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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예미정 "종가음식,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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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예미정 "종가음식,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입력
2022.03.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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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남 예미정 종가음식 연구원 원장
안동에는 90여 종가와 고유의 내림 음식 존재
세계인들에게 한식의 감동 선사하고 싶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종가음식 100선 레시피 준비 중


박정남 예미정 종가음식연구원장. 예미정 종가음식 연구원 제공

박정남 예미정 종가음식연구원장. 예미정 종가음식 연구원 제공


"음식 잘못했다고 목을 맨 종부도 있었다."

경북 안동 종가집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본 이야기다.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아니면 후손을 경계하기 위한 꾸밈이었는지는 모르나 종가 음식 장만이 그만큼 위중하다는 의미인 것만은 틀림없다.

종가 음식이란 종손과 종부가 집안 어른을 공양하거나, 조상을 모실 때, 혹은 손님을 대접할 목적으로 마련하는 대문중의 내림 먹거리다. 이 음식은 당연히 그 집안 대대로 어어져 오는 독특한 전통과 비법이 집약돼 있다. 단순히 한 끼를 떼우는 음식이 아니라 누대로 내려온 가문의 저작 문화가 응집된 결정체라 할 수 있다.

경북 안동시 정상동 502의 1 종가 음식 전문점인 예미정은 예천에서 1995년, 안동 진성이씨 의인공파 14대 며느리로 시집온 박정남(53)씨가 사장 겸 종가음식연구원장으로 있다. 박 원장은 시집온 후 종부로서 가장 신경 쓰이는 명절 및 기제사를 지금까지 매년 수 십번씩 지냈지만 어른들로부터 "음식이 잘못됐다"는 꾸중이나 지적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타고난 종가 음식 명장인 셈이다.

박 원장은 종부 역할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종가와 특별한 인연이 없는 일반인들에게 종가 음식을 완상하거나 음미할 기회를 주기 위해 예미정을 열었다. 2015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예미정은 이제 본채 1,320㎡(400평), 별채 330㎡(100평)에 연간 매출액이 15억원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박 원장은 예미정의 재정적 성공보다는 국내 일반인은 물론 외국인들에게 우리의 전통과 음식 문화를 제대로 알리고 전파하는 데 더욱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예미정이 오리지널 종가 음식만으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종가 음식의 기본과 전통은 유지하되 일반인들의 입맛도 사로잡을 '플러스 알파'를 가미했기 때문이었다. 종가 음식 전문가를 넘어, 보다 '대승적 요리 전문가'로 거듭나기 위해 도전을 거듭해 조리 기능장에도 올랐다.

종가 음식과는 또 다른 일반적인 요리를 다루는 조리 기능장이 됐지만 박 원장은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고 있다. 오히려 종가 음식을 'K-푸드'로 승화시키는 도정에 오르고 있다. "종가 음식은 종가 구성원의 삶이 담겨 있는 우리 고유의 식문화 자산인 동시에 우리 선조들의 삶의 지혜가 녹아 들어가 있는 문화의 결정체"라며 "지금까지는 높은 솟을대문 안 종가집에서만 조리되고 맛볼 수 있었던 먹거리를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 가능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종가 음식은 지방 종갓집의 관혼 상제를 위한 상차림이다. 탄생, 혼인, 죽음, 제사 사례(四禮)를 치르기 위해 정성을 다해 마련한 음식이다.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매개체로서의 음식이 아니라, 반만년 전부터 이 땅에서 생활해온 선조들로부터 이어져오는 삶의 지혜가 고스란히 집약된 우리 음식 문화의 결정판이다. 종가 음식의 특징은 종가집 주변 논, 밭, 산야, 강, 바다에서 조달한 무공해 재료를 이용, 문중마다 전해져 내려오는 다양한 조리법으로 완성한 웰빙 음식이다. 안동이 종가 음식의 대명사로 인정받는 대표적 이유는 지금도 안동에 90여 종가가 밀집돼 있고 여전히 고유의 내림 음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안동은 종가 음식의 보물창고인 셈이다.


박정남 예미정 종가음식연구원장은 “종가 음식은 우리 선조들의 삶의 지혜와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문화유산이다"고 설명했다. 예미정 종가음식 연구원 제공

박정남 예미정 종가음식연구원장은 “종가 음식은 우리 선조들의 삶의 지혜와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문화유산이다"고 설명했다. 예미정 종가음식 연구원 제공


종가 음식은 조리의 시작점부터 다른 음식과 구별된다. 우선 식재료 선택부터 특별하다. 종부가 시장에서 제수물 식재료를 구입할 때, 최상품을 선택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격을 깍지도 않는다. 이것만 봐도 어떤 마음가짐으로 음식을 대하는지 알 수 있다. 식재료 갈무리, 식재료 조리, 상차리기 등 일련의 조리 과정에서 나타나는 예의와 정성은 다른 음식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극진한 봉제사 접빈객 정신은 요리사가 음식에 혼을 불어넣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식을 마주하는 사람 또한 의관을 정제해 예의를 갖춘다. 우리 문화에 있는 시제 음식의 특수성과 품격이 식탁 문화에 나타나는 것이다. 선조들의 격조 높은 생활상을 보여주는 좋은 일면이기도 하다. 박 원장은 "종가음식은 한식의 세계화 측면에서도 차별화하여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며 "세계인들 사이에서 나날이 높아 가는 K-POP, K-드라마의 위상처럼 종가음식 또한 세계인들 사이에서 사랑받는 K-푸드가 될 수 있다. 종가 음식은 우리의 전통 음식 중에서도 대표 건강식이자 슬로우 푸드다"고 진단했다. 박 원장은 또 "우리의 자랑스런 전통 문화인 종가 음식을 세계인들에게 알리고 접근성을 높여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시스템 구축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수준 높은 문화와 보물 창고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활용도 측면에서 볼 때 아쉬움이 많다. 소위, 세계 음식 강국들은 프랑스, 중국, 일본, 이탈리아, 태국 등을 꼽는다. 같은 아시아권인 일본은 일식 세계화를 위해 정부 기관까지 동원되고 있고, 태국은 총리가 바뀌어도 타이 푸드 관할 장관은 바뀌지 않는다. 그 만큼 범국가적 지원체계를 구축해 놓고 있다는 뜻이다. 박 원장은 "종가 음식은 우리 선조들의 삶의 지혜와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문화유산이다"며 "종가 음식에 대한 관심과 자부심을 가져 주길 바란다. 우리나라의 높아진 국격 만큼이나 종가 음식 역시 식재료 선택, 식탁 문화, 요리인 자세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정리,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종가 음식의 전통을 지속계승 발전시켜 나간다면 종가 음식의 세계화 또한 그리 먼 훗날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박 원장은 음식 연구뿐만 아니라 대경대 외식창업조리과에서 한국의 발효식품, K-푸드와 관련하여 60명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후진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최근 종가 음식을 토대로 상용 가능한 퓨전 메뉴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입맛에 맞고 웰빙, 힐링 시대에 걸맞는 종가 음식을 개발, 한정식 일색에서 탈피해 세계인들에게 또 다른 한식의 감동을 선사하고 싶어요. 그 일환으로 누구나 알기 쉽고 조리하기 쉬운 안동 종가음식 100선 레시피를 준비 중입니다. 종가 음식의 유래 및 요리법 등을 상세히 기재해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대중들 곁으로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박상은 기자 subutai117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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