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과의 격차 5년 전 33%p→17%p로
총선서 RN 의석수 늘리면 정치적 입지↑
“43%가 넘는다는 득표율 (추정치) 자체만으로도 눈부신 승리를 거뒀다. 이번 패배는 희망의 한 형태다.”
24일(현지시간) 치러진 프랑스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에서 극우 성향의 마리 르펜(53) 국민연합(RN) 후보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며 이같이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44) 프랑스 대통령과의 대선 ‘리턴 매치’에서 과반 득표에 실패하며 또다시 고배를 마셨지만, 적지 않은 정치적 성과를 거뒀다는 자평이다. 명실상부한 차기 대권 주자로 자리매김하면서 5년 뒤 엘리제궁 입성에 한발 더 다가갔다는 평가도 나온다.
프랑스24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르펜 후보는 결선 투표에서 41.46% 득표율로 58.54%를 얻은 마크롱 대통령에게 패했다. 세 번째 대권 도전 실패이지만, 표정은 나쁘지 않다. 이번 선거에서 르펜 후보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국민 10명 중 4명의 지지를 받았다는 점은 가장 큰 성과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배출된 프랑스의 어떤 극우 정치인들보다 높은 지지율이다. 특히 마크롱 대통령과의 득표율 차는 17%포인트에 그친다. 2017년 처음 맞붙었을 당시(33%포인트 차)보다 절반 이상 줄었다. 지지층이 확연하게 늘었다는 얘기다.
프랑스가 대선에 결선 투표 제도를 도입한 이후 극우 성향 정치인이 결선까지 올라간 것은 2002년, 2017년에 이어 올해가 세 번째다. 2002년에는 르펜 후보의 아버지이자 원조 극우 아이콘인 장마리 르펜이 RN 전신인 국민전선(FN) 후보로 결선에 진출, 17.8%의 득표율을 얻었다. 20년 뒤 치러진 대선에서 딸이 아버지보다 2배 넘는 표를 끌어 모은 셈이다.
프랑스 정계 ‘변방’에 있던 극우 정당이 현직 대통령을 견제할 막강한 주류 세력으로 성장한 데는 르펜의 개인 역량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영국 가디언은 “르펜은 유권자 설득을 위해 ‘프렉시트(프랑스의 유럽연합 탈퇴)’ 정책을 철회하고 강경 이미지 개선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실제 그는 올해 대선을 앞두고 종교, 인종 등 논란을 일으킬 만한 발언을 자제하는 한편, 그간 공개하지 않았던 사생활도 노출하며 대중에 친밀감을 높여왔다. 이 결과 ‘악마’와 같은 극우 정당 이미지는 희석되고 ‘믿을 만한 민족주의 정당’으로 변주했다.
르펜 후보는 6월 예정된 총선에서 극우 진영 의석수 확대를 위해 전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프랑스와 국민에 대한 헌신을 지속할 것”이라며 “(선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수주 뒤 총선이 있다”고 강조했다. 2017년 대선 한 달 뒤 치러진 총선에서 RN은 하원 의석 577석 중 8석을 얻는 데 그쳤다. 만약 이번에 늘어난 지지층을 기반 삼아 의석을 늘릴 경우, 르펜 후보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단단해질 전망이다.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벌써부터 그를 유력 차기 대권 주자로 바라보는 시선도 나온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르펜은 패배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권력에 가까이 다가갔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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