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은 성당, 장례식은 절' 신앙 없어도 종교적인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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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은 성당, 장례식은 절' 신앙 없어도 종교적인 삶

입력
2022.04.0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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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일본 문화의 독특한 종교관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신앙을 가진 ‘진짜배기’ 신자가 한국보다는 적지만, 일본 사회에서 종교의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다. 신도나 불교뿐 아니라 수많은 계통의 종교 단체가 존재하고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크다는 점에서 일본은 한국보다 '종교적'인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일러스트 김일영

많은 한국인들이 특정 종교에 귀의하고 신앙을 갖는다. 통계에 따르면 절반 가까운 사람이 정기적으로 교회나 성당, 절 등을 방문하는 등 종교 활동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10년 넘게 일본에 살면서 정기적으로 종교 시설을 방문할 정도로 독실한 신앙을 가진 일본인을 만난 적이 없다. 신앙을 가진 일본인의 비율이 채 20%도 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도 보았다. 흥미로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 시설에 등록된 신자를 조사하면 꽤 큰 숫자가 나온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일본 정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일본 전국에 있는 신사, 사찰, 성당 등에 헌금을 하는 등 정식으로 등록된 신자의 수를 전부 합하면 무려 1억8,000여만 명에 달한다. 일본의 전체 인구가 1억2,000여만 명인데 이를 훌쩍 뛰어넘는 신자가 존재한다는 결과다. 도대체 무슨 사정일까?

특정 교리에 귀의하지 않는 종교 문화

한국에는 교회가 많다. 그만큼은 아니어도 성당이나 절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대조적으로 일본에서 교회나 성당은 흔치 않은 종교 시설이다. 대도시 도쿄에 비교적 규모가 큰 성당이 몇 군데 있는 것을 보았지만, 이런 곳도 한국의 무수히 많은 대형 교회와 비교하면 아담한 규모다. 대신 일본에는 신사(神社)와 사찰(お寺)이 많다. 일본 정부가 펴내는 ‘종교 연감’에 등록된 시설만 해도, 2021년 현재 8만4,000개가 넘는 신사, 7만6,000개가 넘는 사찰이 존재한다. 등록되지 않은 소규모 신사나 사찰을 포함하면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도회지의 번화가, 고즈넉한 주택가, 시골의 작은 마을 등 어디를 가든 신사나 사찰을 쉽게 마주칠 수 있다.

신사는 일본의 토속 종교로 알려진 ‘신도(神道)’의 제사 시설이다. 신도를 기독교나 불교, 이슬람교 등 교리와 교단이 있는 근대적인 종교로 분류하기에는 애매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창시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경이나 불경처럼 가르침을 전하는 성전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서기(日本書紀)'나 '고사기(古事記)' 등의 고문서를 ‘신전(神典)’ 으로 모시는 신사도 있지만, 일본의 신화나 역사적 기원이 쓰여진 고문서들이 종교적 가르침을 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신사는 영적 존재에게 제사를 올리는 장소로, 굳이 비유하자면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사라진 사당이나 성황당과 유사하다. 오래전부터 계승되어 온 애니미즘 (animism, 물신숭배의 세계관)과 토속 신앙이 어느 사이엔가 번듯한 종교로 제도화했고, 그 과정에서 지역의 토속신, 자연에 깃든 정령, 세상을 떠난 위인의 혼령 등 다양한 영적 존재가 숭배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도 악명 높은 야스쿠니 신사(靖国神社)에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전범과 전사자가 합사되어 있어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권력과 전쟁에 관련한 사안이 덜컥 종교와 결합했기 때문에, 국가주의와 애국주의를 신봉하는 극우 세력의 본산이 되어 버렸다. 개인적으로 신도는 독립적인 ‘종교’라기보다는 ‘종교적’인 시설 혹은 제도라고 불러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한편, 사찰도 우리나라의 불교 사원과는 사뭇 다르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동일하게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깊은 산속 사찰이 문화재나 관광지로 사랑받는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그와는 별도로 도회지나 주택가로 파고들어 활발하게 포교 활동을 벌이고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는 절이 존재한다. 일본에도 동네마다 사찰은 있다. 다만, 승려들이 거주하면서 불당을 관리하거나 수행하는 공간일 뿐, 한국처럼 불자들의 신앙 활동을 위한 장은 아니다. 일본에서 사찰의 역할은 오히려 관혼상제와 관련한 의식을 불교식으로 수행하는 데에 있다. 결혼식, 장례식 등을 주관하거나 묘지를 관리하는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불교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불자 공동체의 구심이라기보다는 불교적인 상업 시설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종교가 계절적 행사나 관혼상제 의식을 위한 시설이나 제도 정도로 받아들여진다. 크리스마스 때에는 성탄절을 축하하고, 섣달그믐에는 사찰에서 제야의 종을 울리며, 새해가 밝으면 신사를 방문해 신도식 신년 참배인 ‘하츠모데(初詣)’를 올린다. 결혼식은 성당에서 올리지만, 집에서는 선조의 위패를 모시는 ‘불단’(仏壇)을 마련하고, 장례식은 불교식 예법에 따른다. 일반적으로 종교를 믿는다고 하면, 특정 교리에 배타적으로 귀의하고 특정한 종교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상황에 따라 이 종교, 저 종교를 섭렵하는 것에 대해 위화감도 없고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신앙을 가진 사람은 적은데도, 종교 시설에 드나드는 신자의 수는 인구 전체를 뛰어넘을 정도로 많은, 이상한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신앙은 없지만 ‘종교적’인 일본 사회

