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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기회를 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식민지 지배 책임은 쏙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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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기회를 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식민지 지배 책임은 쏙 빠져

입력
2022.04.28 13:42
수정
2022.04.28 13:54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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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그 전문에서 명확하게 밝히고 있는 것처럼 연합군과 일본 사이에 “전쟁상태가 존재한 결과 지금도 여전히 미해결로 남아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말하면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를 위해 체결된 조약이다. 따라서 일본의 아시아 침략과 식민지 및 반(半)식민지 지배책임, 그중의 한국침략과 식민지 지배 범죄는 해결되어야 할 과제로 상정되지도 않았다. 이것은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김영호 동북아평화센터 이사장

28일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표된 지 70년째를 맞는 날이다. 미국을 비롯해 48개국이 1951년 9월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모여서 일본과 체결한 이 조약은 제2차 세계대전을 마무리하는 장치였다. 일본의 전쟁 배상부터 식민지 처리까지 다양한 사안이 이 조약에서 다뤄졌다. 동시에 조약은 동아시아가 현재 겪는 다양한 갈등의 기원인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구축한 출발선이었다. ‘침략자 일본’을 해체해 전쟁이 불가능한 농업 국가로 만들려던 연합국의 계획은 냉전을 계기로 대폭 후퇴했다. 영국과 미국은 전범국가를 끝까지 단죄하기보다 소련을 함께 견제하는 협력자로 길러내기로 결정했고 피해자였던 한국과 중국은 끝내 조약 체결을 위한 회담에 참석하지 못했다.


딘 에치슨 미국 국무장관이 1951년 9월 8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서명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 플리커 계정 캡처

딘 에치슨 미국 국무장관이 1951년 9월 8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서명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 플리커 계정 캡처


김영호 동북아평화센터 이사장을 비롯해 국내외 연구자 23명은 이달 함께 내놓은 공저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에서 조약의 문제점을 고발한다. 일본에 ‘관대한 처분’이 내려지면서 만들어진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모순을 전문가마다 역사와 법, 국제정치를 넘나드는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한다. 냉전 체제의 기원과 구조, 작동원리를 밝히고 한국과 동아시아가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분석한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그것이 만들어낸 체제가 ‘흘러간 이야기’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동아시아 국제정치를 떠받치는 구조이며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는 이야기다. 김 이사장은 “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 독일에 대하여 매우 가혹했던 베르사유 강화조약의 결과가 히틀러의 나치즘을 가져왔다면, 2차 세계대전 패전국 일본에 대하여 매우 관대했던 샌프란스시코 강화조약의 결과가 일본의 전전 파시즘의 새로운 부활을 가져온 것”이라고 강조한다.

조약의 중요한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전쟁터와 식민지에서 범죄를 저지른 국가를 심판하는 자리에 피해국들이 참석하지도, 목소리를 내지도 못했다는 점이다. 피해국들로서는 조약에 서명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조약에 따라야 하는 이상한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일제가 한국을 비롯한 피해국들에서 강제로 동원한 노동자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과 배상 문제가 대표적인 사안이다. 일본 최고재판소가 2007년 중국인 강제동원 피해사건과 관련해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재판상으로 구제받을 수는 없다고 판결하면서 제시한 근거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이었다. 조약에 따라서 개인의 청구권을 포함해 전쟁 중에 발생한 모든 청구권을 상호 포기한다는 전제 아래, 일본은 연합국 관할 아래 있는 재산의 처분을 연합국에 맡겼기 때문에 이후의 전후처리도 그러한 틀에서 처리돼야 한다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김영호 등 23명 지음ㆍ메디치 발행ㆍ724쪽ㆍ3만8,000원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김영호 등 23명 지음ㆍ메디치 발행ㆍ724쪽ㆍ3만8,000원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저에서 일본 최고재판소의 논리는 한일 청구권 협정과 관련해서도 적용되고 있다면서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비판한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서 만들어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체제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 책임을 ‘봉인’한 것에 불과했다는 이야기다. 김 교수는 “그 ‘봉인’은 냉전이 이어지는 동안 유효했다”면서 “하지만 냉전이 붕괴되고 그와 함께 냉전의 하부구조인, 대한민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권위주의 체제가 붕괴되면서 그 ‘봉인’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됐다. 대한민국의 식민지 지배 피해자들이 그 ‘봉인 해제’에 나섰으며, 일본과 미국과 한국에서 그들이 제기한 소송들은 그 ‘봉인 해제’를 위한 지난한 과정이었다”고 썼다.

공저 집필에는 알렉시스 더든 미국 코네티컷대 교수, 쉬융 중국 베이징대 교수 등 국내에 이름이 알려진 해외 학자들도 참여했다. 공저의 초점은 과거사 청산이나 영토 문제뿐만 아니라 조약이 만들어낸 틀과 그림자를 극복하는 방법에도 맞춰져 있다. 우치다 마사토시 변호사는 공저에서 일본에서 벌어지는 평화헌법 무력화 움직임을 분석하면서 이렇게 강조한다. “헌법재판까지 포함한 전후의 수많은 권리투쟁-최근에는 안보관련법 위헌 소송, 오키나와 헤노코의 미군 새 기지 건설 반대투쟁 그리고 전쟁배상, 식민지배 청산-은 이 미완의 헌법을 보완하려는 것이다. (중략) 그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과거에 대한 미래에 대한 책무다. 사망자들과의 공동투쟁, 미래와의 공동투쟁, 아시아 민중과의 공동투쟁이야말로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열어갈 것이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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