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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별난 상태로 내버려둬" 본래 있는 것을 지킨 도시

입력
2022.04.09 04:3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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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포틀랜드

편집자주

부부 소설가인 강보라 박세회 작가가 동네에 얽힌 사회 문화적 단편을 감성적 필치로 담아냅니다.


포틀랜드는 창조적 사람들이 커뮤니티 의식을 바탕으로 자연친화적 삶을 추구하는,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히는 곳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포틀랜드는 창조적 사람들이 커뮤니티 의식을 바탕으로 자연친화적 삶을 추구하는,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히는 곳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3월 어느 일요일, 가까운 지인이 주최하는 와인 시음회에 다녀왔다. 프로젝트성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포틀랜드 온 테이블 프로젝트(Portland on Table Project)’에서 마련한 포틀랜드 와인 시음회. 말 그대로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생산한 20여 종의 내추럴 와인을 원 없이 맛볼 수 있는 자리였다.

행사 취지에 맞게 ‘PDX(포틀랜드의 애칭)’라고 쓰인 모자를 쓰고 가겠다는 남편을 겨우 뜯어 말린 뒤 함께 행사가 열리는 옥수동으로 향했다. 가게 앞 야외 공간에는 다양한 와인이 담긴 아이스버킷이 잔뜩 나와 있었고, 손님들은 입구에서 받은 작은 잔을 들고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와인을 맛보느라 분주했다. 안주로 페어링된 치즈버거부터 간이 스탠딩 테이블, 흥을 돋우는 감각적인 디제잉까지 평소 캐주얼한 식문화를 추구하는 주인의 철학이 물씬 느껴지는 행사였다. 서울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오래 살았던 지인은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포틀랜드 와인의 매력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했다. 와인을 맛보니 확실히 가격 대비 품질이 뛰어났고 레이블마다 개성이 넘쳤다. 과연, 그가 왜 그렇게 포틀랜드 와인 홍보에 열심인지 알 것 같았다.

사실 내게도 포틀랜드는 조금 각별한 도시로 남아 있다. 팬데믹이 본격화하기 전 남편과 함께 방문한 마지막 해외 여행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게 벌써 2년도 더 전의 일이다.

여행 첫 이틀은 그곳 사정도 파악할 겸 포틀랜드에 사는 친한 선배 집에서 신세를 졌다. 나와 같은 잡지사 에디터 출신으로 미국인 남자와 결혼해 뉴욕과 LA를 거쳐 포틀랜드에 정착한 선배는 다운타운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의 정원 딸린 주택에서 키 190㎝가 넘는 멋진 남편과 이제 갓 돌을 넘긴 사랑스러운 딸, 그리고 몸집은 산만 하지만 성격은 순하디 순한 반려견 ‘두부’와 함께 살고 있었다.

포틀랜드의 거리 음악가들. 진보 성향이 강한 시애틀과 히피 문화의 본고장인 샌프란시스코 사이에 위치한 이 도시의 바탕에는 과거 북유럽 이민자와 히피들을 넉넉히 받아들였던 서부 해안 지역의 자유로운 문화가 깔려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포틀랜드의 거리 음악가들. 진보 성향이 강한 시애틀과 히피 문화의 본고장인 샌프란시스코 사이에 위치한 이 도시의 바탕에는 과거 북유럽 이민자와 히피들을 넉넉히 받아들였던 서부 해안 지역의 자유로운 문화가 깔려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수년 전 그녀가 라라랜드를 떠나 포틀랜드로 이주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정말 선배다운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서울에 살 때도 그녀는 트렌드를 놓치는 법이 없었다. 신사동 가로수길이 유명해지기 한참 전부터 가로수길에 살았고, 이후 해방촌으로 터를 옮기며 곧 들이닥칠 이태원 신드롬을 본능적으로 간파했던 그녀였다. 당시 포틀랜드는 힙스터의 본향이자 B급 문화의 메카, 전 세계에 지속가능한 삶의 가치를 설파한 ‘킨포크 스타일’의 발원지로 국내외에 빠르게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창조적 사람들이 커뮤니티 의식을 바탕으로 자연친화적 삶을 추구하는,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히는 곳. 유행에 민감하고 평소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선배가 아이를 가진 뒤 포틀랜드로 눈을 돌린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선배는 포틀랜드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인터넷에서 미리 검색한 마이크로 브루어리와 카페 명단을 내밀자 그녀는 자기는 다 모르는 곳이라고, 도움이 못 돼 미안하다며 멋쩍게 웃었다. 그러고는 괜찮다면 다가오는 주말에 자신의 가족과 함께 차로 30분 거리인 콜롬비아 계곡에 가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남편과 나는 고맙지만 우린 일단 시내부터 구경하겠다고, 계곡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며 얼버무렸다. 나는 '킨포크 매거진'에 나오는 ‘스텀프타운’과 ‘에이스 호텔’을 실물로 볼 생각에 들떠 있었고, 남편은 오래전 출장차 들렀던 나이키 본사와 세계 최대 규모의 중고 책방 ‘파웰북스’를 필수 코스로 일찌감치 정해둔 터였다. 어딜 가든 유명한 곳 찾아다니기 바쁜 도시 촌놈들에게 계곡 따위가 안중에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런 우리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배는 손수 가꾼 텃밭을 보여주며 직접 기른 상추며 아름드리나무 칭찬을 자식 자랑하듯 늘어놓았다. 그러더니 내일 아침에는 이웃집에서 준 블루베리로 아침을 만들어주겠다며 활짝 웃었다. 우리는 선배가 아이 키우느라 멋진 곳에는 갈 시간이 없는 모양이라고, 괜히 난처하게 만들지 말고 우리끼리 알아서 찾아 다니자며 입을 맞췄다.

