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망했다던 소년범이 달라졌다... 30년 보호관찰관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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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망했다던 소년범이 달라졌다... 30년 보호관찰관의 증언

입력
2022.03.23 04:30
수정
2022.03.23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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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명당 50명·한 달 면담 95회… OECD 평균 상회
교화 프로그램 예산 미미… 외부 기부금으로 운영
말 건넬수록 밝아지는 소년들 "더 자주 오셨으면"
엄벌 여론에 "반성 통해 재범률 낮추는 건 교화뿐"
지역 반발로 더부살이…"아이는 온 마을이 키워야"

드라마 '소년심판'이 넷플릭스 비영어권 시리즈 부문에서 2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면서 소년범죄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거나 소년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강경론이 힘을 얻고 있지만, 재범 방지를 위한 교화 체계 정비가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소년범 교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처벌 강화냐 교화 우선이냐'를 다투기에 앞서 소년범 교화의 현주소가 어디쯤인지 가늠해 보는 게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일보는 처분과 교화의 중심에 있는 보호관찰관과 동행하면서 소년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한 달 면담·출장 95회 이상…소년 보호관찰관의 하루

성남보호관찰소 유기환 소년주무계장이 15일 오후 경기 성남시 중원구 한 소년 보호관찰대상자 가정 출장 면담에서 장학금 지원 안내를 하고 있다. 이유지 기자

"학교는 잘 다니고 있지? 사고친 건 없고?"

수원보호관찰소 성남지소(성남보호관찰소) 유기환(55) 소년주무계장은 소년들과의 통화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는 3년째 성남시 중원구에서 소년 보호관찰을 맡고 있다. 유 계장이 담당하는 소년은 모두 51명. 인원이 워낙 많다 보니 이들 모두와 매일 통화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하지만 유 계장은 전화든 대면이든 접촉 횟수가 늘어날수록 소년들 목소리가 밝아진다는 걸 알게 되면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이 일과를 이어가고 있다.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2014년에는 130명까지 담당했다"며 오히려 더 많은 소년들과 통화하지 못하는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보호관찰대상 소년은 '집중'(월 3회 이상 면담, 출장 1회 포함), '주요'(월 2회 이상 면담, 격월 출장 1회 포함), '일반'(월 1회 이상 면담, 분기 1회 출장 포함)으로 분류한다. 단순 계산하면 유 계장에게는 한 달에 95회 이상 대면 면담 또는 가정 출장 업무가 맡겨진 셈이다. 그나마 예전엔 소년들이 보호관찰소로 출석하기도 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로는 출장 면담 위주로 일하고 있다.

장학금 연계, 냉장고 채워주기…소년 "변해야지 생각 계기"

성남보호관찰소 유기환 소년주무계장이 15일 오후 경기 성남시 중원구 한 마트에서 소년 보호관찰대상과 함께 '냉장고 채워주기' 프로그램차 장을 보고 있다. 이유지 기자

유 계장이 중원구 주거 밀집지역의 비탈진 골목을 지나 강모(19)양을 찾은 건 지난 15일. 어머니와 동생까지 세 가족이 사는 40㎡ 남짓 빌라 바닥엔 신발과 옷가지 등이 널려 있었다. "어머니 건강은 어떠시니?" 걱정스레 말을 건넨 유 계장은 복지재단 장학금 신청 서류부터 내밀었다. 한부모 가정과 차상위 계층 등에 100만 원 상당의 장학금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강양을 추천해볼 심산이었다.

서류 작성을 마치자 유 계장은 강양을 데리고 인근 마트로 향했다. 이른바 '냉장고 채워주기'로, 형편이 어려운 소년들과 함께 장을 보는 프로그램이다. 장 보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외부 기부금을 쪼개 마련했다.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의 보호관찰소 예산으론 수강명령·사회봉사·인건비 등을 감당하기도 벅차기 때문에, 소년 교화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거의 없다. 강양은 양파·달걀 등 신선식품과 동생이 좋아하는 햄과 라면 등 8만 원어치를 담았다.

강양은 "장기보호관찰은 굉장히 질 나쁜 아이들이 받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결국 나도 똑같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 같아 정말 싫었다"고 털어놨다. 강양은 타인 신분증으로 술집에 출입하다가 주민등록법 위반으로 적발된 뒤 소년분류심사원에 인계돼 1·3·5호(보호자 감호위탁·사회봉사명령·2년 보호관찰) 보호처분을 받았다.

유 계장은 오는 11월까지 보호관찰을 받아야 할 강양이 올해 사립대 교육계열 학과에 입학했다고 칭찬했다. 그는 인터넷 강의와 참고서 지원은 물론, 수험표까지 챙겨주며 검정고시와 대학 지원을 독려해왔다. 강양은 "처음엔 인생이 망했다는 생각만 들었다"며 "좋은 일로 만난 것도 아닌데 자꾸 챙겨주시니 '나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뭔가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집보다 지옥 같은 심사원이 낫다"던 소년…대학 새내기로

성남보호관찰소 유기환 소년주무계장이 15일 오후 경기 성남시 중원구 한 소년 보호관찰대상자 자택에 방문해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유지 기자

강양과의 장보기를 마친 유 계장은 근처 옥탑방에 혼자 사는 유모(18)군에게 발길을 돌렸다. "집에 있을지 모르겠네." 예정에 없던 방문이었다. 방에 들어서자 가득찬 종량제 쓰레기 봉지들이 그를 반겼다. "아직도 안 치웠냐"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상담은 받고 있고?" 잔소리는 이어진다. 유군은 외부에서 기부금을 받아 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ADHD)를 치료 중이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시간이 없다"는 대답에 유 계장은 한숨을 쉬었다.

