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북구 미광전업 박무근 대표, 30년 나눔 인생
10년 익명 기부 약속 지킨 후 올 2월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
신장 172㎝지만 '키다리아저씨'로 불려 흐뭇
"금액 상관없이 나눔 문화 확산되길"
"10년간 10억 원을 기부하겠다"고 스스로 약속하고 이를 지킨 대구 '키다리아저씨'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2012년부터 연말이면 어김없이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화를 걸어 1억 원이 넘는 수표를 건넨 그는 2020년 12월까지 10억3,500여만 원을 기부했다. "이름도 직업도 묻지 말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는 주문만 남겼던 그는 172㎝의 보통 신장이지만 자연스럽게 '키다리아저씨'로 통했다. 자신과의 기부 약속을 지킨 후에도 지면 인터뷰조차 거부했던 그는 올 2월 22일 오후 2시에 아내와 함께 2억222만2,220만 원을 기부하면서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됐지만 그날조차 '키다리아저씨'인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아너소사이어티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운영하는 1억 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30년 가까이 기부 인생을 살아온 주인공은 대구 북구 검단동 미광전업㈜의 박무근(73) 대표다.
1979년 미광전업사를 설립한 박 대표는 40여년간 노력 끝에 국내 최대 전기 자재 회사로 성장하면서 기부를 생활화했다. 그는 2001년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전 직원 급여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기부키로 하고 통장을 개설했다. 해마다 한 번씩 이 통장이 21번 교체되는 동안 이어온 기부는 초창기 매월 100여만 원 수준에서 700만 원으로 늘었다. 박 대표는 2009년부터는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한국장학재단과 북한인권시민연합, 안중근의사기념관, 대한적십자,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월드비전, 종합복지관 등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왔다. 그는 2011년에는 모범납세자로 경제부총리상을 받았고, 2014년에는 고향인 군위에 교육발전기금을 기탁하고 결연아동을 돌본 공로를 인정받아 자랑스런 군위군민상도 수상했다.
지난 2019년에는 군위가 고향인 아버지의 나눔 정신을 기리기 위해 50년 전 고인이 된 아버지 이름으로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30년 가까이 20여억 원을 기부한 박 대표는 '기부' 대신 '나눔'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달라고 말했다. 8일 미광전업 사무실에서 박 대표를 만났다.
-2012년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처음으로 기부했다. 그 전에도 따로 기부했나.
"26, 27년 전부터 익명으로 기부를 시작했다. 적게는 100만 원부터 기부했는데 고향인 군위부터 어린이재단 등 사회단체까지 여러 기관에 직접 전달했다. 개인적인 치적보다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의 손길이 간다는 본질이 중요하기 때문에 드러내지 않았다."
-모금회에 기부한 이유가 따로 있나.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금을 맡겨 놓으면 어디다 사용했는지 궁금했을 텐데.
"궁금하기도 하지만 일일이 캐묻고 확인하지는 않았다. 어쩌다 쓰임새를 지정해서 기부하면 모금회가 확실하게 처리해준다. 한 번씩 궁금해서 물어보기도 하지만 사용 내역이 주기적으로 통보되기 때문에 내역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모금회도 자체적으로 감사 구조가 있고 예산 규모나 집행 계획 등이 뚜렷하며 기부자의 의도에 맞게 잘 쓰고 있어 믿음이 간다."
-아내에게도 기부 사실을 비밀로 했다 나중에 언론에 난 메모 글씨체로 들켰다고 들었다.
"사실 아내는 예전부터 내가 여기저기 기부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비밀도 아니었다. 하지만 2012년 당시 처음으로 큰 금액(1억 원)을 기부할 때는 비밀이었다. 들키고 나서는 '이야기 안 해서 미안하다'며 사과하고 '흐흐흐'하며 웃고 넘어갔다. 아내가 살림을 살고 가정을 이루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 정도로만 얘기하고 넘어갔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내 덕이 컸다."
-가족들은 기부 사실을 알고 자랑스러워할 것 같다. 본인은 둘째치고, 가족들이 기부 사실을 비밀로 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자랑스러운 것보다 비밀 유지가 중요했다. ‘다른 데 얘기 하지 말라’고 철저히 입단속을 했더니 가족들이 잘 지켜줬다."
-키다리아저씨로 불리는데 실제 키와 나이는.
"단지 익명으로 해달라고 했는데 키다리아저씨로 불렸다. 키가 커서 그런 것은 아니다. 172㎝, 1948년생인데 주민등록상으로는 1949년생이다."
-키다리아저씨라는 별명을 들었을 때 어땠나.
"익명을 요구했더니 언론에서 붙여준 이름이다. 들어 보니 나쁜 의미는 아닌 것 같았고, 좋게 얘기를 해줘서 싫지는 않다."
-회사를 경영하다 보면 어려울 때가 있었을 텐데, 기부를 미뤄도 되지 않았나.
"어려운 때가 있었지만 기부할 여건이 될 때마다 계속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약속한 것은 지키자는 일념이었다. 스스로에게 한 약속이니까 지켜야 했다."
-2019년 2,000여만 원을 기부할 때 '금액이 적어서 미안합니다. 나누다 보니 그래요'라는 메모를 첨부했는데, 어떤 상황이었나.
"여기저기 기부하다 보니 금액이 그렇게 됐다.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50년이 넘었다. 내 이름으로 하려니 숨겨야 하고 고향인 군위에는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없었던 터라 아버지를 아너소사어티 회원으로 만든 거다. 고생 많이 하시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 생각에 그렇게 하다 보니 금액을 나누게 됐다."
-수익의 3분의 1을 기부했다고 들었다. 실제로 기부액이 그 정도 규모인가.
"실제로는 3분의 1이 넘을 거다."
-지금 이름을 드러낸 이유는 있나.
"난 완벽한 사람이 아니고,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조심했다. 스스로 당당하더라도 자식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가 악플에 시달리는 꼴을 보기 힘들 것 같았다. 가족에게 부담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미뤄 왔는데 이제는 나눔 문화를 확산하는 차원에서 결심하게 됐다."
-10년 약속은 지켰다. 그렇다고 기부를 그만둔다는 말로 들리지는 않는다.
"힘 닿는 데까지 계속 이어갈 거다. 같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어느 정도 힘이 됐으면 좋겠다. 서로 돕는 문화, 나눔 문화가 확산되면 좋겠다. 금액은 상관없다. 용기를 갖고 한번 해보면 선한 마음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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