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협의대표단, 日 주요 각료 모두 만나
모리 전 총리 등 정·재계 실력자도 면담
문재인 정부 임명 주일대사는 냉대
“당선을 환영한다. 마음 깊이 축하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한국 대통령선거에서 윤석열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직후인 3월 10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기자단에 한 말이다. ‘축하한다’는 의례적 인사를 넘어 ‘환영한다’고까지 말한 데 대해 윤 후보의 당선을 고대했던 ‘혼네’(本音·본심)가 무심코 나온 게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다.
윤 당선인이 파견해 지난 24일 일본을 방문한 ‘한일 정책협의대표단’ 일정을 보면 일본 정부의 ‘환대’ 의사가 확연히 드러난다. 대표단은 방일 다음 날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장관과 면담은 물론 만찬까지 가졌고, 기시 노부오 방위장관, 하기우다 고이치 경제산업장관 등 내각의 주요 각료를 모두 만났다. 27일에는 기시다 총리를 만나 친서를 전달했다. 게이단렌, 일본 상공회의소, 일한경제협회 등 재계 단체장과의 오찬에선 윤 당선인의 관계 개선 의지에 큰 기대를 거는 발언이 이어졌다.
대표단은 정계 인사들도 다수 만났거나 만날 예정이다. 25일 일한의원연맹과 조찬을 하고 지한파인 니카이 도시히로 전 자민당 간사장을 만났다. 26일엔 일본 정계에 영향력이 큰 모리 요시로 전 총리와 면담했다. 귀국하기 전까지 아베 신조, 스가 요시히데 등 전직 총리 및 모테기 도시미쓰 자민당 간사장(전 외무장관) 등과 만날 것이란 얘기도 들린다. 정·재계 실력자와 내각이 총출동해 방일 대표단을 반기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의 관계 개선 피해
이런 분위기는 지난해 초 부임한 문재인 정부의 강창일 주일한국대사가 아직도 총리와 외무장관을 만나지 못한 상황과 대비된다. 강 대사의 부임 직전인 지난해 1월 서울지방법원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손해배상 요구를 인정한 판결이 영향을 미쳤다. 최악으로 불렸던 한일 관계는 이 판결로 더욱 경색됐고, 당시 스가 총리와 모테기 외무장관은 새로 부임한 한국 대사를 냉대했다. 모테기 장관은 “바빠서 못 만났다”는 어이없는 핑계를 대기도 했다.
지난해 가을 취임한 기시다 총리와 하야시 외무장관도 강 대사를 만나지 않았다. 이들은 주변국과 관계를 중요시하는 자민당 내 파벌 ‘고치카이’ 출신인데도 “한국이 징용·일본군 위안부 소송 관련 납득할 만한 해결책을 가져오라”는 이전 내각의 고압적 태도를 유지했다. 미국으로부터 대북 공조 등을 위한 양국 관계 개선 요구가 계속됐지만, 당내 기반이 약한 기시다 총리는 여론에 반하는 문 정부와의 관계 개선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윤석열 취임으로 일본 정부도 대화 창구 열 듯
반면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적극적인 한일 관계 개선 의사를 밝혔고 선거캠프 내 지일파 인사도 있어, 일본 정부 측도 기대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2017년 대선에서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가 ‘한일 위안부 협정 파기’를 공약했듯, 과거에는 보수 정당의 후보도 국민 감정을 고려해 대일 관계 개선에 소극적이었다는 점에서 윤 후보의 언행은 일본에서도 이례적으로 여겨졌다.
26일 대표단과의 만남에서 기시다 총리가 “한일 관계 개선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말한 만큼, 일본 정부도 그동안 막아 놨던 대화 창구를 열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다음 달 10일 윤 당선인의 취임식에 기시다 총리가 참석할지에 대해선 아직 신중한 전망이 많다. 기시다 내각 역시 ‘징용·일본군 위안부 소송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으라’는 입장을 고수해왔기 때문이다. 우익 성향의 사토 마사히사 자민당 외교부회 회장은 기시다 총리의 취임식 참석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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