신앙을 가진 ‘진짜배기’ 신자가 적다고 해서, 일본 사회에서 종교의 영향력이 작다는 뜻은 아니다. 신도나 불교뿐 아니라 수많은 계통의 종교 단체가 존재하고, 사회적으로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예를 들어, 100여 년 전 한 승려가 창시한 종교 법인 ‘창가학회(創価学会)’는 정치, 경제, 문화 다방면에서 상당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익 집단이다. 사후 세계나 영적 존재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관심도 높다. 특별한 영적 기운을 받을 수 있다는, 일명 ‘파워 스폿’을 찾아가는 여행이 유행하고, 사람들은 우연히 들른 신도나 사찰에 기꺼이 헌금을 내놓는다. 기업에서 사업의 번영을 비는 공양탑을 제작해 봉납하기도 한다. ‘오마모리’라고 부르는 휴대용 부적이 대중적으로 큰 인기인데, 신사나 사찰에서 ‘합격 기원’, ‘교통 안전 기원’, ‘결혼 기원’ 등 주제별로 부적을 만들어 판매한다. 신앙을 가진 사람이 적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사회 곳곳에 종교적인 색채가 상당히 깃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본 사회에 팽배한 종교적인 정서야말로 일본 문화의 정수라고 보는 학자도 있다. 이 글에서 자세히 기술하지는 않았지만, 일본의 전통적인 사고 방식에서는 사물에 깃든 정령이나 죽은 자의 혼령 등 다양한 신적 존재를 믿는다. 초월적인 존재가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런 믿음이 매사에 절제하고 화합하는 문화를 구동하는 힘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반면, 과도한 종교적인 신념이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 경우도 많다. 예컨대, 1995년 일본 전체를 충격에 빠뜨린 ‘지하철 사린 독극물 테러’는 ‘옴 진리교’라는 신흥 종교에 빠진 광신도들이 벌인 사건이었다. 종교적 맹신이 사회 전체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한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사례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치적인 사안에 종교적인 정서가 개입하는 것은 여러 모로 바람직하지 않다. 예를 들어, 일본 정치인들의 신사 참배는 국가 권력의 정당성을 신적인 존재와 연계시키는 정치적 퍼포먼스다. 이런 공공연한 퍼포먼스가 극우 세력의 비이성적인 집단 행동을 부추긴다는 것은 불보듯 뻔하다. 정치적인 주장과 종교적인 신념이 결합하는 것은 이성적인 시민 정신을 마비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일본의 종교관에는 확실히 독특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무당에게 점을 본다든가, 액운을 막기 위해 부적을 갖고 다니는 등 무속 신앙적인 습관이 암암리에 뿌리내리고 있다. 일본 문화의 토속 신앙적인 관행이 전혀 낯설지는 않은 것이다. 종교적인 세계관이 사적인 삶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그런 사고 방식이 사회적, 공적인 의사 결정에 개입하는 것은 위험스럽다. 일본 사회를 반면교사로 삼을 점이 있지 않겠는가?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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