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범죄, 반인도주의범죄, 침략범죄 혐의 뚜렷
집단학살은 의도성 및 체계적 수행 입증 어려워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 도시 부차에서 민간인을 학살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국제 전범 재판에 세워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국제사법기구가 이미 조사에 착수했고, 유럽은 물론 미국도 증거 수집ㆍ분석을 지원하고 있지만, 재판 및 판결 집행력에 한계가 있어 실제 처벌까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다만 법적 요건 자체는 충족되기 때문에 기소를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는 견해도 많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전쟁범죄, 반인도주의범죄, 침략범죄, 집단학살 등 4가지 중대 범죄를 다루는데, 러시아는 이 가운데 최소 3가지 혐의에 해당할 수 있다고 4일(현지시간)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가 진단했다. 첫 번째는 전쟁범죄다. 전쟁시 인도주의 원칙을 명시한 ‘제네바 협약’은 고의적 살해, 고의로 고통을 주는 행위 등을 전쟁범죄로 규정한다. 부차에서 양손이 묶인 채 머리에 총탄이 박힌 모습으로 발견된 시신들은 즉결 처형이 이뤄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고문 흔적이 역력한 시신도 다수 발견됐다. 의도적 살인 목적이 뚜렷한, 전형적인 전쟁범죄다. 지난달 16일 우크라이나 동남부 마리우폴 극장 폭격도 마찬가지다. 당시 극장 밖 공터에 러시아어로 ‘어린이’라고 써 놓았지만, 러시아군은 민간인 대피소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포탄을 투하했고 최소 300명이 숨졌다.
부차와 인근 도시들에서 자행된 잔혹 행위는 반인도주의범죄에도 해당한다. 수천 명에 이르는 민간인 사망자, 해외를 떠도는 난민 400만 명은 또 다른 증거다. ICC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삼은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공격”을 인지하고 참여했을 경우 해당 법 위반으로 본다. 마지막으로 러시아의 침공은 그 자체로 침략범죄다. ICC 법령에선 군사적 점령, 영토 합병, 폭격, 항구 봉쇄 등을 침략범죄로 정의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남부 일부를 무력으로 점령했고, 크림반도와 돈바스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다만 집단학살 혐의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집단학살은 “국가, 민족, 인종 또는 종교 집단을 전체 또는 부분적으로 파괴할 의도로 행해지는 신체적ㆍ정신적ㆍ물리적 가해 행위”로 규정된다. 부차와 마리우폴에서 민간인 대량 살상이 자행된 정황은 분명하지만, 가해자의 학살 의도 및 학살이 조직적·체계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이 증명돼야만 한다.
중대범죄 한 가지만 입증돼도 처벌은 가능하다. 다만 증거가 확보되고 기소가 이뤄지더라도 푸틴 대통령을 법정에 세울 방법이 없다는 점은 가장 큰 난관이다. ICC가 재판하려면 분쟁 당사자가 법원의 관할권을 인정해야 하는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모두 ICC 당사국이 아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러시아를 법원에 회부하는 방법도 있지만, 러시아는 상임이사국으로서 거부권을 갖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푸틴 대통령이 혹여 실각한다고 하더라도 후임자들이 신변을 보호한다면 정의는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라며 “다만 법적 절차는 러시아의 외교적 위상에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처벌 가능성이 낮더라도 시도해볼 만하다”고 짚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