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가 올라도 금융완화는 강하게 지속하겠다.’ 일본은행의 28일 금융정책회의 결과 발표는 사실상 이런 말이나 다름 없었다. 엔화 가치가 또다시 하락하면서 달러당 130엔선을 돌파했다.
28일 도쿄 외환시장에서는 엔화 가치가 급락, 오후 2시 43분께 달러당 130.2715엔을 기록하며 130선이 무너졌다. 일본은행의 금융정책회의 내용이 발표된 후 엔 매도가 이어지며 128엔대였던 엔·달러 환율이 순식간에 130엔대로 급등했다. 엔·달러 환율은 연초만 해도 115엔대를 유지했으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비롯해 해외 중앙은행이 물가 상승을 이유로 금리를 인상하는 반면 일본은행은 완화 정책을 고수하자 3월부터 급속도로 상승했다.
일본은행은 27~28일 진행한 금융정책회의에서 현재의 장단기 금리 조작을 포함한 양적·질적 금융완화 정책을 계속하기로 가결했다. 금융완화 유지는 예상됐지만, 금리를 지정해 국채를 무제한 매입하는 공개시장 조작을 앞으로 매일 하겠다는 내용이 새롭게 추가됐다. 3월 이후 일본은행은 10년물 국채 시장금리가 0.25% 가까이 상승하면 이 공개시장 조작을 실시해 금리를 0.25% 이하로 유지했는데, 이제부터는 아예 매일 하겠다는 것이다. 한 투자회사 채권운용부장은 로이터통신에 “0.25% 금리를 사수하겠다는 ‘결의’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앞서 일본은행은 이날 오전 발표한 ‘경제·물가 정세 전망’을 통해 2022년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을 종전 1.1%에서 1.9%로 끌어올렸다. 세계적인 에너지·원자재 가격 상승에 일본 소비자물가도 오를 것으로 본 것이다. 엔화 약세가 계속되면 비싼 원자재 가격을 더 많은 엔화를 주고 사와야 해 물가 상승은 가속화한다. 그런데도 일본은행은 엔화 약세의 가장 큰 원인인 금융완화 정책을 유지하겠다고 전보다 더 강하게 못 박은 셈이다.
일본은행이 금융완화 자세를 고수하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올해 물가 상승이 일시적이고 심각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경제·물가 전망에서 일본은행은 2023년과 2024년도 물가 전망이 종전의 1.1%를 유지했다. 올해 잠시 올랐다가 다시 떨어질 것이란 인식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일본 정부 부채의 이자율을 높이지 않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대다수다. 2012년 아베 신조 정부가 들어선 후 일본은행은 막대한 정부 부채를 계속 사주면서 금리를 낮게 유지해 왔다. 그런데 금리를 일단 올리기 시작하면 정부의 이자 부담은 급속도로 커진다. 일본 정부가 장기간 재정 건전성을 외면한 결과, 일본 국민이 물가 상승의 고통을 겪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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