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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대학야구 선수들의 절규

입력
2022.05.03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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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서울 목동구장에서 텅 빈 관중석을 배경으로 펼쳐지고 있는 2022 대학야구 U-리그. 성환희 기자

서울 목동구장에서 텅 빈 관중석을 배경으로 펼쳐지고 있는 2022 대학야구 U-리그. 성환희 기자

지난주 2022 대학야구 U-리그가 한창인 서울 목동구장을 찾았다. 거리두기 해제 조치로 관중석은 전면 개방됐지만 듬성듬성 일부 학부모들만 애처로운 표정으로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과거 춘계리그로 불렸던 U-리그는 전통의 대학야구 대회이지만 언제, 어디서 열리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학야구연맹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개편 중이라는 메시지 외에 조직도도, 팀 소개나 선수 기록도 전혀 나와 있지 않았다.

대학야구는 이미 고사 위기다. 2022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대학 졸업예정자 240명 가운데 호명된 선수는 13%(15명)에 불과하다. 구단들은 "뽑고 싶어도 뽑을 선수가 없다"고 한다.

대학선수들의 기량이 정체된 건 빡빡한 학사관리가 시작되면서다. 이른바 정유라 사태 이후 체육특기생으로 입학한 선수들도 일반 학생처럼 수업에 참여하고 시험을 치러 C학점에 도달하지 못하면 다음 학기 대회에 참가할 수 없도록 교육부의 지침이 내려졌다. 국가대표 훈련 등에는 대체 이수 등 예외를 인정할 수 있도록 여지를 뒀지만 대학스포츠협의회(KUSF)의 운영규정을 근거로 제시하며 '동일한 교과목에 관해 일반 학생과 분리해 평가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명문화했다.

초등학교부터 10여 년간 엘리트 야구를 했는데 대학에 들어왔으니 일반 학생과 똑같이 학업에 열중하라는 건 가혹하다. 목동구장에서 만난 A선수의 부모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정규수업을 다 듣고 방과 후 훈련을 한 뒤 다시 새벽까지 과제와 씨름한다. 주말엔 리그에 참가하기 위해 지방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스케줄의 반복"이라고 하소연했다.

사정이 이러니 고교 졸업 후 프로에 지명받지 못한 이들에게 권토중래는 언감생심, 되레 퇴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B대학 감독은 "학점을 다 받아야 되는 상태에서 운동해야 하는 데다 교내에 야구장을 갖춘 팀도 많지 않아 학생들의 운동량이 부족하다"고 실상을 전했다. 고교야구도 주말 리그 도입 이후 학업에 치이는 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프로야구에 입단하는 건 고졸 선수들이다. C구단 스카우트는 "비슷한 기량이면 몇 살이라도 어린 고졸 선수를 지명해 육성하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선동열과 고(故) 최동원이 한국 야구 필생의 맞수로 회자되는 데는 호남과 영남, 해태와 롯데, 그리고 연세대(최동원)와 고려대(선동열)의 대리전이라는 운명적 구도가 작용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여성팬을 몰고 다닌 극 중 연세대 에이스처럼 대학야구 스타들이 프로야구 선수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던 시절이 있었다. 고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당연시됐고, 4년간 몸집과 실력을 더 키워 가치를 높였다. 비록 수업에 자주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법대, 경영학과 등 일반 학과를 선택해 번듯한 졸업장도 덤으로 얻었다.

요즘 대학선수들에겐 이미 패배 의식이 깔려 있다. 고교 졸업반 때 프로에 가지 못하면 4년 후에도 지명 가능성은 낮다. 대학 스포츠 선수들의 학업 병행이 야구에 국한된 건 아니지만 신체적 완성도가 경기력에 깊이 개입하는 농구, 배구 등 여타 종목에선 그나마 사정이 낫다. 취업 사각에 놓인 야구선수 아들을 둔 학부모들은 지금도 텅 빈 관중석에서 기적에 가까운 성취를 기원하고 있다.

성환희 문화스포츠부 차장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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