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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펜의 변신

입력
2022.04.20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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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마리 르펜 국민연합 대통령 후보의 선거 포스터 옆으로 히잡을 쓴 여성이 걸어가고 있다. 베르사이유=로이터 연합뉴스

마리 르펜 국민연합 대통령 후보의 선거 포스터 옆으로 히잡을 쓴 여성이 걸어가고 있다. 베르사이유=로이터 연합뉴스

24일 프랑스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중도성향 에마뉘엘 마크롱(45) 대통령과 극우성향 국민연합(RN) 마린 르펜(54) 후보가 5년 만에 다시 맞붙는다. 선거 결과는 예측 불허다. 마크롱 대통령이 66%를 득표해 압승했던 2017년과 달리 르펜 후보는 지지율 격차 10%포인트 안쪽으로 마크롱 대통령을 뒤쫓고 있다.

□ 르펜 후보의 선전은 마크롱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사태 등 외교문제에 매진하는 동안 민생문제에 집중한 덕이다. 르펜 후보는 에너지 부가가치세를 20%에서 5.5%로 인하하고, 30세 미만 국민에게는 소득세 부과를 면제하는 등 유권자들의 피부에 와닿는 공약을 강조했다. 반면 난민ㆍ이민자 등 애국심을 자극하는 이슈에는 발언을 삼가거나 유연하게 대처했다. 반(反)이민 정책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우크라이나 난민 수용 문제에는 찬성한 게 그 예다. 공공장소에서 이슬람 여성들의 히잡 착용에 벌금을 물리겠다던 르펜 후보는 최근 이 문제를 의회에서 논의할 문제라고 비껴갔다. 프랑스 인구의 8%를 차지하는 무슬림을 의식한 행보라는 지적도 나오지만 그가 이념 정치에서 생활 정치로 중심을 옮기면서 지지자들의 외연이 확장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극우 이미지를 희석시키려는 르펜 후보의 시도는 처음이 아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현 국민연합 전신인 국민전선(FN)이 11개 도시의 시장을 차지하는 등 약진하자 르펜 후보의 아버지인 장 마리 르펜이 FN을 비난했던 예술가들을 향해 “화덕에 처넣어버릴 것”이라고 발언하면서 반유대주의 논란이 벌어졌다. 나치 독일의 가스실을 연상시키는 발언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그러자 딸 르펜이 “정치적 실수이며 FN은 모든 종류의 반유대주의를 강력히 반대한다”며 이를 수습했다. 2018년 애국주의적 느낌을 주는 국민전선의 당명을 국민연합으로 바꾼 것도 딸 르펜이다.

□ 극우 정치의 득세는 이제 흔한 현상이지만 유럽연합(EU)의 중심국인 프랑스에서 극우정당 후보가 대권에 가까워졌다는 점은 의미가 다르다. 반세계화에 동조하는 집토끼들을 위한 ‘정체성 정치’로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실용주의’의 기둥을 세우는 르펜 후보의 노회한 정치력이 절정에 이르렀다.

이왕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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