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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아아' 밀어내는 에스프레소! 어디까지 먹어봤니?

입력
2022.03.19 08:0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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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에스프레소의 역사

편집자주

※이용재 음식평론가가 격주 토요일 흥미진진한 역사 속 식사 이야기를 통해 ‘식’의 역사(食史)를 새로 씁니다.

30ml 이하의 커피 농축액을 에스프레소라 부른다. 에스프레소는 모든 커피 음료의 바탕이 되는, 커피 맛과 향의 정수다. 게티이미지뱅크

30ml 이하의 커피 농축액을 에스프레소라 부른다. 에스프레소는 모든 커피 음료의 바탕이 되는, 커피 맛과 향의 정수다. 게티이미지뱅크

앗 뜨거. 언제나처럼 에스프레소를 입 안에 털어 넣다가 깜짝 놀랐다. 이렇게 뜨거울 수가. 압구정동 현대백화점에 있는 커피 매장이었다. 커피와 에스프레소의 본고장인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원두를 추출해 준다고 했다. 그래서 에스프레소 한 잔 가격이 김밥 한 줄보다 비싼 6,500원인데 온도도 못 맞춰 내다니. 입 천장이 홀랑 데어 화끈거리는 가운데 항의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허무해서 그냥 돌아섰다.

그리고 일주일쯤 뒤, 이번에는 연남동에서 비슷하게 뜨거운 에스프레소를 만났다. 요즘 유행이라는 에스프레소 바로 원래 한 잔에 5,000원이지만 서서 마시면 3,000원대로 가격이 대폭 싸지는 곳이었다. 전문점인데 뜨거워서 바로 마시기 힘든 에스프레소를 내다니. 역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에스프레소는 영어로 '익스프레스', 즉 '특급'이라는 뜻이다. 커피의 정수만 빨리 뽑아내 호로록, 서서 단숨에 들이키고 갈 길을 마저 갈 수 있는 음료라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탈리아 로마의 3대 카페로 꼽히는 '산 에우스타키오 일' 매장 앞 테이블에 에스프레소 한 잔이 놓여 있다. 로마=AFP 연합뉴스

이탈리아 로마의 3대 카페로 꼽히는 '산 에우스타키오 일' 매장 앞 테이블에 에스프레소 한 잔이 놓여 있다. 로마=AFP 연합뉴스

그런데 뜨거워서 바로 마실 수가 없다니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일주일 간격을 두고 연속으로 만난 두 잔의 뜨거운 에스프레소는 새삼 충격적이었다. 2018년 기준으로 한국의 성인 1인당 커피 소비량은 353잔이다. 세계 기준이 연 127잔이니 무려 2.7배만큼 많이 소비한다. 그만큼 원두 커피 문화가 급속도로 성장했으니, 맛은 없을지언정 뜨거운 에스프레스는 더 이상 찾아보기가 쉽지 않아졌다. 게다가 2019년에는 바리스타 세계 챔피언(전주연)을 배출할 정도로 한국의 커피 문화는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돋움했다.

그런 가운데 뜨거운 에스프레소를 일주일 간격으로 연달아 만나다니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 어떤 퇴보의 조짐은 아닐까? 노파심이 들어 에스프레소의 역사를 간략하게 준비했다. 커피 또한 인류와 더불어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식재료이므로 전체의 역사를 정리하자면 끝이 없다. 일단 저 먼 옛날 에티오피아의 염소치기 소년 칼디의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특정 열매를 먹은 염소들이 유난히 들뜨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바람에 커피나무의 존재를 발견했다는 커피의 기원설 말이다. 일단 그 정도로 맛만 보고 근대로 훌쩍 넘어와 보자.

에스프레소, 커피 맛과 향의 정수

에스프레소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아주 강한 블랙 커피이다. 커피콩을 부숴 포터필터라는 도구에 담고 탬퍼로 눌러 준 뒤 88~93도의 물을 9기압 이상의 압력으로 분사해준다. 온도와 압력, 그리고 커피 콩의 양과 누른 정도 등의 요인이 맞아떨어지면 얻을 수 있는 30ml 이하의 커피 농축액을 에스프레소라 일컫는다. 커피 콩을 볶아 활성화시킨 맛과 향의 화합물은 지용성이니 따뜻한 물로 녹여내 물과 유화를 시키는 원리이다. 에스프레소는 그야말로 커피 맛과 향의 정수이므로 다른 커피 음료의 바탕 혹은 핵심 역할을 맡는다. 따뜻하거나 찬물에 타면 아메리카노, 우유에 더하면 카페라테가 되는 것이다.

