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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 작가 "'수학자'보다 '이상한 나라'에 초점 맞췄죠"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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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 작가 "'수학자'보다 '이상한 나라'에 초점 맞췄죠" [일문일답]

입력
2022.03.22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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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시나리오를 집필한 이용재 작가(오른쪽). 쇼박스 제공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시나리오를 집필한 이용재 작가(오른쪽). 쇼박스 제공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가 개봉 3주 차에도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장기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이용재 시나리오 작가가 서면 인터뷰에 나섰다. 그는 수학을 소재로 삼은 이유와 이 작품의 차별성 등에 대해 언급했고 주인공 이학성의 탄생 비화도 전했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신분을 감추고 고등학교 경비원으로 일하는 탈북한 천재 수학자가 수학을 포기한 학생을 만나며 벌어지는 감동 드라마다. 배우 최민식이 주연을 맡아 깊이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수학을 흥미롭게 풀어낸 연출뿐 아니라 전 세대를 아우르는 메시지와 스토리로 극장가를 사로잡고 있다.

다음은 이용재 작가의 일문일답.

-신문 기자, 증권사 펀드매니저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이 눈길을 끈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각본을 집필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기자 시절의 집필 경험, 증권사에서 파생상품을 거래할 때 적용한 수학적 분석 등이 미친 영향이 없지 않겠지만, 각본의 싹은 아마도 책에서 나왔을 것이다. 일천한 독서 편력에서 수학 관련 서적이 차지하는 부분이 많았던 덕분이다. 대개 수학자들의 에세이나 수학사 관련 책들이었는데, 대중 교양서라서 수학 자체보다는 수학자에 초점을 맞춘 책들이었다.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수학자를 주인공으로 세워둔 셈이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수학을 소재로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특별히 수학을 소재로 삼은 이유를 말해달라.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제로 덧셈과 뺄셈만 알아도 사는 데 별지장이 없다. 인공위성을 날리거나, 스마트폰을 만들 때 수학이 필요하단 얘긴 더러 듣지만 '저세상' 이야기일 뿐, 수학에 입시 필수 과목 이상의 의미는 없다. 이러한 무용함에 인생을 바치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무용함에 인생을 거는 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수학자는 유무용을 따지지 않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유용함을 추구하지 않았음에도 수학의 성취들은 철학, 과학, 음악, 미술 등에서 결국 유용하게 이용된다는 점 역시 수학의 '츤데레적' 매력이다. 이학성을 수학 중에서도 가장 실용성이 없다는 정수론 연구자로 설정한 이유다. 덧붙이자면 수학을 잘하지 않아도 수학의 재미는 느낄 수 있다는 얘기도 하고 싶었다. 우리가 손흥민이 아니어도 관중으로서 축구를 즐길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수학을 소재로 한 기존의 다른 작품들이나 멘토, 멘티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이번 작품에 차별점을 두고 싶은 지점은 무엇이었는지?

"'수학자'보다 '이상한 나라'에 초점을 뒀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어두운 세상의 그늘에서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두런두런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공감, 우정 등의 단어를 떠올리며 언젠가 실화가 되길 바라며 판타지를 쓴 셈이다."

-명문 자사고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영화 속에 수학 문제들이 등장한다. 이 문제들의 탄생 배경 및 선정 과정에 대해서도 설명해 준다면?

"시나리오에 명시한 문제는 두 개다. 하나는 직각삼각형의 면적을 구하는 것이고, 나머지는 한지우와 담임 근호의 대치 장면에서 나왔던 문제다. 삼각형 문제는 해외 IT 기업의 면접시험에 나왔던 구술 문제에서 착안했다. 삼각형의 면적을 구하는 것은 초등학교에서 배우니까 관객들에게도 어렵지 않은데 일종의 반전처럼 허를 찌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대치 장면의 문제는 교육과정평가원에서 2009학년도 6월에 치른 수능 모의고사의 실제 문제다. 애초 정답을 4번으로 발표했으나, 출제 오류를 인정해 4번과 1번을 복수 정답 처리했다. 덕분에 장면에 맞아떨어지는 문제를 찾은 셈이다."

-이번 작품 속 이학성 스토리의 중요한 역할로 '리만가설'을 설정한 이유에 대해서도 말해달라.

