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택배견' 경태·태희 돌보는 택배기사 김모씨
김씨에게 돈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한 사례 쏟아져
김씨, 두 차례 기부받고도 돈 빌린 정황 드러나
피해자 "돈 빌려줬는데 갚지도 않고 잠적한 상황"
일부에서는 '기부금 부실 운용' 의혹 제기하기도
"저는 평소에 그분이 택배기사로 일하면서 유기견까지 돌보는 걸 보고 응원해왔어요. 워낙 잘 알려진 사람이라 믿고 돈도 빌려줬는데 이렇게 사기 당할 줄은 몰랐죠."
말티즈 '경태'와 시츄 '태희'의 보호자 '경태희아부지'로 알려진 택배기사 김모씨의 도움 요청에 돈을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한 30대 직장인 A씨는 1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당황스럽다고 했다.
경태와 태희는 CJ대한통운의 명예 택배기사이자 택배견으로 유명하다. 유기견이었던 경태는 2013년 뼈가 부러지고 심한 피부병이 있는 상태로 한 화단에서 김씨의 눈에 띄었다. 발견 당시 경태는 심장사상충 말기 상태였는데 김씨가 1년 동안 보살피면서 회복했다. 이후 김씨가 2018년 택배기사 일을 시작하면서 경태가 분리불안 증세를 보이자, 그는 택배 차량 조수석에 경태를 태웠다.
그러던 중 2020년 혼자 차 안에 있는 경태 사진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일부 누리꾼들은 동물 학대 의혹을 제기했다. 김씨는 해명 글을 올렸고, 오히려 이를 계기로 김씨와 경태의 사연이 대중에게 알려졌다. 김씨는 지난해 강아지 공장에서 구조돼 민간 동물보호소에 머물던 태희를 입양했다.
택배기사 일을 하면서도 유기견을 정성스레 돌보는 김씨의 모습에 사람들은 '경태희아부지'라는 별명을 지어주고 박수를 아낌없이 보냈다. 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팔로워 수는 최근 22만 명을 넘었다. 그런데 최근 김씨에게 돈을 빌려주고 제때 돌려받지 못했거나 기부를 하고도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알지 못한다는 증언이 쏟아지면서 김씨의 행동에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두 차례 기부 받고도 또 "돈 빌려 달라"...의문투성이 행보?
9년째 반려견과 함께 살고 있는 A씨는 지난달 29일 김씨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을 보고 5만 원을 기부했다. A씨는 "(자신이) 평소에도 강아지를 워낙 좋아해 김씨의 SNS를 보면서 응원 메시지도 자주 남겼다"며 "우연히 기부를 요청하는 글을 봤고 흔쾌히 5만 원을 보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①김씨는 그에 앞서 지난달 5일과 29일 두 차례에 걸쳐 SNS를 통해 후원금을 모았다. 그는 5일 "저 혼자 몸이라면 어떻게든 살아가겠지만, 아픈 아이가 둘이니 정말 힘이 든다"며 "'천 원 릴레이' 한 시간만 해주시면 투명하게 잔고 공개하겠다"고 적었다. 이어 29일에는 "애들 때문에라도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며 "한 번만 더 도와 달라. 너무 죄송하다"고 전했다. 아픈 아이는 경태와 태희를 가리키고, '천 원 릴레이'는 1,000원 단위의 소액 기부를 뜻한다.
그러던 중 ②A씨는 지난달 30일 갑작스럽게 김씨로부터 돈을 빌려 달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김씨로부터 직접 개인적으로 연락을 받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A씨는 "김씨가 갑자기 태희 병원비 500만 원을 빌려 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며 "사정상 70만 원까지만 보내줄 수 있다고 하니 '그거라도 전부 보내 달라'고 답이 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김씨가 저녁쯤에 (자신이 파는) 굿즈가 정산이 돼 당일에 바로 갚을 수 있다고 약속했다"며 "워낙 유명한 사람이고 아이가 아프다는 걸로 장난질하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에 70만 원을 빌려줬다"고 전했다.
그러나 ③당일까지 갚겠다는 김씨의 말과 달리 A씨는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 A씨는 "다음 날 김씨에게 연락했는데 돈을 갚기는커녕 70만 원을 더 빌려줄 수 있냐는 뜬금없는 답이 돌아와서 너무 황당했다"며 "기부를 두 차례나 받았고 굿즈도 정산이 된 마당에 무슨 돈을 더 빌려 달라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④돈을 돌려 달라는 (자신의) 메시지를 읽곤 답장도 없이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A씨는 "5만 원은 기부한 거니까 못 받을 수 있다고 쳐도, 70만 원은 빌려준 건데 아직까지 받지 못했고 SNS는 폐쇄됐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A씨는 현재 김씨를 사기 혐의로 경찰서에 고소한 상태다.
