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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무실에 가려진 한남동 관저 시대

입력
2022.04.08 04:30
수정
2022.04.08 05:33
26면
0 0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월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월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위한 예비비 360억 원 지출안을 의결했다. ‘용산 대통령 집무실 시대’가 열리는 건 이제 시기의 문제가 됐다.

용산 시대는 한남동 관저 시대를 의미하기도 한다. 집무실 부지 내에 관저 신축도 검토한다지만 임기 내 마무리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국회의장∙대법원장 공관이 모여 있는 한남동에서 출퇴근한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출퇴근 길을 공유할 시민들은 교통 불편을 염려한다. 경찰은 초 단위로 신호기를 조작할 수 있어 문제될 게 없다고 한다. 시민 불편이 없는 게 아니라, 대통령의 이동 때문에 정체가 생겼단 사실을 눈치채지 못해 문제가 없다는 안일한 인식이다.

관저 이전의 진짜 문제는 ‘직주(職住)분리’에서 오는 권력 감시의 어려움이다. 지금까지 청와대에 ‘들어간다’는 건 극진한 의전을 받는 특권이기도 했지만 대통령과 가족이 24시간 견제를 받는 의미이기도 했다. 청와대는 담장 밖에서 보면 소통이 힘든 구중궁궐 공간이지만, 안에 있으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는 감옥일 수 있다. 하지만 윤석열 당선인과 가족은 이제 하루종일 쏠리는 시선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게 됐다.

불과 5년여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불러온 민간인 국정농단의 주역은 관저를 무시로 드나들었던 ‘보안 손님’들이었다. 대통령의 사적 손님인 보안 손님은 경호실조차 인적 사항을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청와대 본관이나 영빈관, 여민관 출입문을 통하지 않으면 관저 출입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익명의 보안 손님이 출입했다는 최소한의 기록이 남아 있었고, 이는 국정농단 사태의 실체를 밝히는 단초가 됐다. 집무실과 관저가 한 데 있는 공간 구조가 관저 권력을 견제하는 최후의 안전장치가 된 셈이다.

해외 주요국 정상은 집무실과 거주 공간을 달리하는 경우를 찾기 힘들다. 미국은 백악관 본관 3층에 대통령 가족이 거주한다. 웨스트윙(서관) 오벌 오피스(대통령 집무실)와 이어진 공간이다. 영국은 다우닝가 10번지 건물 2층에 총리 집무실이, 3층에 관저가 있다. 독일의 ‘분데스칸츨러암트’는 7층이 총리 집무실, 8층이 관저다. 프랑스도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가 모두 엘리제궁에 있다.

직주분리를 이룬 주요국 정상은 모스크바 크렘린궁 집무실에서 20여㎞ 떨어진 ‘노보 오가료보’ 별장을 관저처럼 쓰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정도다.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운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도 7년여 집권 기간 내내 도쿄 번화가의 자택에서 생활했다. 관저에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에다 입주한 총리는 임기 1년을 전후로 퇴진한 선례 때문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4연임이 유력했던 아베 전 총리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건 귀신이나 징크스가 아닌 모리토모 학원∙벚꽃놀이 스캔들 등 권력을 사유화한 가족∙측근 관련 비리 의혹이었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윤 당선인의 말마따나 집무실∙관저 분리는 생각지 못한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다. 가뜩이나 대통령 가족과 측근을 견제 감시하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기로 했다. 새 정부가 관저 권력의 사유화와 이해충돌 감시 등을 어떻게 차단할지 구체적 계획이 서 있지 않다면, 한남동 관저는 얼마 가지 않아 소모적 정치 공방의 단골 소재가 될 수밖에 없다.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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