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블랙리스트' 전직 공공기관장>
"전 정부 때 무죄판결까지 받았는데 또 들춰"
출처 모를 '유전 매입 의혹' 취재 요청받기도
"직접 사표 제출 요구받았냐고? 노코멘트"
문재인 정부 초반에 있었던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의 피해 당사자로 거론되는 전직 공공기관장 A씨가 사임 당시 실제로 심한 사퇴 압력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 사건은 검찰이 고발 접수 3년 만에 본격 수사에 나서면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A씨는 2017, 2018년 산업통상자원부의 요구로 임기 도중 사임했다고 알려진 산업부 산하 공공기관장 8명 가운데 1명이다. 2017년엔 한국전력 발전 자회사 4곳, 이듬해엔 이명박 정부 시절 산업부 에너지·산업 정책 담당자가 사장으로 있던 기관 4곳에서 기관장이 퇴진했는데, A씨는 후자에 포함된다.
A씨는 30일 한국일보와의 대면 인터뷰에서 △산업부가 이명박 정부의 해외자원개발(일명 '자원외교') 사업에 대한 재수사를 검찰에 의뢰한 일 △자원외교 과정에 대통령의 부당 지시가 있었다는 '산업부 괴문서'를 접한 일을 대표적 사퇴 압박 사례로 꼽았다. 그간 검찰 조사 등에서 '산업부 측에서 직접 사표 제출을 종용한 적은 없다'고 밝혀온 것으로 알려진 A씨는 한국일보 질의엔 "노코멘트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다음은 A씨와의 일문일답.
-2018년 임기를 1년 이상 남기고 사표를 낸 이유는.
"현 정부가 들어선 뒤 '청산해야 할 적폐'로 몰리면서 심적 압박이 심했다. 특히 그해 5월 29일 산업부가 검찰에 자원외교 사업 재수사를 의뢰했는데, 나는 산업부에 재직할 때 해당 사업의 실무자였기 때문에 가볍게 여길 수 없었다. 박근혜 정부 때 검찰 수사와 감사원 감사를 받았고 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난 사안인데, 다시 수사를 요청했다고 하니 한가하게 (기관장 자리에) 있을 때냐 싶었다. 그날(5월 29일) 바로 사표를 냈는데 다음 날 바로 수리됐다."
-다른 이유도 있었나.
"사표를 내기 얼마 전 이상한 문서를 보기도 했다. 일정을 마치고 나오는데 언론사 기자가 그 문건을 보이면서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부당 지시로 한국석유공사가 해외 유전을 인수했다는 의혹이 있으니 당시 산업부 담당자였던 내가 해명해달라는 것이었다.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공사가 자율적으로 관련 정보를 검토하고 컨설팅까지 받아 결정한 일이기 때문이다. 문서 내용도 확인했더니 말도 안 되는 '소설'이었다."
-문서 출처를 확인해봤나.
"기자는 산업부에서 문서를 입수했다고 말했다. 정부 부처 문건은 저마다 고유한 형식과 표현이 있는데, 그 문서는 산업부 문건과 거리가 멀었다. 산업부 담당 부서에 전화해서 거기서 작성한 문건이 맞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산업부 컴퓨터에 있던 파일은 맞다, 다만 누가 만들었는지는 규명할 수 없다'는 답변이 왔다. 누가 작성했고 어떻게 유출됐는지,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다."
A씨는 "사퇴를 압박하는 분위기가 동시에 조성되니까 '누가 뒤에서 기획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직접 사표 제출을 종용받은 적은 없나. 발전회사 사장들은 그랬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노코멘트하겠다. 추측에 맡긴다."
-정권 교체기에 공공기관장이 대거 물러나는 건 익숙한 풍경이기도 하다.
"전문성 없이 정치적 이유로 자리에 있던 사람이라면 눈치껏 사표를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전문성을 인정받아 임명된 기관장이 사퇴 압박을 받는 일은 별로 못 봤다. 당시 사임한 기관장들은 공모와 심사를 통해 적임자로 선정됐다. 정치 활동과는 무관한 사람들이었다. 현 정부는 (코드 인사 기조가) 말도 안 되게 심했다."
-2019년에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이 이번 의혹을 고발했다. 검찰 조사를 받았나.
"고발이 있고 나서 한두 달쯤 뒤에 참고인 조사 요청을 받아서 서울동부지검에 출석했다. 3시간가량 조사를 받으며 사표를 쓰게 된 경위를 진술했다. 강제 조사가 아니라서 검찰 요청에 응하지 않은 기관장도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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