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좀 풀렸잖아요. 지난주 토요일에만 1,380명 정도 왔어요."
유명 맛집도 아니다. 그저 '빈집'들이 모여 있을 뿐인데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핫플'로 떠오른 용산공원 부분 개방 부지, 옛 미군 장교 숙소 5단지 이야기다. 지난 15일 이곳에서 만난 관리인은 "평일에는 400~500명씩 오는데 젊은 사람들이 많다"며 "(문을 닫는) 일요일에도 개방해달라는 요구가 많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유행 3년차, 해외여행이 어려워지면서 국내에서 이국적인 정취를 품은 장소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특정 국가의 작은 마을을 옮겨 놓은 듯한 관광지나 '외국 같은' 콘셉트를 전면에 내세우는 카페, 식당을 찾아가 당일치기 해외여행을 만끽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SNS 점령한 #미국 같은 #외국 같은
옛 미군 장교 숙소 5단지가 주목받는 건, 단연 낯설고 이국적인 풍경 때문이다. 서울 한복판에 붉은 벽돌로 만든 낮은 건물(이층집)이 널찍한 간격으로 한데 모여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진다. 온라인 쇼핑몰 촬영 장소로도 인기다. 직장인 장혜령(27)씨도 지난가을, 이곳을 찾았다. 정씨는 "외국도 못 나가는데, 사진으로 보니 완전 미국 같아서 찾아 가게 됐다"며 "인기 많은 버스 스톱 자리에서 사진 찍을 때는 줄을 서서 20분이나 기다려야 했다"고 말했다.
경기 동두천에 위치한 '니지모리 스튜디오'는 일본 에도시대를 표방한 테마파크형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다. 드라마 '용의 눈물'로 유명한 고 김재형 감독이 제작비를 아끼자며 아이디어를 내서 만들어진 장소로, 지난해 9월 일반인에게 개방했다. 올 1월 니지모리 스튜디오에 방문한 최주훈(30)씨는 "일본 교토풍이라는 글을 보고 찾아갔는데 건물 외관이나 판매하는 굿즈, 음식 등이 실제 일본과 흡사해 현지에 왔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이런 장소들은 해외여행을 못 가는데 대한 대체재 성격을 가진다"며 "젊은 세대들이 SNS에 공유하고 '좋아요'를 받기 좋은, '경험 소비'를 하기에도 적합한 장소"라고 설명했다.
'인스타그래머블'이 기준... 뷰, 인테리어가 주인공
카페, 식당도 맛은 기본이고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을 의미하는 조어)'해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성수동 속 뉴욕' '명동 속 피렌체'와 같은 콘셉트가 성공률이 높다.
서울 중구 명동성당 맞은편에 자리한 에스프레소바 '몰또'는 이미 '이탈리아 한 잔을 마시는 가게'로 유명하다. 에스프레소라는 비교적 낯선 커피 문화를 명동성당과 남산타워라는 색다른 풍경을 바라보며 경험하도록 하자, 개업 후 바로 핫플로 떠올랐다.
지난해 11월 경기 광주에 문을 연 디저트 카페 '머메이드 레시피'도 미국 가정집을 콘셉트로 했다. 자매가 운영하는데, 1년 반 동안 미국, 독일, 영국에서 빈티지 가구, 소품, 페인트, 벽지 등을 손수 구입해 고증하듯이 인테리어했다. 머메이드 레시피 대표는 "미국 영화를 참고해 레트로 감성을 구현하고자 했다"며 "'외국 같다'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는 손님들 반응이 제일 많다"고 말했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은 "팬데믹 전에는 카페, 식당에 가서 대체로 음식을 찍었다면 이제는 사진의 주인공이 뷰 또는 인테리어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남들보다 더 맛있고 비싼 음식을 먹는 것보다 시각적으로 더 좋은 것을 보러 다니는 데 가치를 두기 시작했다"며 "카페가 점차 대형화되는 것도 인테리어나 뷰가 중요해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