에스프레소를 물에 타면 아메리카노, 우유와 섞으면 라테가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에스프레소를 물에 타면 아메리카노, 우유와 섞으면 라테가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염소치기 소년 칼디의 이야기를 잠깐 꺼냈듯 인류는 오랫동안 커피를 마셔 왔다. 그런 가운데 커피 문화의 전환점이라 할 수 있는 에스프레소의 기원은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커피는 유럽에서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고 당연히 돈벌이의 기회였다. 다만 문제가 있었으니, 한 잔을 추출하는 데 5분이나 걸려 성미 급한 소비자들을 만족시켜 주지 못했다. 이를 기회로 인식한 유럽의 발명가들은 당시의 주 동력원이었던 증기를 활용해 커피 추출 시간을 앞당기려 시도했다.

그리하여 많은 기계가 발명되고 특허가 출원되는 가운데, 현대 에스프레소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기술은 토리노의 안젤로 모리온도가 발명했다. 그는 '경제적이고도 즉각적인 커피 음료 추출을 위한 새로운 증기 기계'로 1884년 특허를 취득했다. 기계에 딸린 거대한 보일러가 물을 1.5기압까지 가열시키는 한편, 두 번째 보일러가 분쇄한 원두 사이로 물을 쏘아줘 커피를 추출하는 원리였다. 궁극적으로는 오늘날 가정에서 쓰는 커피 머신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원리를 적용한 모리온도의 기계는 오늘날 제대로 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사업가였던 루이기 베제라가 발명한 에스프레소 머신의 모습. 베제라 홈페이지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사업가였던 루이기 베제라가 발명한 에스프레소 머신의 모습. 베제라 홈페이지

하지만 그의 특허는 다음 단계 에스프레소 머신의 단초 역할을 했다. 20세기로 넘어와 1903년, 베네치아의 사업가인 루이기 베제라가 한 잔씩 추출해내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발명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쓰이는 포타필터 등을 도입한 베제라의 머신은 단 몇 초 만에 커피를 뽑아낼 수 있지만 단점이 없지 않았다. 무엇보다 직화에 보일러의 물을 데워야 했기에 물의 온도와 압력을 조절하기가 어려웠고, 이는 고스란히 에스프레소의 완성도에 반영되었다. 일관성이 가장 중요한 에스프레소의 세계에서 들쭉날쭉한 '샷'을 뽑아낸 것이다. 베제라는 이를 개선하고자 노력을 기울였지만 자본이라는 벽에 부딪히고 말았고, 이때 데시데로 파보니가 합류한다.

홍보에 강했던 파보니는 1903년 베제라의 특허를 사 머신의 디자인을 개선했다. 그렇게 커피가 산지사방으로 튀지 않게끔 최초로 압력 방출 밸브를 도입하는 등 여러 면모에서 다듬어진 기계가 1906년, 아이딜(Ideale)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해의 밀라노박람회에 '카페 에스프레소(cafeé espresso)'를 선보인다. 당시 한 시간에 1,000잔의 커피를 추출할 수 있다는 머신이 자리 잡은 카페였다. 이후 점차 발명가인 베제라는 뒷전으로 물러나면서 파보니의 브랜드를 붙인 에스프레소 머신이 전면에 등장하였다. 이 시기에도 발전이 없지는 않았지만, 파보니의 머신은 대체로 장식적인 요인이 덕지덕지 붙는 방향으로 변모했다.

당시의 에스프레소 머신은 정말 한 시간에 1,000잔의 커피를 추출할 수 있었지만 단점을 내려놓지 못했다. 증기에만 의존한 추출이었으므로 커피에서는 유난히 쓰고 탄 맛이 많이 났다. 게다가 어떤 발명가도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자면 약해 빠진 2기압 이상의 압력 증가를 꾀하는 데 실패하면서 에스프레소 머신의 세계는 10여 년 정도 정체기에 빠져들었다.

