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상소년, 화상소녀...아프리카 아이들은 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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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상소년, 화상소녀...아프리카 아이들은 울지 않는다

입력
2022.05.1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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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끝> 김영웅 흉부외과 전문의·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

편집자주

의료계 종사자라면 평생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생명을 구한 환자일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에게 각별한 의미를 일깨워 준 환자일 수도 있다. 아픈 사람, 아픈 사연과 매일 마주하는 의료종사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2021년 나는 수단과 남수단의 국경이 맞닿은 아곡(Agok)의 병원에서 '국경없는의사회'의 외과의로 활동했다. 나는 흉부외과 전문의지만, 병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설은 국경없는의사회밖에 없는 이곳에서 그런 전공은 큰 의미가 없다. 나는 △총상 자상 등의 외상 환자 △복막염 등 응급 환자 △제왕절개가 필요한 산부인과 환자 등 각종 외과적 질환이 있는 환자들은 모두 진료하고 수술했다.

손에 총을 맞은 한 남자 아이가 있었다. 열 살쯤이나 되었을까. 아이는 들판에서 소를 지키려다 다쳤다. 소는 남수단에서 가장 중요한 재산이자, 화폐 대용이다. 전반적 생활 환경이 열악한 이곳에서 사람들은 다른 마을의 소를 빼앗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총기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때문에 항상 누군가는 소를 지켜야 한다. 보통 어른들이 낮에 다른 일을 하는 동안 소를 지키는 건 아이들의 몫인데, 하필 그때 다른 부족에서 총을 들고 습격했다. 아이는 가족을 대표해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소 몇 마리를 지키려다 손에 총상을 입었다.

아이는 겁 없이 두 팔을 벌려 총구를 막으려고 했다고 한다. 총알이 손을 뚫고 지나가며 뼈를 부러뜨렸고 피부와 근육을 찢었다. 나는 응급 수술을 시행해 파편을 제거하면서 여러 조직들을 최대한 복원하려 시도했지만 엄지손가락은 끝내 살리지 못했다.

처음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부터 치료 과정 내내 아이는 신음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어른도 참기 힘든 고통이었을 텐데, 아이는 이를 악물고 통증을 견뎌냈다. 용감함이라고 해야 할까, 책임감이라고 해야 할까. 한창 응석을 부릴 나이인데, 이곳 아이들이 너무 일찍 철이 드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곳에서 소 한 마리의 가격은 20만 원 남짓이다. 그걸 지키기 위해 아이는 총구 앞에 서야 했던 것이다.

잊을 수 없는 두 번째 아이는 화상 환자였다. 이곳 여성들은 흔히 생애 동안 10명이 넘는 자녀를 출산한다. 양육 과정에서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부모로부터 방치되기 일쑤다. 모든 가사를 떠맡아야 하는 엄마는 여러 아이들을 돌볼 틈이 없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이런 저런 위험에 노출된다. 집에는 조리를 위한 모닥불, 숯불, 화덕이 마당마다 있는데, 아이들은 위험한 불가에서 뛰어놀다 불 속으로 넘어지기도 하고, 더 어린 아이들은 겁 없이 다가가 불을 손으로 만지기도 한다.

두 살 동생이 불 속으로 넘어지자 다섯 살 누나는 주저없이 불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고사리 같은 두 손으로 동생을 구해냈다. 그러나 동생보다 누나의 화상이 더 심했다. 양 손과 배, 등, 허벅지까지 전신 화상으로 두 달 넘도록 치료를 받아야 했고 결국 피부를 이식해야만 했다.

동생을 구하다 크게 다쳐 두 달 넘도록 치료를 받은 아촐 촐과 함께

누나의 이름은 아촐 촐이었다. 환부를 열고 드레싱을 하는 건 환자에겐 엄청난 고통인데, 아이는 용감하게 잘 버텼다. 항상 환하게 웃으며 의료진을 반겨주던, 대견하고 멋지고 용감한 아이였다. 응급실이나 수술실에서 환자를 잃어 마음이 흔들리던 날이면 나는 아촐 촐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다행히 결과가 좋아 잘 회복한 후 퇴원했다.

남수단 아곡은 가난과 분쟁, 질병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환자가 많고, 중증도가 높은데, 의료 인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전문적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갈 곳은 오직 국경없는의사회 병원뿐이었다. 하지만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기에 아픈 몸을 이끌고 며칠을 걸어와야 하는 경우가 흔했다. 홍수 때문에 길이라도 끊어지면 접근성은 더 나빠진다.

이곳 환자들은 내가 치료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에게도 치료 한번 받지 못하고 악화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말 그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곳을 수술해야만 했다. 여기로 떠나기 전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하고 외과, 산부인과, 정형외과와 성형외과를 포함한 여러 과의 기본 술기를 익히고 떠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하루 10건을 수술해야 하는 숨가쁜 나날이었지만, 내가 아곡에서 하루하루 쏟아부은 그 시간은 분명히 누군가의 ‘내일’이 되었다고 믿는다.

강남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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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린 환자, 나를 깨운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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