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암 산림청장 인터뷰]
"진화 213시간.... 동서남북 수시 방향 바꾼 강풍 때문"
세계산림총회 한 달 앞으로..."세계가 한국 주목할 것"
"산림청이 글래스고 선언 이행 위한 액션플랜 주도"
울진 산불 피해 보상... 임산물 취재 농가도 포함될 것
식목일, 과학적으로는 당기는 게 맞지만 "쉽지 않아"
산림청은 최근 개청 55년 만에 ‘최악의 열흘’을 보냈다. 식목일을 한 달가량 앞둔 지난달 4일 경북 울진 산불이 강풍을 타고 강원 삼척까지 날아갔다. 비슷한 시기 강원 강릉에서 발화한 산불은 동해시로 확산하면서 산림 2만523ha를 태웠다. 역대 최장기간 지속된 산불로 서울 여의도 70배에 달하는 면적이 잿더미로 변했다.
산불이 원자력발전소와 액화천연가스(LNG) 생산기지, 금강송 군락지, 국보급 사찰까지 위협하면서 이를 차단하기 위한 해당 지자체와 소방당국, 산림청의 피로도는 역대급 수준이었다. '산불과의 전쟁'을 현장에서 진두지휘한 최병암 산림청장은 “막대한 피해와 동시에 큰 숙제도 남겼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유례없는 겨울 가뭄을 촉발한 이상기후 문제 등 다양한 현안에 대한 논의를 이끌고, 이를 통해 산림 선진국 입지를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열흘 만에 ‘반쪽 얼굴’로 대전청사 집무실에 복귀한 최 청장과의 인터뷰는 지난달 23일(대면)과 31일(전화통화)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곧 세계산림총회를 개최할 나라에서 큰 산불이 나 머쓱한데.
“다행히 행사 관심을 환기하는 역할을 한 것 같다. 산불이 대한민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인식이 강해졌고, 그 덕에 각국 대사들이 사전 식목행사에 대거 참석하는 성과가 있었다.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 산림 선진국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세계 산림 보호·육성에 기여하겠다.”
※산림청은 유엔식량농업기구(FAO)와 공동으로 5월 2~6일 제15차 세계산림총회를 서울 코엑스에서 연다. 숲의 미래를 논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산림행사로 6년마다 열린다. 태평양 지역에선 44년 만이고 국내 개최는 이번이 처음이다. 120개국에서 정부, 국제기구, 시민단체, 학계, 기업 관계자 등 1만여 명이 참석할 전망이다.
-대형 국제행사가 새 정부 출범(5월 10일) 직전에 열려 시기가 미묘하다.
“산림의 문제는 정치 영역 밖의 일이고, 미래를 위해 모두가 협업해야 할 분야다. 행사에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 윤석열 당선인도 모시려고 한다. 대통령과 당선인이 함께한다면 전 세계를 향해 한국이 더욱 강력한 메시지를 발신할 수 있다.”
-이번 총회의 의미는.
“지난해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각국이 2030년까지 산림 파괴를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세계 각국에 엄청난 변화를 미칠 내용이지만, 당시 정상들의 선언으로 끝났다. 이번 총회에서 구체적 액션 플랜이 마련될 텐데, 그걸 한국이 이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어느 때보다 세계의 이목을 끄는 총회가 될 것이다. 기후정상회의에서 이번처럼 산림문제가 핵심 이슈로 등장한 적이 없었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울진 산불 진화에 213시간을 쏟아부었다. 무엇이 제일 문제였나.
“수시로 방향을 바꾼 강풍이다. 산불 진행 방향에 있던 국가 주요 시설과 산림자원, 험악한 지형도 진화에 애를 먹게 한 요인이지만, 동서남북으로 번갈아 강풍이 불어 피해를 키웠다. 보통 산불은 만 24시간 정도에, 헬기 30~40대를 투입하면 잡힌다. 이번에는 80대가 넘는 헬기가 물을 뿌렸지만 꺼진 불이 강풍에 계속 되살아났다.”
-산불이 원전과 LNG생산기지를 위협했는데.
“사실, 삼림과 모두 거리가 있는 시설이다. 하지만 불붙은 송진이 급상승하는 열기를 타고 대기 상층으로 오른 뒤, 다른 흐름의 바람으로 갈아타 이동하기 때문에 초긴장의 연속이었다. 2000년 동해안 산불 당시 삼척에 있던 불이 가곡천을 뛰어넘어 4㎞ 떨어진 곳에 떨어지는 걸 봤다.”
-레펠 부대도 대거 투입됐다.
“금강송 군락지 응봉산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공중 진화 대원 60명, 동부지방산림청에서 선발한 신체 건장한 대원 100명, 육군 특전사 200명 등 총 360명이 투입돼 새벽에 주불을 97%까지 잡을 수 있었다.”
-완전 진화 후에 '하늘이 도왔다'고 했는데.
“주불 진화 단계에서 비가 왔다. 주불 잡는 것보다 더 큰일은 그 안쪽의 잔불을 정리하는 일이다. 하나하나 뒤집어서 불씨를 죽여야 하는데 피해 면적이 넓다 보니 눈앞이 깜깜했다. 그때 예상보다 많은 비가 내렸다. 하늘이 잔불을 정리해준 덕분에 열흘간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던 대원들이 비로소 쉬었다.”
-속수무책으로 타 들어간 일명 ‘석유 수종’의 전환 필요성이 제기된다.
“침엽수 대신 수분 함유 비율이 높은 활엽수를 활용한 방화수림대를 조성해서 산불이 나더라도 브레이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동해안 지역은 땅이 척박해 활엽수가 생장에 적절하지 않은 게 문제다. 여러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송이버섯을 다시 채취하려면 30년을 기다려야 한다. 농가 보상 문제는.
“농작물과 달리 송이 등 채취하는 임산물은 보상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해당 지역이 재난지역으로 선포됐고, 현재 피해규모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일정 수준의 보상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날이 벌써 더워지는데, 식목일을 앞당겨야 하나.
“4월 5일을 식목일로 정한 게 70년 전이고, 현재 평균 기온이 당시보다 1도 이상 올라간 것을 감안하면 당기는 것이 맞다. 그러나 청명·한식과 함께 오는 식목일이 관습처럼 굳어져 있어서 날짜를 옮기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식목 기간이 2월 24일부터 4월 20일 정도까지 비교적 길고, 통일시대까지 생각하면 4월 5일이 더 맞는다는 의견도 있다. 기념일 변경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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