포틀랜드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중고 책방 ‘파웰북스’. 게티이미지뱅크

포틀랜드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중고 책방 ‘파웰북스’. 게티이미지뱅크


포틀랜드에서의 첫 이틀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아침 일찍 파머스 마켓에서 장을 보고, 현지인만 안다는 브루어리를 물어 물어 찾아가는 등 포틀랜드라는 이름값에 걸맞은 힙한 풍경을 찾아 헤맸지만 돌아볼수록 ‘이제 웬만한 건 서울에 다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온몸에 문신을 한 젊은이들과 내공이 엿보이는 인디 레코드 가게, 코스트코 규모의 거대한 빈티지숍과 공원에서 대놓고 마리화나를 피우는 주민들의 모습이 흥미롭긴 했지만 이틀 정도 돌아보고 나니 그 풍경도 곧 시들해졌다. 포틀랜드에 사는 ‘포틀랜더’라고 해서 꼭 멋지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거리는 따뜻한 날씨를 찾아 남쪽으로 내려온 노숙자들로 바글거렸고, 개중에는 우리 같은 아시아인에게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는 이도 있었다. 처음 탄 버스에서 마리화나에 취한 백인에게 “병 옮기지 말고 중국으로 돌아가라”는 식의 폭언을 듣기도 했다.

여행 마지막 날, 우리는 굴복하는 심정으로 콜롬비아 계곡으로 향했다. 선배와 그의 남편 제레미가 첫날부터 입이 닳도록 추천한 멀트노마 폭포를 보기 위해서였다. 낙차가 190미터에 달하는 폭포는 조금만 가까이 가도 사방으로 튀는 포말에 옷이 흠뻑 젖을 만큼 그 기세가 대단했다. 남편은 어찌나 감명을 받았는지, 돌아와서 이 폭포를 새 단편의 주요 소재로 삼았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도심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이처럼 스펙터클한 대자연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돌아오는 길 비행기 안에서 나는 여행 내내 가방 안쪽에 구겨져 있던 포틀랜드 지도를 펼쳤다. 도심 한가운데를 박력 있게 관통하는 윌래밋 강과 시내 중심부에 촘촘히 놓인 다리들, 도시를 에워싼 드넓은 태평양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머릿속에 막연히 이미지로만 맴돌던 ‘포틀랜드적 삶’의 실마리가 비로소 손에 잡히는 순간이었다.

멀트노마 폭포는 오리건주 콜롬비아 강 협곡에 있는 미국 서부 지역에서 가장 높은 폭포다. 게티이미지뱅크

멀트노마 폭포는 오리건주 콜롬비아 강 협곡에 있는 미국 서부 지역에서 가장 높은 폭포다.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서해안 오리건주 북서부에 위치한 포틀랜드(PORTLAND)는 그 이름이 암시하듯, 목재를 운반하는 항구도시로 역사를 시작했다. 1930~40년대에 윌래밋 강을 따라 많은 조선소가 들어섰고 이후 태평양전쟁을 거치며 미 북서부를 대표하는 공업도시로 발전했다(오늘날 포틀랜드는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가장 심한 도시 중 하나인데, 이는 과거 조선업 외에 외부인을 끌어들일 만한 산업이 거의 없었던 특유의 환경에서 기인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윌래밋 강은 미국에서 가장 오염된 강에 속했고 시내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광화학 스모그 경보가 울려퍼졌다.

그토록 슬럼화된 도시가 어떻게 지금의 ‘그린 시티’로 변모했는지는 포틀랜드 시 도시계획 관련 부서에 공무원으로 재직 중인 야마자키 미츠히로가 쓴 '포틀랜드, 내 삶을 바꾸는 도시혁명'에 자세히 나와 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포틀랜드는 1970년대에 분기점을 맞았다. 환경오염과 공동화로 쇠락해가는 도시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던 포틀랜드 시민들이 환경보전을 주된 공약으로 내세운 톰 맥콜을 오리건 주지사로 당선시킨 것이다.