유군은 기자에게 "솔직히 (보호관찰이) 많이 귀찮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기별 없이 찾아온 유 계장을 향해 "엄마가 '월세 내줄 테니 혼자 나가 살라'더니 지금은 나를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생활비 마련하기도 버겁다"고 토로했다. 유 계장은 유군이 어머니가 재혼한 뒤 계부와 사이가 틀어지면서 방황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유군의 옥탑방과 부모의 거주지는 고작 100m 거리였다. 유 계장은 "그래도 가족인데 노력해보자"고 다독이곤 씁쓸히 방을 나섰다.

유군은 수년 전 대중교통에서 여성의 신체를 만지다가 공중밀집장소 추행죄로 두 차례 적발됐다. 두 번째 적발 때는 5·8호(2년 보호관찰·소년원 1개월 입원) 처분을 받았다. 유군은 "심사원 좁은 방에서 한 달간 22명이 지옥같이 생활하면서 많이 반성했다"며 "소년원에선 혼자 방을 써서 나쁘지 않았다. 집에서 떨어져 있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고 했다. 집보다 '지옥'이 마음 편했다는 솔직한 대답이었다.

유 계장과 유군의 동행은 2020년 8월 보호관찰을 시작한 뒤 올해가 3년째다. "원래 사람을 믿지 않는다"는 유군은 유 계장과의 첫만남에선 회피만 하다가 면담 횟수가 늘어가자 조금씩 입을 열었다. 유군은 올해 전문대 건축 관련 학과에 입학했다. 강양과 유군을 만난 유 계장은 이후 두 가정을 더 방문한 뒤 해가 질 무렵에야 보호관찰소로 발길을 돌렸다.

보호관찰관 "지은 죄 알려주는 처벌, 반성케 하는 건 교화"

성남보호관찰소 유기환 소년주무계장이 15일 오후 경기 성남시 중원구 한 소년 보호관찰대상자 가정 출장 면담에서 검정고시 수험표를 건네며 지도하고 있다. 이유지 기자

30년간 소년범들을 곁에서 지켜본 유 계장은 소년법 폐지 주장까지 나오는 최근 상황이 우려스럽다. 유 계장은 "올해 내가 담당하는 5명이 대학에 진학했고, 그중엔 보호관찰을 5회까지 받은 소년도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이 정도면 보통 '교화가 안 될 것'으로 보는데, 꾸준히 관심을 가져주니 태도가 180도 달라졌고 재범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고 전했다.

유 계장은 "소수의 강력범죄가 부각되면서 소년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졌는데, 잘못을 알려주기 위해 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하는 것은 필요하다"면서도 "다만 소년들을 반성하도록 하고 재범률을 낮추는 게 목적이라면 처벌 강화보다 교화가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호관찰소로 돌아오는 아이들은 대부분 고개 숙이고 미안해한다. 스스로 잘못을 가장 잘 알 테니 매번 선입견 없이 대한다"고 했다.

지역사회 반발에 '더부살이'…"소년 교화 국가만의 일 아냐"

시각물=신동준 기자

22일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보호관찰관 1인당 관리 대상자는 106명에 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7.4명과 비교하면 세 배 가까운 수치다. 각국의 소년 보호관찰 현황은 정확히 집계되지 않지만, 한국은 소년 보호관찰관 역시 1인당 47.3명을 담당해 업무 부담이 적지 않다.

소년 보호관찰관은 교사·복지사·경찰 역할을 동시에 하기 때문에, 다양한 비행 형태에 대응할 여력이 부족하다. 또한 정부 지원 예산이 부족해 교화 프로그램 대부분은 기업과 재단 등의 도움으로 운영된다. 소년들의 자립성과 사회성을 길러주기 위한 인프라 역시 부족한 실정이다.

성남보호관찰소 박상순(왼쪽) 관찰과장과 유기환 소년주무계장이 15일 본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이유지 기자

보호관찰관들은 '지역 사회의 무관심'에 섭섭함이 크다. 성남보호관찰소만 해도 2013년과 2019년 분당구 서현동과 야탑동으로 이전을 시도했다가 학부모 수천 명이 반대 시위를 하면서 무산됐다. 결국 관할이 경기 광주·하남·성남인데도,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보호관찰소 3층에서 10년 가까이 더부살이하는 처지가 됐다. 이 때문에 출석·출장차 100㎞를 오가기도 한다.

성남보호관찰소에서 만난 박상순(57) 관찰과장은 "소년들을 병원에 데려갔다 오는 길에 '범죄자 집단 보호관찰소 결사반대' 플래카드를 봤다"며 "한 아이가 '선생님, 저희가 범죄자인가요'라고 물었는데, 소년 업무를 담당해온 15년 동안 가장 아픈 기억"이라고 회상했다.

박 과장은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인용하며 "보호관찰소는 교화로 재범률을 낮추기 위한 마지막 보루로 결국 지역사회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유 계장 역시 "소년이 변하기 위해선 가정과 이웃, 학교와 국가 모두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주민들이 2019년 3월 야탑역 광장에서 열린 성남보호관찰소 이전 반대 촛불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유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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