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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숨통 조여오는 러… '안전지대' 서부까지 공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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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숨통 조여오는 러… '안전지대' 서부까지 공습

입력
2022.03.13 19:40
수정
2022.03.14 07:4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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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국경에서 불과 25㎞ 떨어진 군 기지 공격
러시아군 공격에 미국 언론인 1명 사망·1명 부상
러, 친러 괴뢰 정부 세우기 본격화
헤르손에 '자치 공화국' 설립 시도
젤렌스키, 이스라엘에 중재 요청

10일 우크라이나군이 수도 키이우 인근에서 경계를 서고 있다. 키이우=EPA 연합뉴스

10일 우크라이나군이 수도 키이우 인근에서 경계를 서고 있다. 키이우=EPA 연합뉴스

러시아의 공세가 거침없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턱밑까지 진격하며 포위망을 좁히는 데 이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폴란드 국경과 인접한 서부 지역까지 공습을 감행하며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점령지에는 친(親) 러시아 괴뢰정부를 세우면서 우크라이나에서 떼어 내겠다는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물밑 협상을 이어가면서 휴전 기대감이 커졌지만 ‘마이동풍’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앞에 외교적 해법이 파고들 자리는 크지 않아 보인다는 관측이다.

서부 르비우까지 공격...전선 전역으로 확대

개전(開戰) 18일째인 13일(현지시간) 폴란드 국경에서 불과 25㎞ 떨어진 서부 르비우의 ‘국제평화유지안보센터(IPSC)’에 러시아 미사일 30발이 떨어지면서 최소 35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했다. 르비우 남쪽 이바노 프란키우스크 공항에서도 폭발이 일었다. 그간 우크라이나 북·남·동 지역에 집중했던 러시아군의 공격이 폴란드 등 나토 회원국과의 접경 지역으로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얘기다. 자칫 러시아의 공격이 국경을 넘어갈 경우 나토와의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 로이터통신은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의 최서부에 감행된 공격"이라고 설명했다.

르비우가 국경을 넘으려는 피란민이 지나는 지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무고한 목숨이 희생될 가능성도 더욱 커졌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몇 주간 서부 지역은 피란민과 언론인, 외교관 등에게 안전한 피난처였다”며 “우크라이나에 더 이상 평화로운 곳은 없다”고 단언했다.

수도 키이우도 위태롭다. 영국 국방부는 대규모 러시아 지상군이 키이우 도심에서 북서쪽으로 25㎞ 떨어진 지점까지 밀려왔다고 밝혔다. 외곽에서 일주일 이상 멈춰 있던 64㎞ 길이 러시아군 수송 행렬이 분산 재배치된 모습도 포착됐다. 즉각적인 급습이 아닌, 장기 포위 공격을 위한 움직임이란 분석이다. 마티외 불레그 런던 채텀하우스 연구원은 "매우 긴 소모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키이우 주변 위성도시는 폐허가 됐다. 이르핀시(市)에서는 연일 격전이 이어지면서 거리와 공원에 시신이 널려 있다는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이르핀 시에서는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미국 유명 영상 언론인인 브렌트 르노(51)가 숨지고 동료 한 명이 부상 당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취재하는 서방 언론인이 사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키이우를 사이에 둔 본격적인 공방전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우크라이나군도 전투 태세를 갖추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키이우를 점령하려면 도시에 있는 모든 우크라이나인을 없애야 할 것”이라며 전의를 다졌다.

12일 우크라이나 키이우 인근 이르핀시에서 군인과 시민들이 시신을 옮기고 있다. 이르핀=로이터 연합뉴스

12일 우크라이나 키이우 인근 이르핀시에서 군인과 시민들이 시신을 옮기고 있다. 이르핀=로이터 연합뉴스


푸틴, 점령지에 '괴뢰정부' 야욕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점령 이후 계획은 점점 구체화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러시아군이 점령한 남부 멜리토폴에서는 친러 성향의 갈리나 다닐첸코 전 시의회 의장이 새로운 시장으로 임명됐다. 러시아군에 반기를 들던 이반 페도로프 시장이 테러 혐의로 체포된 지 하루 만이다. ‘꼭두각시’를 앉혀 점령지를 입맛대로 통치하겠다는 뜻이다. 우크라이나 남부 소도시 드니프로루드네 시의 예브헨 마트베예우 시장도 13일 러시아군에 의해 납치됐다.

12일 우크라이나 멜리토폴에서 시민들이 러시아군의 이반 페도로프 시장 납치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멜리토폴=로이터 연합뉴스

12일 우크라이나 멜리토폴에서 시민들이 러시아군의 이반 페도로프 시장 납치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멜리토폴=로이터 연합뉴스

3일 손에 넣은 남부 헤르손주(州)에서도 친러 자치정부를 세우기 위해 주민투표를 계획한다는 의혹이 나왔다. ‘민주적 절차’를 악용해 이 곳을 우크라이나 땅이 아닌 ‘헤르손 인민공화국’으로 만든다는 얘기다. 일단 이날 주의회가 “헤르손은 여전히 우크라이나 영토”라는 결의안을 채택하긴 했지만, 러시아의 입김이 점차 강해지는 만큼 바람 앞 등불 신세다. 러시아군이 친러 인사를 내세워 새로운 집행부를 꾸리고 주민투표를 강행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동부 돈바스 지역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처럼 만든 뒤 분리 운동을 촉진시키려는 전략인 셈이다.

‘성공 전례’도 있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 점령 때도 주민 투표를 시행했다. 당시 친러 성향의 시민들은 96.8%의 압도적 찬성표를 던지면서 크림반도를 러시아 영토로 귀속시켰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분열시키기 위해 괴뢰 정부를 만들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2일 트위터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협상팀이 구체적 사안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어 양측을 중재하고 있는 나프탈리 베네트 이스라엘 총리에게 예루살렘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정상 회담을 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프랑스 엘리제궁은 프랑스와 독일, 러시아 정상의 전화 회담 직후 "우리는 푸틴 대통령에게 전쟁을 끝내려는 의지를 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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