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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토로 마을

입력
2022.05.02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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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지난달 30일 개관한 우토로평화기념관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개관한 우토로평화기념관 모습. 연합뉴스

일본 교토부 남부 우지시의 우토로 마을은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으로 끌려간 재일 조선인들의 터전이었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1년 일본이 늪지에 비행장을 건설하기 위해 데려온 조선인 노무자 1500여 명은 일본 패전으로 갑자기 일자리를 잃었다. 고국으로 돌아갈 뱃삯도 없었던 이들은 그렇게 판자촌을 만들었다. 차별과 가난에다 퇴거 위기까지 겪었던 이들의 설움이 서린 이 마을은 한일 양국의 협력으로 말끔히 단장됐고 이제 평화기념관도 세워졌다.

□ 우토로 마을이 한국에 알려진 것은 2000년대 초였다.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 무허가 판자촌에서 간신히 생존해왔던 이들이 강제 철거 위기까지 처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우토로 주민들이 거주하는 부지 전체가 1987년 부동산 회사로 넘어간 뒤 본격적인 퇴거 요구를 받은 것. 법정 소송에서도 패소를 거듭하다 2000년 일본최고재판소에서도 항소가 기각됐다.

□ 한일 양국의 시민단체들이 우토로 마을을 지키기 위한 모금 운동을 벌인 것은 이 무렵이었다. 수십 년간 방치되고 버림받았던 땅이 양국의 뜻있는 시민들의 협력 속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한국 정부가 2007년 토지 매입을 위해 30억 원을 지원했고 일본 정부와 지자체도 공영 아파트를 지어 주민들이 입주할 수 있게 했다. 판자촌 대신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얻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우토로 마을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한국 정부 지원으로 지난달 30일 평화기념관이 개관했다.

□ 한일 양국의 협력이 결실을 맺었지만 우토로 마을에는 여전히 한일 갈등의 긴장이 교차하고 있다. 지난해 8월 22세의 일본 남성이 마을에 불을 질러 주택과 창고 7채가 잿더미가 됐다. 기념관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전시물 50여 점도 소실됐다. 범인은 “일본 세금으로 기념관을 짓고 집을 공짜로 받는다”며 "한국인들이 싫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우익들이 퍼뜨린 혐한 선동이 증오 범죄로 현실화해 충격을 던졌다. 우토로 마을 1세대는 모두 작고했지만 이런 일이야말로 그들의 삶이 기억되어야 하는 이유다.





송용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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