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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키우는 건 상류층 전유 문화였다

입력
2022.04.21 19: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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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지
김선지작가

명화 속 반려견들

찰스 버튼 바버, '특별 변호인', 1893년, 캔버스에 유채, 97 x 127.6 cm, 개인 소장

찰스 버튼 바버, '특별 변호인', 1893년, 캔버스에 유채, 97 x 127.6 cm, 개인 소장

작은 소녀가 벽 구석에 시무룩하게 기대어 서 있다. 아마도 집 안에서 말썽을 일으키고 부모에게 꾸중을 들은 것 같다. 옆에는 보더 콜리 종의 반려견이 화면 밖 누군가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어린 주인의 잘못을 용서해달라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장난꾸러기 소녀가 처한 상황과 기분에 공감하고 연민을 드러내는 개다. 화가는 동물을 흥분, 갈망, 슬픔 등 인간의 표정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존재로 묘사한 것이다.

찰스 버튼 바버(Charles Burton Barber)는 동물 그림으로,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 큰 성공을 거둔 화가다. 궁정화가인 바버는 빅토리아 여왕 부부와 아이들, 개가 있는 왕실 초상화들을 그렸다. 바버는 어린이와 동물을 함께 그린 매우 감상적인 초상화로 유명했다. 그는 이런 작품들에서 애정으로 연결된 개와 인간의 특별한 관계를 표현했다. 그림의 시대적 배경인 19세기 영국에서는 두 가구 중 거의 한 집이 개, 고양이, 물고기, 새 같은 동물들을 애완용으로 길렀다. 특히, 개는 충성스럽고 용감한 동물이라고 여겨져 사랑받았다. 빅토리아 시대는 복음주의와 엄격한 도덕주의로 특징 지워진다. 동물을 기르는 것은 생명체를 돌보고 헌신하는 일이며, 어린이가 선함과 친절을 배우는 수단이라고 생각해 널리 권장되었다.

사실, 개는 선사시대부터 인류와 함께해왔다. 3만6,500년 전 벨기에의 고예트 동굴에서 개 유골과 여러 유물이, 3만 년 전 인도 빔베트카 동굴에서는 41마리의 개를 그린 암각화가 발견되었다. 구석기인들은 개를 길들이고 같이 생활했던 것이다. 개는 충실한 동반자, 사냥꾼, 친구이자 보호자로서 가족의 소중한 일원이었다. 한편, 이런 쓰임보다는 순전히 인간의 즐거움과 유희를 위한 애완견들도 생겨났다.

원래 애견문화는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에서는 부유한 귀족계층이 개를 애완용으로 길렀다. 중국에서도 한나라, 당나라,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사자개(페키니즈)가 궁정 여성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황실 권위의 표상인 사자개를 일반인들이 기르지 못하게 법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이렇듯, 동서양을 막론하고 개는 왕실이나 귀족계층의 사치품이자 부의 상징이었다. 그러던 것이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부터 중산층 사이에서도 애견문화가 보편화되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개와 고양이를 기르고 있고 반려동물을 위해 기꺼이 돈을 쓴다. 이런 흐름을 업고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 서비스, 각종 용품, 전용 미용실과 스파, 호텔 등 반려동물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반려동물 관련 사업도 현대만의 특성은 아니다. 고대 이집트와 로마 시대 사람들은 동물들이 죽으면 묘비를 세워주고 묘비명까지 새겼다. 시대에 따라 개목걸이 패션도 다채롭게 변화했다. 중세 유럽의 경비견과 군견은 뾰족한 장식이 박힌 목걸이, 사냥개는 가죽 목걸이를 했고, 귀족들의 반려견은 금, 은이나 보석이 박힌 사치스러운 목걸이를 걸고 다녔다. 왕실견들은 정교하고 아름다운 장식이 있는 밥그릇으로 고급 음식을 먹었고, 하인들의 시중을 받았으며, 벨벳이나 실크로 만든 쿠션에서 잠을 잤다. 고대 중국 한나라 영제는 자신의 개들에게 작위를 내리고 최고의 음식, 호사스러운 깔개를 하사했다.

라비니아 폰타나, '개와 함께 있는 귀부인의 초상', 1590년대, 캔버스에 유채, 97 x 72 cm, 오클랜드 아트 갤러리, 뉴질랜드

라비니아 폰타나, '개와 함께 있는 귀부인의 초상', 1590년대, 캔버스에 유채, 97 x 72 cm, 오클랜드 아트 갤러리, 뉴질랜드

요즘 반려동물과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는 이들이 많다. 르네상스 귀족 초상화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시기 남성 초상화에는 그레이하운드 같은 몸집이 큰 사냥개가 그려졌고, 무릎에 앉힐 수 있는 작은 랩독(Lapdog)은 여성 초상화에 등장했다. 몰티즈 같은 작고 귀여운 개들이 귀부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위 초상화에서 랩독을 안고 화가 앞에서 포즈를 잡은 귀부인의 개는 반려견이 아니라 애완용으로 보인다. 주인의 호화로운 차림새를 돋보이게 하는 일종의 장신구, 혹은 패션 아이템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개는 주인이 데리고 놀면서 즐기기 위한 장난감 같은 존재였다.

최근에는 '정치적 올바름'의 일환으로 애완동물(pet) 대신 반려동물(companion animal)이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동물권,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것이다. 한편으로는, 강아지 공장에서 인간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인위적으로 개량된 개들이 생산되고, 선호하는 반려견의 품종이 상품처럼 유행 따라 바뀌며, 유기견이 양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시대의 개는 애완견일까, 반려견일까?

김선지 작가·'그림 속 천문학'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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