돈을 돌려받기 위해 들어간 오픈 채팅방에서도 "돈 빌려 달라"
김씨에게 돈을 빌려줬다가 피해를 입은 것은 A씨뿐만이 아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자신도 A씨와 비슷한 상황이라는 사연들을 여럿 볼 수 있다. ①7년째 반려견과 함께 살고 있는 B씨는 김씨가 지난달 5일 SNS에 올린 기부 요청 게시 글을 보고 6,000원을 기부했다. B씨는 "(저도) 반려견을 키우는 입장에서 '경태희아부지'는 잘 알고 있었다"며 "사연이 딱하다는 생각에 6,000원을 보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②이틀 뒤인 지난달 7일 김씨는 돌연 자신의 SNS에 "1,000만 원이 넘는 돈을 내일부터 차례로 돌려드리겠다"고 전했다. 기부금품법에 따르면 1,000만 원을 초과한 기부금을 모으려면 관계 기관에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김씨가 이 사실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③B씨는 "지난달 9일에 김씨는 기부자들에게 돈을 돌려주기 위해 오픈 채팅방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B씨가 참여한 채팅방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④B씨는 "지난달 27일 해당 오픈 채팅방에서 김씨는 돈을 돌려주기는커녕 개인 메시지를 통해 100만 원 넘게 빌려 달라고 했다"면서도 "태희가 너무 아파서 힘들다는 말에 견주로서 마음이 쓰여 선뜻 빌려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⑤B씨는 이어 "돈을 빌려주고 나서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김씨가 갑자기 '얼마까지 더 빌려줄 수 있냐'고 물었다"며 "이상한 낌새를 느껴 김씨에게 즉시 돈을 다시 돌려 달라고 요구했고 1시간 30분 만에 돌려받았다"고 덧붙였다.
돈을 돌려받기까지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B씨는 "김씨가 돈을 돌려주려고 하지 않아서 '공론화하겠다', '신고하겠다', '법적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 등의 말을 통해 힘겹게 받아낼 수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빌려준 돈은 받았지만 기부했던 돈은 결국 돌려받지 못했다"며 "별로 돌려받고 싶지도 않다"고 씁쓸해 했다.
"기부 글 올리기 전에도 개인적으로 돈 빌려줬다" 증언도 나와
김씨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며 힘겨운 싸움을 벌인 사람은 B씨뿐만이 아니다. ①강아지 옷 공방을 4년째 운영 중인 C씨는 김씨에게 10회에 걸쳐 1,533만 원의 돈을 빌려줬다. C씨는 "김씨가 태희 병원비, 차량 수리비, 생활비 명목으로 지속적으로 돈을 빌려 달라고 했다"며 "평소 이미지도 좋고, 당시 (김씨가) 말하는 상황이 워낙 안타깝고 절절해서 보내줬다"고 말했다.
빌려준 돈을 돌려받는 과정에 대해서 C씨는 "②김씨가 자꾸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갚으려고 하지 않아서 너무 힘들었다"며 "다섯 차례에 걸쳐 겨우 돌려받긴 했지만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전화와 문자가 와서 무서웠다"고 설명했다. 이어 "스토커로 신고할 생각까지 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돈을 빌리는 과정에서 김씨가 자신의 계좌를 사용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계좌를 이용한 정황도 드러났다. C씨가 한국일보에 제공한 입출금 내역에 따르면 C씨는 2월 12~17일까지 1,533만 원 중 1,433만 원은 김씨의 동생 계좌로, 100만 원은 제3자에게 송금한 기록이 남아있다. C씨는 "김씨가 열 번 중 아홉 번은 자신의 계좌 말고 동생 계좌로, 한 번은 제3자에게 보내 달라고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김씨를 알게 된 경위에 대해 C씨는 "지난해 8월 강아지 옷 제작과 관련된 책을 만들던 중, 자신이 만든 강아지 옷을 입힐 모델견으로 경태를 섭외하면서 김씨를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8월 촬영 당시 김씨 대신 김씨의 여동생이 경태를 데려왔다"며 "촬영 이후로는 따로 연락이 없다가 2월 중순에 불쑥 돈을 빌려 달라고 연락이 온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김씨가 후원금을 운용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B씨는 "후원금 총액, 후원금 사용 내역(영수증) 등 기부금과 관련된 자료가 하나도 밝혀진 것이 없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A씨는 "(자신은) 원래 동물 단체에 정기적으로 기부하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기부를 모두 끊었다"며 "믿었던 사람인데 배신감이 너무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말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도 있을 텐데 참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한국일보는 김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지난달 31일 여러 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현재 김씨의 SNS는 접속이 불가능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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