그는 ‘Bottle Bill’ 법안을 통해 유리병 재활용과 환급금을 미국에서 처음으로 의무화하고, 다운타운과 윌래밋 강 사이에 놓인 고속도로를 철거하는 등(이것 역시 미국 역사상 첫 고속도로 철거 사례로 기록됐다) 오리건의 환경을 지키기 위한 정책을 연이어 실행했다. 그의 정책은 이후 포틀랜드를 대표하는 하나의 태도가 되었고, 이런 흐름은 도시 개발을 법적으로 강력하게 규제하는 ‘도시성장경계선’ 설정과 이를 주민의 눈으로 다시 엄격하게 감시하는 ‘메트로 정부’ 설립으로 이어졌다. 내가 여행했을 당시 다운타운에 이렇다 할 볼거리(이를 테면 유명 건축가가 디자인한 건물 같은)가 없었던 건 그래서였을 테다. 무언가를 새로 만들기보다는 본래 있는 것을 지키는 방향으로 발전해온 것이다.

포틀랜드는 1930~40년대에 윌래밋 강을 따라 많은 조선소가 들어섰고 이후 태평양전쟁을 거치며 미 북서부를 대표하는 공업도시로 발전했다. 게티이미지뱅크

포틀랜드는 1930~40년대에 윌래밋 강을 따라 많은 조선소가 들어섰고 이후 태평양전쟁을 거치며 미 북서부를 대표하는 공업도시로 발전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진보 성향이 강한 시애틀과 히피 문화의 본고장인 샌프란시스코 사이에 위치한 이 도시의 바탕에는 과거 북유럽 이민자와 히피들을 넉넉히 받아들였던 서부 해안 지역의 자유로운 문화가 깔려 있다. 앞서 시민들이 환경보호에 앞장설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다. 1970년대에 히피, 예술가, 동성애자 등 좌파 성향 백인들이 모여들면서 포틀랜드는 미국 최고의 진보 성향을 가진 도시로 성장했다. 그리고 다양한 성향의 사람끼리 좁은 땅에서 산업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자연의 중요성과 공동체 의식을 배웠다. 앞서 선배가 이웃에게 받은 농작물에 뛸 듯이 기뻐했던 것도 그런 공동체 의식에서 비롯한 것이리라.

파머스 마켓에서 주민들이 만든 제철 식재료를 사고, 옷과 신발 역시 ‘메이드 인 포틀랜드’를 고집하는 포틀랜더들의 유난한 ‘로컬 사랑’은 미국 시트콤 '포틀랜디아'에서도 찾을 수 있다. 특히 주인공이 식당 종업원에게 자신이 먹을 닭이 건강한 환경에서 사육되었는지 따지다가 해당 농장을 찾아가는 것도 모자라 그곳에서 일까지 하고 돌아오는 에피소드는 그야말로 압권. ‘세계 누드 자전거 타기 대회’, ‘여자 수염 대회’ 같은 괴상한 축제가 365일 열리는 이 도시의 슬로건은 ‘Keep Portland Weird(우리를 별난 상태로 내버려둬)’이다.

포틀랜드의 슬로건은 ‘Keep Portland Weird(우리를 별난 상태로 내버려둬)다. 게티이미지뱅크

포틀랜드의 슬로건은 ‘Keep Portland Weird(우리를 별난 상태로 내버려둬)다. 게티이미지뱅크


여행 이후 이따금 사는 게 팍팍할 때마다 나는 포틀랜드에서의 물기 어린 삶을 진지하게 고려해 보곤 한다. 부자 도시, 성장형 도시를 향한 구호 대신 ‘우리를 별난 상태로 내버려둬!’라고 외치는 도시에서의 일상이란 얼마나 멋질까 하고. 여행지에서 몰래 찍은 포틀랜더들의 사진을 보며 민숭민숭한 내 팔에 과감한 문양의 타투를 새기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국회에서 여전히 계류 중인 타투 합법화 법안을 떠올리고, 내가 사는 이곳과 저곳 사이 인식의 격차를 새삼 실감하면서.

끝으로 흥미로운 일화 한 토막. 1851년 포틀랜드 시 설립 당시 두 명의 지역 대지주는 1센트 동전 ‘페니’를 던져 이긴 사람의 고향 이름을 시 이름으로 정하기로 했다고 한다. 지금의 포틀랜드는 동전 던지기에서 이긴 프란시스 페티그로브가 자신의 고향이었던 메인 주 포틀랜드 시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한편 동전 던지기에서 진 에이서 러브조이는 보스턴 출신이다. 하마터면 지금의 포틀랜드가 보스턴으로 불릴 뻔했다는 이야기. 어쩌면 동네에도 운명이 정해준 팔자라는 게 있는 걸까? 그나저나 ‘우리를 별난 상태로 내버려둬!’라고 부르짖는 보스턴이라니 어쩐지 좀 무섭기도 하고…

강보라(소설가ㆍ코스모폴리탄 피처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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