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정유사들이 올 1분기에도 유가 상승 등의 효과로 고실적 행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정유사들 속내는 편치 않다. 유가가 오르면 휘발유 같은 석유제품 가격도 덩달아 뛰는데, 이는 자칫 '수요 급감'이란 부메랑이 돼 정유사를 강타할 수 있기 때문이다.
1분기 정유사 실적 기대감 크긴 한데
15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 에쓰오일(S-OIL), 현대오일뱅크, GS칼텍스 등 국내 빅4 정유사는 올 1분기(1~3월)에 무난히 '어닝 서프라이즈(깜짝 실적)' 수준의 실적을 낼 걸로 전망된다.
증권가는 SK이노베이션의 1분기 실적(컴퍼니가이드 집계)을 매출 15조4,886억 원, 영업이익 6,598억 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난해 1분기보다 매출은 67%, 영업이익은 31% 높여 잡은 것이다. 최근 들어선 1조 원대 영업이익을 점치는 증권사(유안타)가 나올 만큼 실적 기대감은 계속 커지는 상황이다. 에쓰오일도 1분기 영업이익 전망치가 6,538억 원인데, 이는 기존 분기 기록(6,408억 원)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반면 석유화학사들은 1분기 실적에 비상이 걸렸다. 석유화학제품의 기초 원료로 쓰이는 나프타는 원유에서 뽑아내는데, 최근 원유 가격이 뛰면서 나프타 가격도 치솟아 원가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선 LG화학(-39%), 롯데케미칼(-75%), 금호석유화학(-31%) 등 주요 석유화학사들의 1분기 영업이익이 1년 전보다 대폭 줄어들 걸로 예상한다.
정유업계 "지금 상황은 비정상"
정유업계는 연초 시장 전망을 크게 웃도는 호실적이 점쳐지는 상황이지만 정작 내부에선 불안감이 적지 않다. 정유사들은 원유를 수입해 정제한 뒤 이를 다시 휘발유, 경유 등으로 만들어 수출한다. 정유사는 들여온 원가(원유가격·수송비 등)보다 비싼 값에 제품을 팔수록 돈을 버는데, 이를 정제마진(제품가격-원가)이라고 한다.
한화투자증권에 따르면, 이달 초 정유사 정제마진은 배럴당 15.7달러로 지난해 하반기(6.9달러)보다 배 이상 높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정유제품 가격도 덩달아 뛴 덕분이다.
페트로넷에 따르면, 지난 9일 국제 경유가격은 배럴당 180달러로 일간 기준 사상 최대 수준까지 치솟았다. 통상 유가(두바이유 기준)에 15달러 안팎의 마진이 붙어 제품가격이 매겨지는데, 이날은 이례적으로 40달러 수준의 마진이 붙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글로벌 원유 공급 차질로 석유제품 공급도 줄어들 거란 우려에 시장 수요가 대거 몰린 여파였다. 유가가 뛰면 정유사가 기존에 보유한 원유 가치도 올라가 회계상 재고자산 평가이익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비정상 상황이 계속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유가 급등으로 경기는 나빠지는데 제품 가격만 오르면 수요 급랭으로 이어져 큰 타격을 받는다"며 "재고자산 평가이익도 유가가 내리면 다시 환원되는 개념이라 수요 급감이 가장 불안 요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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