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난민인권연합 김희정 총무 인터뷰>
'트라우마' 안고 살아가는 탈북민 대다수
상담 통한 치유 뒤 진정한 다시 서기 가능
"탈북민 경험 공유 전문 상담가 될래요"
"라면 하나를 주는 대신, 진심으로 마음을 들여다보고 상처를 치유할 기회를 준다면 탈북민들이 스스로 일어나 살아가지 않을까요?"
김희정 탈북난민인권연합 총무
2006년 9월 열다섯 살이던 김희정(31) 탈북난민인권연합 총무는 네 살 어린 여동생과 중국 국경을 넘어 캄보디아로 탈출하기로 했던 그날 밤의 '트라우마'를 지우지 못하고 있다. 탈북 브로커는 밀입국을 앞두고 김 총무와 동생, 그리고 다른 탈북여성 3명을 화장실로 데려가 씻으라고 했다. 김 총무를 향해서도 손을 뻗쳤던 브로커는 다른 여성을 데리고 나가 성폭행했다.
김 총무는 최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탈북민이 폭력에 노출되는 것은 일상이며 예외가 없다"며 "목숨이 걸린 일인 데다 국경 근처라 소리도 못 지른다는 걸 알기에 브로커가 그걸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탈북난민인권연합회에 가입한 지 겨우 넉 달 된 신참이지만 연합회 총무라는 중책을 맡았다. 김 총무는 "남한에서의 삶이 워낙 정신 없어서 끔찍했던 기억이 금세 가슴속에 묻혔지만, 절대로 지워지진 않는다"고 강조했다. 사회생활 중 크고 작은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트라우마가 고개를 쳐든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와 강제 수용소, 고문과 폭력에 노출된 이들의 트라우마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죠. 제대로 일을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생면부지 땅에 도착한 탈북민들에게 식료품 등 물질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진정 필요한 것은 '마음의 치유'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김 총무는 자신의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 올해부터 장로회신학대의 기독교와사회대학원에서 상담심리를 배우고 있다. 다른 탈북민의 트라우마를 치유해주기 위한 목적이지만, 김 총무 스스로 바로 설 수 있는 기회도 얻고 있다.
남북하나재단 등이 현재 상담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김 총무는 "실효성이 없다"고 단언한다. 남한 상담자들과 탈북민들 삶이 너무 달라 '예의상 이야기할 뿐' 진정으로 공감받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밤새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은 탈북민에게 '50분' 내에서만 상담이 허용되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김 총무는 자신도 상담받은 적이 있는데, 상담사와 '직면(행동, 사고, 감정에 있는 불일치와 모순을 깨닫도록 하는 것)' 과정이 잘 안 맞았다고 회고했다. "교수님이 저에게 생각이 너무 이분법적이라고 언급해 '나만 그런가' 생각했죠. 알고 보니 위계가 정해진 북한 체제와 관련이 있더라고요. 교수님은 이런 점을 완전히 배제했어요. 살아온 삶이 너무 다르다 보니, 그분이 상처를 주려고 한 것은 아닌데 결국 상처가 됐죠."
실제로 적지 않은 탈북민들이 남한에서 정서적 불안을 겪는다. 올해 초 통일부가 공개한 '2021년 하반기 북한이탈주민 취약계층 조사'에 따르면, 취약계층으로 분류된 탈북민 1,582명 중 47%가 정서적·심리적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김 총무는 탈북민의 트라우마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이를 치유하는 상담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목숨 걸고 국경 넘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거든요. 정부가 상담 초기부터 마음을 활짝 열어주는 '탈북민 출신 심리상담 전문가'를 양성하면 어떨까요. 다음 세대 탈북민 정착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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