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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에게 빌려준 책'...한 줄 기록에 500년 전 진짜 주인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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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에게 빌려준 책'...한 줄 기록에 500년 전 진짜 주인 찾았다

입력
2022.05.01 18:30
수정
2022.05.02 10:55
19면
0 0

국학진흥원, 도산서원 기탁 유물 살펴보다...
'문헌통고' 마지막 장에 적힌 열네 자에 주목
"빌린 책 돌려주라" 퇴계 유지 따라 반환 결정

문헌통고 1책 끝 부분에 한자로 '冊主永陽李公幹 供覽眞城李景浩(책주영양이공간 공람진성이경호)'라는 열네 자가 쓰여 있다.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문헌통고 1책 끝 부분에 한자로 '冊主永陽李公幹 供覽眞城李景浩(책주영양이공간 공람진성이경호)'라는 열네 자가 쓰여 있다.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한국국학진흥원이 책 주인을 500년 만에 찾았다. 주인공은 조선 최고 성리학자 퇴계 이황의 친구 이중량이다. 학문과 벗을 대하는 고매한 품격과 돈독한 우의가 후세의 연구로 빛을 발했다.

국학진흥원은 최근 경북 안동 도산서원이 19년 전 기증한 유물 1만여 점을 살펴보다가 책 ‘문헌통고’ 마지막 장에 적힌 열네 글자에 주목했다. ‘冊主永陽李公幹 供覽眞城李景浩(책주영양이공간 공람진성이경호)’라고 쓰여 있었다. ‘책 주인 영양 이공간이 진성 이경호에게 보라고 준 것’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이공간과 이경호는 각각 이중량과 이황의 '자(字·본명 외에 부르는 호칭)'이다. 이황의 후손과 제자들은 이황의 책으로 여겨 기탁했는데 진짜 주인이 뒤늦게 이중량으로 밝혀진 것이다.

이중량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어부가’ 등 강호문학 장르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는 농암(聾巖) 이현보의 넷째 아들이다. 이황과는 1534년(중종 29) 문과에 동반 급제하는 등 막역한 사이로 알려졌다.

이황이 빌린 책은 1558년 명종이 당시 사헌부집의로 일하던 이중량에게 하사한 책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도산서원이 기증한 유물 중에 ‘적선(積善)’ 목판 2점도 선조가 농암의 여섯째 아들인 매암 이숙량에게 하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헌통고 1책 앞장에 명종이 이중량에게 책을 하사한 기록이 적혀 있다.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문헌통고 1책 앞장에 명종이 이중량에게 책을 하사한 기록이 적혀 있다.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이에 도산서원 운영위원회와 퇴계 종가는 이중량의 집안 소유로 드러난 문헌통고 133책과 목판 2점을 모두 농암 종택에 돌려주기로 했다. 퇴계 선생이 세상을 떠날 즈음 “빌려 온 책은 모두 돌려주라”고 당부한 유지에 따라 반환을 결정했다.

국학진흥원은 2일 도산서원에서 국학자료 반환 및 인수인계 기념식을 연다. 하지만 최적의 환경에서 보관하기 위해 실제 책과 목판을 옮기지는 않기로 했다. 농암 종택은 항온항습 수장고 시설을 완비한 국학진흥원에 지난 2002년과 2003년, 2007년 세 차례에 걸쳐 도서와 책판 등 4,600점이 넘는 자료를 기탁한 바 있다.

정종섭 국학진흥원장은 “책 한 권이 귀하던 시절 133책이라는 큰 규모의 책을 빌려주며 돌려 볼 만큼 두 선생이 서로의 학문을 깊이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며 “반환 기념식이 두 집안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우정을 보여주는 뜻깊은 행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안동= 김정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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