마는 가난한 싸니족 소녀다. 총명하고 용감한 아헤이(阿黑)와 사랑에 빠진다.
우뚝 솟은 바위 꼭대기에 달랑달랑 붙은 바위가 있다. 두 연인의 슬픈 사연이 전해진다. 지주 아들이 아스마를 눈여겨봤다. 지주는 아스마를 강제로 혼인을 시키려 했다. 아스마는 단호히 거부하고 구금됐다. 소식을 들은 아헤이는 어렵사리 아스마를 구출해 도주했다. 지주는 악랄하게 술수를 부려 홍수를 일으켰다. 급류에 떠내려간 아스마가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바위로 변했다. 물이 빠지니 지금의 모습이다. 아헤이가 애타게 아스마를 부르면 바위가 메아리로 화답했다는 전설이다. 관광객들이 이족 복장을 걸치고 사진을 찍느라 혼잡하다. 모두 아스마를 소리쳐 부른다. 귀를 쫑긋해도 메아리는 없다.
흙으로 빚은 예술품, 위엔머우 토림(土林)
쿤밍 서북쪽 170㎞ 지점에 위엔머우(元謀)가 있다. 170만 년 전 고대 인류의 화석이 발견된 지방이다. 부근에 토림(土林)이 산재한다. 현세의 직접 조상이 활동하던 중신세(中新世)의 지각변동으로 생겨났다. 지진이나 단열의 영향을 받았다. 기껏해야 2,000만 년 전이니 사림이나 석림에 비하면 한참 어린 토양이다.
북쪽 1시간 거리의 우마오향(物茂鄉)에 위치한 토림으로 간다. 지도를 보니 사림과 석림보다 동선이 복잡하다. 지형에 붙여진 이름도 다채롭다. 오른쪽 길로 접어들어 시계 반대방향으로 유람한다.
황토로 빚은 작품인가. 오밀조밀한 계단을 따라 언덕을 넘으니 청량곡(清凉谷)이 나타난다. 하천이 흐르던 계곡인 듯한데, 협곡은 메말랐고 전시된 자태는 생생하다. 사림과 닮은꼴 같고 석림과 비슷해 보이는데 분위기는 이채롭다.
흙과 모래, 돌은 형제가 분명해도 서로 하나로 모이니 감상에 차이가 생긴다. 대낮의 햇볕이 선명하게 비추니 뱃살의 윤곽이나 허리선까지 선명하게 드러난다. 장벽처럼 솟은 불탑(佛塔)이 등장한다. 참 멋진 모습인데 불탑이라 부르니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바위였다. 이름이 불탑이니 합장하는 신자가 꼭 있을 듯하다.
조금이라도 특징이 뚜렷하면 신통한 이름이 붙는다. 120여 개나 된다는데 일일이 헤아리기 어렵고 다 따라다니며 살피기도 힘들다. 게다가 온갖 동물이 곳곳에 숨어 있다고 한다. 동물원도 아니고 숨은그림찾기는 더더욱 아니다. 그저 몸매가 특별하고 색감이 따뜻해 즐거울 따름이다. 두꺼비가 빗소리에 함께 운다는 합마명우(蛤蟆鳴雨) 팻말을 봐도 마찬가지다. 군데군데서 동굴과 천문을 만난다. 동굴은 막혔고 천문은 뚫려 있어 지나갈 수 있다.
하늘과 맞닿은 수문이라는 천갑(天閘)이 있다. 뜻이 애매모호하다. 하늘로 오르는 문인가? 쭉 뻗은 모양새가 하늘까지 닿을 기세다. 가파른 계단이 갈등을 부추긴다. 끝까지 오르면 전경을 볼 수 있을 듯하다.
느릿느릿 한 칸씩 올라간다. 꽤나 땀을 흘리고 정상에 올랐다. 아래쪽을 바라보니 협곡이 깊다. 오른쪽 방향으로 빽빽하게 바위가 모여 있는 로마제국(羅馬帝國)이 보인다. 작명자의 의도를 모르겠다. 바람이 세차게 불더니 땀을 모조리 씻어낸다. 가슴이 후련하고 날아갈 듯하다. 갑갑한 땅 속에 갇혔다가 해방된 느낌이다.
계단을 내려가 출구 방향으로 접어든다. 바위가 숨막힐 듯 촘촘히 껴안고 있다. 고개를 드니 미로에 빠진 느낌이다. 하늘을 향해 바라보니 바위 몸매를 아래부터 위까지 한꺼번에 훑게 된다.
평탄한 귀랑곡(鬼狼谷)이 이어진다. 흉악한 이리가 나올 이름이건만 산허리를 끼고 돌아가는 길이 아담하고 정겹다. 신비한 풍광이 연이어 나타나더니 신묘한 곳에 이른다. 영소보전(靈霄寶殿)이다. 옥황상제가 기거하는 장소다. 한참 서서 깊이 들여다본다. 만물을 관장하는 까닭인가? 삼라만상을 담은 듯한 광경 앞에 말문이 막힌다.
선녀대(仙女臺)를 지나 언덕을 넘는다. 아래로 내려가니 동해용궁(東海龍宮)이다. 바다를 연상했을까? 모든 바다에 용왕이 살지만 동해에 사는 용왕이 가장 권위가 높다. 물론 신화나 소설의 영향이다.
멀리 출구가 보인다. 2시간 넘도록 토림을 두루 돌아다녔지만 진면목을 다 보긴 어려웠다. 그래도 토림의 인상은 강렬하다. 엉뚱한 생각이 떠오른다. 황토 바위에서 불쑥 위엔머우인이 나타나 인사를 한다. 그 옛날 고대 인류가 살았을 땅이다. 170만 년 전의 인류가 활개치던 놀이터이자 터전이 아니었을까? 여행자는 여백이 많아 자주 상상의 나래를 타고 날아다닌다.
명나라 말기 지리학자이자 여행가 서하객이 토림에 왔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여행기를 남긴 인물이다. 그의 동선을 보면 분명 사림과 석림을 지나갔는데도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다. 토림에 대한 소감은 남겼다.
‘이 언덕에 불쑥 드러난 바위가 금모래처럼 찬란하며 구름처럼 겹겹이 쌓였고 황금빛 광택을 뿌리고 있구나. 그 위를 밟고 지나니 몸은 마치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잘 익은 밤톨 속을 걷는 듯하다’고 기록했다. 아! 햇밤이었다. 껍질 벗고 나와 붉고 누런 가을의 색깔. 여행가는 시인이다.
삼림(三林)은 저마다 개성이 있다. 삭막한 듯해도 보는 재미가 있다. 나무는 숲(林)이 되고 훨씬 빽빽한 삼(森)을 이룬다. 같은 글자를 3개 겹쳐 만든 글자를 삼첩자(三叠字)라 한다. 오행의 금목수화토를 비롯해 모두 29개나 있다. 잘 쓰지 않을 뿐이다. 사첩자, 육첩자, 팔첩자도 있다. 나무가 8개인 글자도 있다는 말이다. 물론 지금은 쓰지 않는다.
사림, 석림, 토림을 보고 나면 왜 이런 글자를 만들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그런데 모래, 돌, 흙을 왜 하필이면 나무(木)에 비유했을까? 온갖 사물과 사람이 뭉친 모습을 숲(林)이라 표현한 이유는 무얼까? 공자가 당시의 노랫말을 모아 편찬한 책이 시경이다. 그를 찾아가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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