"리만가설은 오랜 세월 풀리지 않았으면서, 대중에게 그나마 익숙한 난제다. 기라성 같은 수학자들의 실패담도 많다. 영화에서 다룬 수학자만도 '뷰티풀 마인드'의 존 내쉬, '이미테이션 게임'의 앨런 튜링, '무한대를 본 남자'의 스리니바사 라마누잔 등이 있다. 증명에 실패한 수학자들은 정신분열증을 앓거나 분노조절장애를 겪고 심지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람까지 있었다. '리만가설의 저주'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학성의 비참한 상황과 맞아떨어지는 대목이라고 생각했다. 리만가설이 양자역학의 연구 성과와 맞물리면서 증명에 한 걸음 다가섰다는 수학계의 전망도 한몫했다. ‘리만가설은 난공불락의 난제’라는 설정이 픽션에서 통할 수 있는 유통기한이 임박한 셈이니까. 최민식, 김동휘 배우에게는 이해를 돕기 위해 일본 NHK에서 만든 '리만가설, 우주의 비밀을 향한 도전'이란 다큐멘터리를 권했다. 수학과 친하지 않더라도 리만가설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리만가설에 대해 더 알고 싶은 관객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

-탈북한 천재 수학자 이학성 역에 모티브가 된 인물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학성에겐 여러 수학자들의 모습이 녹아있다. 먼저 러시아 수학자 그리고리 페렐만. 리만가설과 함께 세계 7대 수학 난제로 꼽히는 '푸앵카레의 추측'을 2003년 증명했으나, 상금도 필즈상도 거부하고 노모와 함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낡은 아파트에 산다. 외부와 접촉을 극도로 꺼리는 그의 취미가 스도쿠다. 이임학이란 한국 수학자도 있다. 대수학의 한 분야인 군론(群論)에서 세계적인 성취를 이룬 수학자인데 1953년 캐나다 유학을 갔다가 입국이 거절된 디아스포라였다. 국가의 소환 명령에 불응하고 고향인 북한을 방문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임학은 43년 만인 1996년이 돼서야 조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헝가리 수학자 에르되시 팔의 모습도 있다. 그는 평생 떠돌이로 살았다. 전 세계 수학자의 집을 찾아다니며 숙식을 해결하고 집 주인과 진행한 연구가 끝나면 훌쩍 떠나는 식이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엡실론'이란 호칭은 그가 수학을 잘하는 꼬마들을 지칭하는 자신만의 은어였다. 앞서 언급한 이임학과도 인연이 있어 북한에 남은 그의 가족에게 서신을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학성이 딸기 우유를 먹는 설정은 오래전 이태원에 살 때 목격한 같은 동네 외국인의 습관에서 따왔다. 백발이 멋진 푸른 눈의 중년 남자였는데 매일 해질녘이 되면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서 '뉴욕타임스'를 읽었다. 그의 테이블엔 담배와 소주, 그리고 딸기 우유 두 개가 놓여있었다. 그 광경이 재미있어 머리에 사진처럼 남은 덕분에 이학성에게 적용할 수 있었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수학뿐 아니라 음악의 활용도 돋보인다.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이유와 그중에서도 ‘파이 송’과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을 선정한 배경은 무엇인지?

"영화인 만큼 텍스트로 쓰인 수식이 아니라, 시청각적인 해법이 필요했다. 그중에서도 청각에 집중했다. 수학을 얘기하며 바흐를 끄집어낼 땐 평균율이 제격이겠지만, 이학성의 캐릭터를 생각할 땐 무반주 첼로곡이 어울린다고 여겼다. 반주 없는 독주다 보니 여백이 많다. 텅 빈 백지에 목탄 크로키를 하듯 담백하고 서늘한 느낌이 좋았다. 파이 송은 인터넷에 많은 곡들이 있다. 3.1415…를 뼈대로 하는 건 같지만 반주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다르다. 시나리오에 쓴 '경쾌하게, 다시 구슬프게 이어지는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란 지문을 이지수 음악감독이 풍성하게 해석했다."

-시나리오가 영상화된 장면들을 보았을 때 가장 만족했던 부분은 무엇인지?

"첫 번째는 이학성이 한지우에게 수학적 용기를 말하는 장면이다. 평범한 대사를 명대사로 만드는 배우의 힘을 봤다. 두 번째는 이학성의 아들 태연이 대드는 장면이었는데 탕준상 배우의 에너지에 압도됐다."

-실제로 수학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그 이유는?

"아름답다. 수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영원하다. '영원히 뒤집힐 수 없는 진리'는 왠지 인간계를 벗어난 것 같아 신비롭기까지 하다. 2,300년도 더 된 유클리드 기하학의 정리들이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진리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웅장해진다. 인간의 이성을 극한까지 밀어붙여서 영원히 존재할 무언가를 창조하는 행위를 수식할 다른 말을 찾기 어렵다."

유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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