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대 화재로 숨진 영등포 고시원
주민 19명 중 10명이 기초생활수급자
70대 사망자는 불이 시작된 방에 거주
당국 "방화·실화 등 모든 가능성 열려"
서울 영등포구 소재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2명이 숨졌다. 사망자들을 포함한 고시원 거주자의 절반 이상은 기초생활수급자였다. 경찰은 사망자가 거주하던 방에서 불이 시작된 사실을 확인하고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소방청과 경찰에 따르면 화재는 11일 오전 6시 33분쯤 영등포구 영등포동의 지상 3층, 지하 1층 건물의 2층에 있는 고시원에서 발생해 3시간 만인 오전 9시 37분에 완전히 진화됐다. 이 고시원은 총 33개 실로 19명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 가운데 18명이 화재 당시 건물 안에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구조 과정에서 70대 남성과 60대 남성이 각각 고시원 복도와 휴게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모두 숨졌다. 70대 사망자는 발화 지점인 26호실 거주자로 바로 옆방인 25호실 앞 복도에서 발견됐다. 소방당국은 이들 모두 대피 과정에서 연기를 마시고 쓰러져 화상을 입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른 고시원 거주자 16명은 자력으로 건물을 빠져나왔으며 부상자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고시원에 설치된 스프링클러는 사고 당시 정상적으로 작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윤영재 영등포소방서 소방행정과장은 현장 브리핑에서 "고시원 각 방과 복도에 간이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었고 화재 당시 10분간 작동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고시원 화재 관련 주요 규제가 생긴 것이 2009년인데, 이 고시원은 2008년 2월 17일에 (스프링클러를 포함한) 안전설비 완비 증명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소방당국은 다만 스프링클러가 고시원 휴게실에 있는 수조와 연결된 간이 시설로, 방수량이 큰 불을 잡기엔 부족했을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관할 주민센터에 따르면 고시원 주민 19명 중 사망자 2명을 포함해 총 10명이 기초생활수급자다. 인근 주민들도 고시원을 '일용직 노동자들의 보금자리'로 기억했다. 50년 넘게 고시원 근처에서 살았다는 백모(66)씨는 "대부분 혼자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는 남자들이 살던 곳"이라며 "이른 아침부터 고시원에 소방차가 출동하고 연기가 크게 일어나는 걸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사망자 중 한 명은 거동이 불편해 대피에 어려움을 겪었을 거란 증언도 나왔다. 사고가 난 고시원에 7년간 거주했다는 A씨는 "새벽에 일터에 나가 있다가 고시원에서 불이 났다는 문자를 받고 돌아왔다"며 "(26호실 거주자는) 이곳에서 10년 가까이 살았는데, 다리가 불편해 끌고 다니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이르면 12일 합동감식을 진행하고 화재 원인을 밝힐 계획이다. 사망자 2명은 부검하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고시원 구조상 방 안에서 불이 시작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방화나 실화 가능성을 열어두고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라고 했다. 경찰은 고시원 건물 외부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녹화 영상을 확인한 결과 외부 침입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