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이우의 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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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이우의 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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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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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박주영부장판사

편집자주

<어떤 양형 이유> <법정의 얼굴들>의 저자인 박주영 판사가 세상이란 법정의 경위가 되어 숨죽인 채 엎드린 진실과 정의를 향해 외친다. 일동 기립(All rise)!

15일 우크라이나 르비우의 한 교회에서 열린 전사 군인 장례식에서 가족과 친지들이 오열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전쟁의 후유증이 초래한 극심한 경제위기가 러시아 국민을 하나로 결집시켰다.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에서 대규모 군중집회가 열린 지 두 달 만에 철권통치가 무너졌다. 푸틴은 크렘린궁을 빠져나와 벨라루스로 도주하던 중 국경수비대에 체포됐다. 헤이그에 있는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 ICC)에서 푸틴과 군 지휘관들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죄명은 '전쟁범죄, 집단살해죄, 인도에 반한 죄'였다. 그들은 국제법상 적법한 전쟁이었고 국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했으나 전부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이 참혹한 전쟁을 일으킨 자들을 저렇게 실제 법정에 세워 처벌할 수는 없을까. 인류 역사에서 전쟁을 이유로 개인을 처벌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직후 뉘른베르크와 도쿄에서 열린 전범 재판에서 나치와 일본 군부를 처벌한 것이 최초다. 그 후 국제사회는 대량학살을 자행한 자들을 주로 처벌해 왔는데, 전쟁범죄나 제노사이드에 대처하기 위해 2002년 상설재판소인 ICC를 발족시켰다. 이번 러시아 침공 직후 ICC가 조사에 착수했다는 외신이 전해졌으나, 푸틴이 실각하더라도 그를 법정에 세우기는 쉽지 않다. 러시아는 ICC의 당사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ICC의 설립 근거인 로마규정을 인준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전쟁으로 미국인이 기소될 여지를 처음부터 없앤 것이다.

법이 강자의 도구란 소리를 귀가 따갑게 듣지만, 적어도 문명국가에서는 절대권력자라도 초법적인 행위를 마음대로 자행할 순 없다. 그러나 무소불위인 법조차 국경을 넘는 즉시 힘을 잃는다. '국경없는 의사회'의 활동은 눈부시지만 국경없는 법률가회는 존재감이 없다. 의술은 만국공통이나 법은 일국공통이다. 국경을 초월하는 것은 법이나 정의가 아닌 힘이다. 약소국은 침공도, 휴전도, 재판도, 배상도 독자적으로 결정하지 못한다. 국제관계에서 힘의 논리를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강대국들의 오랜 이해관계가 지구를 망치고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는 지금, 언제까지 그 힘에 끌려 다녀야만 하는 걸까. 혜성이 가까이 다가와도 '돈룩업'이라 명령하며 머릴 처박게 만드는 그 완력에 맞설 힘이 우리에게는 정말 없는 걸까. 가해가 아무리 가해자의 전적인 의지에 달린 문제라 하더라도, 이 참혹한 결과 앞에서 우리의 무력함은 용서받을 수 있는가.

영화 '뉘른베르크의 재판' 포스터

영화 뉘른베르크의 재판에서 나치에 동조한 판사 야닝의 변호인이 한 최후변론이다. "독일과 동맹이었던 러시아는 무고한가? 한때 히틀러를 위대한 지도자라 찬양했던 처칠과 그에게 큰 명성을 안겨 준 바티칸은 어떤가? 독일의 재무장으로 막대한 이득을 누린 미국 자본가들은 책임이 없나? 야닝이 유죄면 전 세계가 유죄다."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각국의 의용군들이 모였다고 한다. 과거 스페인 내전에서 파시즘에 맞선 공화파를 지원하기 위해 전 세계인들이 참전한 사건을 연상시킨다. 헤밍웨이는 당시 내전 취재 경험을 살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썼는데, 제목은 영국 시인 존 던의 글에서 따온 것이다. 조종(弔鐘)이 멀리서 들린다고 안심해선 안 된다. 우리가 인류라는 대륙의 한 줌 흙인 이상, 우크라이나 사람이 죽든 러시아 사람이 죽든 실은 우리 모두의 사멸이다. 마리우폴의 총성도, 키이우의 조종도 우릴 향한 것이다.

요즘 세계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일상이 전쟁이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것은 구호품도, 의술도, 의용도 아니다. 절박한 인류애다. 사랑은 부패하지 않는 유일한 절대권력이다.

박주영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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