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악기 수리사에서 국악기 개량 장인으로
'편종·편경 복원' 중요무형문화재 악기장 지정
"손발톱 빠지는 고된 일…내 자식 같은 애착"

지난 28일 '국악기 개량 60년 회고전-변화와 확장의 꿈'이 전시 중인 서울 국립국악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김현곤 악기장이 자신이 개량한 타악기 운라 옆에 서 있다. 김하겸 인턴기자
예술과 기술은 뗄 수 없는 관계다. 영화의 탄생 배경에 영상 기술 발전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국악의 보전은 물론 국악관현악단과 같은 국악의 현대화 길목에도 기술은 빠지지 않는 요소다. 악기 복원과 개량 기술이 핵심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옛 시절에는 그 시절 악기가 최고였겠지만 지금의 음악, 창작음악에 쓰려면 개량할 점이 많아요." 악기 개량의 대가인 김현곤(87) 국가중요문화재 제42호 악기장은 국악의 생명력을 지켜가는 데 국악기 개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쉬운 말로 설명해 나갔다. 이달 15일까지 서울 국립국악박물관에서 열리는 '국악기 개량 60년 회고전-변화와 확장의 꿈'에서 만난 그는 전시된 악기 총 50점 중 4분의 1(16점) 이상을 만들어 낸 인물이다. 그를 빼고 근현대 국악기 역사를 논할 수는 없다.
그가 처음 인연을 맺은 건 서양 악기였다. 한국전쟁이 휴전된 해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인 전북 순창에서 홀로 상경해 우연히 서양 악기사에서 일을 시작하면서다. 떠난 일본인들과 반대로 우리나라로 들어오기 시작한 미국 군인들이 버린 고장난 악기들이 그의 실습 대상이자 수입원이었다. 당시 충무로·종로 일대에는 음감이 정확하고 손재주도 좋은 수리공이 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하교하고 저녁 먹고는 그길로 꼬박 악기를 만져요. 그러느라 잠도 안 자고 다음 날 학교 갈 때까지 붙잡고 있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죠. 바이올린, 첼로, 클라리넷, 마림바 등 다 했어요." 생활비도 벌어야 했지만, 그보다는 악기에 미쳐있던 시간이었다.

지난 28일 서울 국립국악박물관의 '국악기 개량 60년 회고전-변화와 확장의 꿈'에서 김현곤 악기장이 자신이 개량한 국악기 전시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하겸 인턴기자
국악기에 눈을 돌린 건 40대가 되어서다.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며 인연을 맺은 한만영 당시 서울대 음대 교수(국립국악원장 역임)가 그에게 '방향' 복원을 제안한 것이 시작점이 됐다. 이후 1989년 종묘제례악의 문을 여는 악기인 편종·편경 복원 사업까지 도맡으면서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사실상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었다. 마구잡이로 보관된 악기 부품 몇 점을 골라내고 필요한 재료를 구하러 중국을 2년간 누볐다. 그때 김 악기장이 들인 사비가 당시 돈으로 족히 3억 원이 넘는다. 그 공로와 기술을 인정받아 2012년 편종·편경 제작 기술 보유자로서 악기장 지정을 받게 됐다.
몸도 마음도 고된 작업이다. 그의 손에는 거친 세월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1,500도가 넘는 쇳물을 다루는 주물 작업을 직접 해야 하고 수작업으로 깎는 돌의 표면을 맨손으로 늘상 만져야 한다. "손가락도 몇 번 잘릴 뻔했고, 손발톱 안 빠져 본 것이 없다"는 김 악기장은 그래도 완성된 악기를 보면 아기 보듯 마음이 풀린다고 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만든 자식과 같은 악기들 중에 이번 전시회에는 음역 확대를 위해 소리판의 개수를 10개에서 17개로 늘린 국악기 '운라'와 구하기 어려운 소라껍질 대신 섬유강화플라스틱(FRP)으로 제작한 '나각' 등을 선보였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악기를 말할 때는 청년이 보였다. '이런 악기를 내가 꼭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적은 메모들이 빼곡하다는 그는 "국악관현악 연주회장에서 쓸 수 있는 저음 현악기를 만들고 싶다"고 우선 과제로 꼽았다. 지금은 마땅한 국악 현악기가 없어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또 다른 오랜 숙원은 악기 공예 학교 설립이다.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에 위치한 세계 유일의 세계 악기 박물관과 같은 전시 공간에 악기 제작 기술을 전수하는 학습의 터를 더하는 식이다. 협조를 받기 위해 여러 지자체의 문을 두드려도 봤지만 아직 호응은 없었다. 그래도 안정적으로 국악기 제작 후학을 키울 수 있는 이 꿈을 포기하지 않은 노장의 눈은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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