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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게 많아, 쉽게 오해하고 화내며 산다

입력
2022.04.21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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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모처럼 집에서 쉬는 날. 아침 일찍 미뤄둔 청소와 빨래를 끝내놓고 아껴둔 드립백을 마시며 자리를 잡고 진짜 쉬려는데 어디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층간소음인가 싶어 조용히 소리의 실체를 파악하고 있자니 이건 분명 사람의 목소리다. 누군가 반복적으로 '아아 아아악' 소리를 내고 있다. 도대체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가만히 소리의 실체를 파악해보니 성인 남성의 목소리다. 언제 멈출지 모르는 괴성에 휴일을 방해받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뾰족해진다. '아니? 누가 아파트에서 자꾸 소리를 지르는 거야?' 괴성의 근원지를 찾아볼까 싶지만, 선뜻 나서기 무서운 마음. 몇 호에서 나는지도 모르니 관리사무소에 요청할 수 없어 입주민들이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 앱에 글을 남겼다.

5분 후, 도착한 쪽지 하나.

"안녕하세요. 게시글 보고 쪽지 드립니다. 저도 ○○○동 ○○라인 거주 중인데요, 9층인가 10층에 자폐증 증상이 있는 학생이 있습니다. 가끔 엘리베이터에서도 소리 지르더라고요. 혹시나 그 집 분들이 보실까 봐 쪽지로 드립니다." 나는 쪽지를 보자마자 서둘러 게시물을 삭제하고, 알려주셔서 감사하다고 쪽지에 답했다. 아뿔싸! 게시글 올린 사이에 혹여 가족들이 본 건 아닐까 걱정되어 마음이 불편해진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도 않고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휴대폰만 보고 있으니 이웃이 누군지도, 어떤 분들인지도 모르고 산다.

쪽지에 답을 하고는 검색창에 자폐증 증상을 검색했다. '큰 소리를 들으면 매우 놀라고 고통스러워하며 괴성을 지른다.', '어떤 감각 자극에 극도로 과민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어쩌면 이웃도 윗집의 층간소음으로 혹은 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이 시간을 견뎌내는 중일 것이다. 이웃의 괴성이 쉬는 날 나를 괴롭히기 위한 의도적인 소리가 아니라는 걸 안다. 때로는 자신을 제어할 수 없어서 내는 소리라는 것도. 불과 10분 전까지만 해도, 열을 내면서 공공주택에 무슨 매너냐며 씩씩거리기 바빴는데 이제는 계속 들리는 소리에 크게 날이 서지 않는다.

모르는 게 많아서 쉽게 오해하고, 화를 내며 산다. 가령 퇴근길 지하철이 연착된 상황을 마주했다고 하자. 겨우 탄 지하철 안에는 승객으로 가득하다. 피곤함에 짜증까지 더해지고 있는데 방송이 나온다. 장애인 시위로 인해 열차가 지연되어 죄송하다는 내용이다. 그들은 왜 시위하는 걸까? 휠체어를 타고 비장애인이 누리는 이동권을 장애인도 똑같이 누리고 싶기 때문이다. 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동권을 보장해달라며 시위를 하는 걸까?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하철을 이용하기 위해 시위를 한 적이 있나?' 생각해본다면 계속 화낼 수 있을까?

다시 쉬는 날이 돌아왔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복적인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자신을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이구나 생각한다. 괴성이 아닌 하나의 의사 표현이라 생각하면서 이어폰을 착용한다. 집안일을 끝내고, 집을 나와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휠체어가 탈 수 있는 리프트가 있는지, 엘리베이터는 사용이 가능한지, 휠체어의 위치에서 안내가 잘 되었는지를 살펴본다. 지하철에 앉아 시위에 대한 기사와 댓글을 살펴보며 생각한다. 시위는 비장애인들의 불편이기도 하지만, 장애인이 이동권을 갖기 위한 절박함이라는 걸.


김경희 오키로북스 전문경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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