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고비서 살렸던 환자, 몇 년만에 다시 만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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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고비서 살렸던 환자, 몇 년만에 다시 만났지만...

입력
2022.04.19 17:00
수정
2022.04.19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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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송태준 소화기내과 전문의

편집자주

의료계 종사자라면 평생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생명을 구한 환자일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에게 각별한 의미를 일깨워준 환자일 수도 있다. 아픈 사람, 아픈 사연과 매일 마주하는 의료종사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어린 군인이 응급실에 실려왔다. 폐렴이었다. 나는 초보 딱지를 막 뗀 전공의로서 자신감이 넘치던 시기였고, 폐렴쯤은 금방 치료될 걸로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예상과 달리 녹록지 않았다. 그 군인 환자는 훈련소에 있다 와서인지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다. 묻는 말마다 “괜찮습니다!”라고 씩씩하게 대답했지만 산소포화도는 점점 떨어지고 엑스레이 결과 폐는 더욱 하얗게 변해 갔다.

입원한 지 하루 만에 인공호흡기를 달아야 했다. 100% 산소를 줘도 산소포화도가 유지되지 않아 저체온증이 올 때까지 체온을 떨어뜨려야 했다. 각종 항생제와 항진균제까지 쏟아 부었지만 상태는 점점 더 나빠졌다.

외국 출장 중이던 환자의 아버지가 급히 귀국해야 할 만큼, 상황은 절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담당 교수님과 내가 환자 가족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가 전부였다. 환자 가족에겐 청천벽력이었다. 애지중지 키운 아들, 젊고 건강한 아들을 군대에 보냈는데, 갑자기 '마음의 준비'라니! 전쟁터에 투입된 것도 아니고, 훈련 중 사고가 난 것도 아닌데, 폐렴 때문에 아들을 보내야 한다니! 의사로서 그저 환자와 보호자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처음에 가졌던 나의 자신감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온갖 검사를 다 했지만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1970년대 미국 군부대에서 '아데노 바이러스'에 의한 폐렴이 젊은이들에게 집단 발생했다는 자료를 찾았다. 아데노 바이러스는 소아에게서는 종종 감기 같은 증상을 일으키지만, 성인에겐 폐렴을 일으키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 급하게 아데노 바이러스 검사를 시행했다. 아니나 다를까, 결과는 양성. 예전에는 사망률이 50%가 넘을 만큼 치명적이었지만, 이후 아데노 바이러스에 대한 항바이러스 주사가 개발돼 완치율이 높아졌다.

본격적 치료가 시행됐다. 환자의 상태는 기적처럼 좋아지기 시작했고, 한 달 만에 인공호흡기도 제거할 수 있었다. 기도에 삽입했던 튜브를 제거한 날은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환자 가족들에게도 내게도 결코 잊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환자를 살릴 수 있어 다행이었지만, 내겐 의사로서 겸손이 뭔지, 교만만큼 위험한 것이 없다는 걸 깨닫게 해 준 시간이었다.

며칠 후 나는 다른 진료과로 가게 되었고, 그 군인 환자도 많이 회복해 일반병실로 옮길 수 있었다. 퇴원하기 전 휠체어를 타고 내가 일하는 병동으로 놀러 오기도 했다. 1년 후, 환자는 건강한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다. 유학을 가게 되어 인사하러 왔다고 했다. 나는 건강하게 잘 다녀오라는 당부와 함께 그의 두 손을 꼭 잡아주었다.

나도 뒤늦게 군대를 갔다. 군의관은 편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훈련소 기간만큼은 피눈물 나는 훈련을 받는다. 그러다 나도 훈련소에서 환자가 됐다. 발목이 부러져 3주간 목발을 짚고 다녀야 했다. 내가 군대에서 환자 신세가 되니, 한동안 잊고 있던 그 군인 환자가 생각났다. 유학생활을 건강하게 잘 하고 있으려나.

제대 후 소화기내과 전임의를 시작했다. 회진을 돌던 어느 날, 한 병실에서 낯익은 얼굴을 만났다. 그 군인과 가족들이었다. 이번엔 환자와 보호자가 바뀌어 있었다. 아버지가 원래 간이 좋지 않았는데 안타깝게도 간암으로 입원한 것이었다.

간암의 가장 좋은 치료법은 간이식이다. 유일하게 간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들이었다. 하지만 그는 폐렴 이후 폐가 좋지 않아 긴 수술을 견딜 수 없었다. 가족들 역시 그걸 원치 않았다. 아들의 건강 상태와 과거 치료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나 역시 더 이상 간이식 얘기를 꺼낼 수 없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던 그를 만난 건 무척 반가웠지만, 가슴 아픈 재회였다.

간이식 대신 그의 아버지에겐 간동맥 색전술을 시행했다. 그의 퇴원 날, 난 마음속에으로 기원했다. '저 가족을 다시는 환자로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 가족이 행복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

아는 사람을 환자로 다시 만나는 건, 의사로서 가슴 아픈 일이다. 아무리 보고 싶은 사람이라도 환자 혹은 환자 보호자로 마주하면 마음이 좋지 않다. 특히 치료받고 퇴원했던 환자를 염증 재발 등으로 응급실 같은 곳에서 다시 마주하게 되면,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치료가 잘 끝나 건강해진 환자에게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더이상 안 오셔도 돼요. 혹시라도 증상 있으면 그때 오세요”고 말하면, 환자들은 기쁜 얼굴로 십중팔구 이렇게 답한다. "선생님, 정말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다음에 또 뵈어요." 그때마다 난 똑같이 얘기한다. "큰일 날 말씀. 우린 다시 보면 안 돼요. 건강히 잘 지내세요."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을 갖고 계신 의료계 종사자분들의 원고를 기다립니다. 문의와 접수는 opinionhk@hankookilbo.com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선정된 원고에는 소정의 고료가 지급되며 한국일보 지면과 온라인페이지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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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린 환자, 나를 깨운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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