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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풍 거센 베니스비엔날레... 흑인 여성 최고상 휩쓸다

입력
2022.04.24 18:13
수정
2022.04.25 09:07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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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몬 리 황금사자상
국가관 황금사자상은 영국관 대표작가 소냐 보이스
본전시 초청 작가 90%가 여성
한국 이미래·정금형 작품도 호평

23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제59회 베니스비엔날레 시상식에서 미국 흑인 여성 조각가 시몬 리가 황금사자상 최고작가상을 받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베니스 EPA/ANSA=연합뉴스

23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제59회 베니스비엔날레 시상식에서 미국 흑인 여성 조각가 시몬 리가 황금사자상 최고작가상을 받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베니스 EPA/ANSA=연합뉴스

127년 역사상 최초다. 세계적 권위의 국제미술전인 베니스비엔날레 최고의 영예는 모두 흑인 여성 예술가에게 돌아갔다. 최고의 작가와 국가관에게 주는 황금사자상을 각각 받은 미국의 조각가 시몬 리(55)와 영국관을 대표하는 소냐 보이스(60)가 그 주인공. 두 사람은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자신의 나라를 대표한 첫 흑인 여성이기도 하다.


아르세날레에 있는 본전시장 초입에 전시된 시몬 리의 'Brick House'. 권영은기자

아르세날레에 있는 본전시장 초입에 전시된 시몬 리의 'Brick House'. 권영은기자


첫, 첫, 첫... '흑인 여성' 최고상 싹쓸이

지난 23일(현지시간) 제59회 베니스비엔날레가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1년 연기되면서 3년 만에 공식 개막을 알렸다. 이날 열린 개막식 겸 시상식에 쏠린 관심은 여느 때보다 뜨거웠다. 본전시 최고작가로 선정된 리는 이번 비엔날레 최고의 스타다. 옛 조선소가 있던 아르세날레의 본전시장 초입엔 그의 분신이 버티고 서 있다. 5m에 이르는 거대한 여성 흉상 '브릭 하우스(Brick House)'다. 관람객을 단숨에 압도하는 이 조각상은 여러 갈래로 촘촘히 땋아 내린 콘로 머리를 하고 있다. 흑인 여성임에 틀림없다. 리는 흑인 여성의 강인함과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자르디니에 위치한 미국관에 전시된 시몬 리의 'Last Garment'. 권영은기자

자르디니에 위치한 미국관에 전시된 시몬 리의 'Last Garment'. 권영은기자

각 나라가 운영하는 국가관이 자리한 카스텔로 공원의 자르디니에서도 리는 단연 화제다. 미술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호평이 잇따르는 미국관의 대표 작가로도 참여한 것. 리를 내세운 미국관은 건물 외관부터 남다르게 꾸몄다. 신고전주의 양식의 기존 건물 지붕 위에 짚을 얹고, 나무 기둥을 세운 게 아프리카 전통 가옥인 론다벨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론 서구 열강이 식민지 문화를 '전시'했던 1931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식민지 박람회 당시 서아프리카관을 모티프로 삼았다고 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허리 숙여 빨래하는 흑인 여성('Last Garment')과 마주하게 되는데, 19세기 말 자메이카 홍보 엽서 사진 속 여성을 모델로 했다. 리는 청동, 도자, 영상 등 작품을 통해 서구 식민주의 유산을 비판적으로 응시한다. 미국관의 주제는 '자주권(Sovereignty)'이다.

'미술계 올림픽'으로도 불리는 베니스비엔날레는 국가관 간 경쟁을 통해 최고의 한 곳을 선정하는데 올해는 영국관이 뽑혔다. 영국관의 수상은 1986년 국가관상이 제정된 이래 처음인 만큼 이번 전시를 꾸민 보이스의 공이 컸다고밖에 할 수 없다. 보이스 역시 영국관 역대 첫 흑인 여성 작가다. 영국 음악사에 마땅히 이름을 올렸어야 했지만 되레 지워진 존재, 여성 흑인 뮤지션 5명의 목소리를 영상과 음성 등에 담아 전시장을 채웠다.