영국 런던의 바에선 1954년부터 가찌아의 머신을 이용해 에스프레소를 팔기 시작했다. 가찌아 홈페이지

영국 런던의 바에선 1954년부터 가찌아의 머신을 이용해 에스프레소를 팔기 시작했다. 가찌아 홈페이지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지나고 나서야 본격적인 현대 에스프레소 머신이 등장했다. 밀라노의 카페 소유주 아킬레 가찌아 덕분이었다. 가찌아의 머신은 보일러의 증기로 물을 실린더에 주입시킨 뒤 스프링 피스톤을 활용해 총 두 차례에 걸쳐 압력을 올리는 원리였다. 덕분에 에스프레소 머신이 통상적인 2기압의 벽을 깨고 오늘날의 표준이라 할 수 있는 8~10기압으로 추출 가능해졌다. 이처럼 고압 레버를 활용한 가찌아의 머신은 한참 동안 에스프레소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믿어진 크레마를 탄생시켰다. 에스프레소를 막 추출해냈을 때 표면에 일시적으로 맺히는 거품 말이다. 처음 크레마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표면에 떠 오른 커피 찌꺼기라 믿었으니, 이런 선입견을 불식시키기 위해 가찌아는 '카페 크렘'이라는 용어를 새롭게 만들어 내야만 했다.

이탈리아 정부가 에스프레소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지난달 13일 나폴리의 유서 깊은 카페인 '감브리누스'에서 웨이터가 에스프레소를 준비하고 있다. 1860년 문을 연 감브리누스는 헤밍웨이, 오스카 와일드가 찾던 카페로도 유명하다. 나폴리=AFP 연합뉴스

이탈리아 정부가 에스프레소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지난달 13일 나폴리의 유서 깊은 카페인 '감브리누스'에서 웨이터가 에스프레소를 준비하고 있다. 1860년 문을 연 감브리누스는 헤밍웨이, 오스카 와일드가 찾던 카페로도 유명하다. 나폴리=AFP 연합뉴스

그렇게 가찌아의 머신은 약 20년 가까이 왕좌를 누린 뒤 페마에게 자리를 물려준다. 차세대 머신인 페마의 E61의 가장 큰 특징을 꼽자면, 가찌아의 스프링 피스톤 레버로부터 벗어났다는 점이다. 모터로 작동되는 펌프를 활용해 물을 9기압까지 가열하니 더 이상 수동 레버로 에스프레소를 추출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처럼 에스프레소는 과학기술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면 농축된 정수를 맛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데다, 요즘은 여기에 첨단 기술을 몇 개 더 얹는 경향이 있다. PID 제어기를 달아 10분의 1도 단위로 온도를 조절하고, 압력 프로파일링으로 추출 과정을 여럿으로 쪼개 각각 다른 압력을 적용시킨다.

가정용 커피 추출기-모카포트의 역사

가정용 커피 추출기인 모카포트. 게티이미지뱅크

가정용 커피 추출기인 모카포트. 게티이미지뱅크

이처럼 에스프레소가 책임져 주는 에스프레소의 세계는 가정의 커피 애호가들에게 아직 그림의 떡일 수 있다. 가정용 에스프레소의 세계 또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 상업용에 뒤지지 않는 압력을 내어 주기는 머신이 있기는 하다. 다만 유지 관리에 품이 만만치 않게 드는 데다가 예열 등의 준비 과정을 거쳐야 하니 고작 하루 한두 잔을 마시기 위해 두는 게 아까울 수도 있다.

하지만 낙심할 필요는 없다. 설사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저비용으로 높은 효율을 낼 수 있는 가정용 커피 추출기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을 하나만 꼽자면 단연 모카포트이다. 각진 알루미늄의 현대적이고도 공업적인 팔각형 디자인만으로도 눈길을 끄는 모카포트의 역사는 상업용 에스프레소 머신에 뒤지지 않는다. 1933년 루이기 디 폰티가 발명한 '모카 익스프레스'를 알폰소 비알레티가 다듬어 오늘날 커피의 상징 중 하나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 커피의 추출 및 보관이 하나의 기기에서 일어나는 일체식 디자인인 데다가 내장 필터를 활용해 별도의 유지 관리비도 필요하지 않다는 점에서 모카포트의 디자인에 적용된 혜안이 빛난다. 포트 전체를 불에 올려놓으면 맨 아랫부분의 물이 끓어오르며 그 위의 필터에 담긴 커피를 통과해 윗부분에 담기는 원리이다.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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