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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사이트에 내 사진… 처벌 쉽잖은데 경찰까지 미온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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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음란사이트에 내 사진… 처벌 쉽잖은데 경찰까지 미온적

입력
2022.04.25 17:30
수정
2022.04.25 18:16
10면
0 0

경찰에 피해 알리자 "법적 음란물 아니다"
사이트 차단 요청하자 "해외 사이트라 안 돼"
호스팅업체 연락하자 20분 만에 차단 완료
"처벌 근거 신속 마련·전향적 수사 병행돼야"

피해자 전모씨 사진을 도용해 만든 인스타그램 계정. 전씨 제공

피해자 전모씨 사진을 도용해 만든 인스타그램 계정. 전씨 제공

성인 사이트에 사진을 도용당한 여성에 대한 경찰의 무성의한 대응이 도마에 올랐다. 사건 신고를 하자 법적으로 문제 삼기 어렵다며 접수를 거절했다가 뒤늦게 처벌 조항을 찾았다고 해명하는가 하면, 사이트 차단 요구는 "불가능하다"고 속단하며 들어주지 않다가 피해자 측이 금세 해결하자 머쓱한 상황을 맞았다. 전문가들은 사이버상 성적 침해 행위가 다변화하고 있는 만큼, 신속한 처벌 근거 마련과 수사기관의 전향적 태도가 병행돼야 한다고 주문한다.

성인 사이트에 사진 도용됐지만… 경찰 "처벌 어려워"

25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전모(27)씨는 이달 6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의 음란물 홍보 계정에 자신의 사진이 도용된 사실을 발견했다. 해당 계정은 전씨의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했고 계정 이름도 전씨 계정 아이디와 유사했다. 계정 소개란엔 '18세 미만 접근 금지' 기호가 있었고 게시된 링크를 누르면 '선정적인 란제리(Lewd Lingerie)' '매운맛 유료 콘텐츠(Spicy locked content)' 등 음란물을 암시하는 문구로 도배된 성인 사이트로 연결됐다.

전씨의 사진을 도용한 인스타그램에 링크된 사이트. 전씨의 사진을 사용했으며, '선정적인 란제리(Lewd Lingerie)'나 '매운맛 유료 콘텐츠(Spicy locked content)', 비키니, 코스튬 플레이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전씨 제공

전씨의 사진을 도용한 인스타그램에 링크된 사이트. 전씨의 사진을 사용했으며, '선정적인 란제리(Lewd Lingerie)'나 '매운맛 유료 콘텐츠(Spicy locked content)', 비키니, 코스튬 플레이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전씨 제공

전씨는 피해를 확인한 당일 수원남부경찰서를 찾았지만 사건을 접수하지 못했다. 담당 수사관은 음란물 유포죄가 적용돼야 고소장 접수가 가능한데, 해당 사이트는 '법적인 음란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를 댔다. 2008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노골적인 방법으로 성적 부위나 행위를 적나라하게 표현·묘사해야 음란물로 분류되는데, 전씨 사례는 연결된 사이트에 '섹스'처럼 직접적인 성관계를 표현하는 단어가 없고 성관계 영상으로 추정되는 게시물이 있긴 했지만 흐릿하게 처리돼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이트 차단 요청엔 "해외 사이트라 어렵다" 속단

이에 전씨는 호스팅 업체(개별 사이트에 웹 서버를 대여하는 통신 업체)를 통해 해당 사이트만이라도 차단할 수 없겠느냐고 물었지만, 경찰은 이 역시 어렵다고 말했다. 해외 사이트는 한국 경찰과 잘 공조해주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전씨가 "호스팅 업체가 한국어 서비스도 지원하고 있다"고 재차 조치를 요청하자,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걸 보면 결국 외국 사이트라는 것 아니냐"는 답이 돌아왔다. 담당 경찰관은 차단을 원한다면 직접 방송통신위원회에 신청하라고 안내했다.

하지만 경찰의 예단과 달리, 전씨가 호스팅 업체에 연락하자 20분 만에 해당 사이트의 접근이 차단됐다. 업체는 피해 사실을 설명하는 전씨의 이메일에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으니 다른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 달라"고 답장했다.

전씨가 호스팅 업체로부터 받은 메일. "당신의 이름과 사진을 이용한 가짜 사이트가 만들어져 유감"이라며 "사이트 접근이 제한됐다"고 설명했다. 전씨 제공

전씨가 호스팅 업체로부터 받은 메일. "당신의 이름과 사진을 이용한 가짜 사이트가 만들어져 유감"이라며 "사이트 접근이 제한됐다"고 설명했다. 전씨 제공

전씨는 수사관들이 고압적 태도를 보였다고도 주장했다. 피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남성 수사관 2명이 "(블러 처리된) 동영상 원본을 가져와야 한다"고 언성을 높였고, 본인이 울음을 터뜨리자 "도와주려고 하는데 왜 화를 내고 우느냐"고 말했다는 것이다. 전씨는 "사이버 성범죄 피해로 방문한 사람에게 경찰관이 그렇게 언성을 높이는 게 2차 가해가 아니면 무엇이냐"며 "다시 성범죄에 노출이 됐을 때 경찰을 믿고 신고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일상사진 도용도 처벌 근거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법적 음란물만 처벌하는 현행법의 한계로 인해 전씨와 같은 피해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상 사진을 성적 맥락으로 도용하는 사례가 갈수록 늘고 있지만, 수사기관에선 음란물에 해당하지 않아 처벌할 수 없다며 고소조차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신상 정보나 평범한 사진만으로도 성적인 괴롭힘이 가능한데 관련 법이 없어 가해자가 입건조차 되지 않는다"며 "당사자는 명백히 성적 침해로 느끼지만 아무 조치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건 접수가 되지 않으니 피해자들은 범죄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해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경찰은 수사관 대응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전씨에게 사과했다고 밝혔다. 수원남부경찰서 관계자는 "해당 직원에게 과실이 있다고 판단하고 조사 중"이라며 "담당 과장이 피해자에게 연락해 사과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전씨가 방문하고 나서 이틀 뒤 관련 첩보를 생산해 사건 조사에 착수했다고도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법리 검토를 통해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2항(자기 또는 타인에게 이익을 주거나 타인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을 적용하기로 했다"며 "인스타그램에 영장도 신청했다"고 말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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