본전시장 자신의 작품 '엔드리스 하우스(Endless House: Holes and Drips)'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미래 작가. 티나킴 갤러리 제공

본전시장 자신의 작품 '엔드리스 하우스(Endless House: Holes and Drips)'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미래 작가. 티나킴 갤러리 제공


본전시 90% 여성 작가... 이미래·정금형 주목

이번 베니스비엔날레는 여풍이 거셌다. 뉴욕 하이라인파크의 예술 총괄 큐레이터인 세실리아 알레마니가 본전시 총감독을 맡았다. 그도 베니스비엔날레 최초의 이탈리아 여성 감독이다. 상상의 세계에 사는 동물을 그린 초현실주의 여성화가 리어노라 캐링턴의 책에서 따온 '꿈의 우유'를 주제로 △신체의 변형 △개인과 기술의 관계 △신체와 지구의 연결이라는 관점에서 전시를 기획했다. 문호를 크게 연 것도 이번 베니스비엔날레 특징이다. 예술적 성취를 이룬 100명 미만 작가로 본전시를 꾸려왔다면 이번엔 총 58개국 213명의 작가가 대거 초청됐다. 180명이 베니스비엔날레에 처음 참가했고, 무엇보다 90% 이상이 여성(192명)이다.

한국 작가로 이름을 올린 이미래(34)와 정금형(42) 역시 여성이다. 아르세날레에서 만난 이미래는 "(본전시는) 주변부에 물러나 있던 것들에 대한 성찬, 임파워먼트에 초점을 맞춘 것 같다"며 "여성성이 중요한 화두 가운데 하나인 것은 자명하다"고 했다. 설치 작품 '엔드리스 하우스(Endless House: Holes and Drips)'를 선보인 이미래는 해외 유력 미술전문지 '아트뉴스'가 선정한 본전시 베스트 10에 선정되면서 수상도 점쳐졌지만 다음 기회를 노리게 됐다. 이 작품은 도자로 만든 호스가 휘감겨 있고 그 안을 흐르는 유약이 바깥으로 뿜어져 나오거나 구멍에서 새어 나오는 형상이다. 생명체의 내장을 연상시키는 다소 불편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미래는 "구멍과 흐르는 것은 연약한 것들이지만 반대로 강력한 측면도 있어서 약함과 강함, 안과 밖이 전복된 것으로서 구현해 봤다"고 했다. 설치미술가 정금형은 인간과 기계의 결합에 대한 관심을 담은 '토이 프로토타입'을 선보였다.


한국관에 전시된 김윤철 작가의 '크로마 V'.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한국관에 전시된 김윤철 작가의 '크로마 V'.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내홍에도 호평... 한국관 '다음 기회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한국관은 설치미술가 김윤철(52)을 대표로 내세우며 수상을 노렸지만 불발됐다. 김윤철은 비늘처럼 조형물을 덮은 764개 셀이 움직이고 색을 발하면서 용이 똬리를 튼 것 같은 모습의 '크로마 Ⅴ' 등 6점을 선보였다. 한쪽 방에 설치된 '백 개의 눈을 가진 거인-부푼 태양들'은 우주 입자가 지구 대기권 공기와 충돌할 때 생성되는 뮤온 입자를 검출하고 이를 신호 체계로 바꿔 '크로마 Ⅴ'에게 전달한다. 이를 위해 한국관 천장을 뜯어냈다. "작품과 공간이 하나의 호흡을 이루고 있는 장소 특정적 전시"라는 게 이영철 예술감독의 설명이다. 한국관은 예술감독 선정 과정에서 잡음과 감독·작가 간 갈등, 문예위의 한계 등을 노출한 바 있다. 파행 속에서도 한국관은 세계적 권위의 미술 매체 아트뉴스페이퍼가 꼽은 꼭 봐야 할 7개의 국가관 중 하나로 선정됐다.

베니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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