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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차 큐레이터가 말해준다 "중앙박물관, 더 알차게 이용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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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차 큐레이터가 말해준다 "중앙박물관, 더 알차게 이용하려면..."

입력
2022.03.12 04:3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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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에세이집 '한번쯤, 큐레이터' 발간

전시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큐레이터로 20여 년 일해온 정명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이 8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의 대표 소장품인 개성 경천사지 10층석탑 앞에 서 있다. 최주연 기자

전시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큐레이터로 20여 년 일해온 정명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이 8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의 대표 소장품인 개성 경천사지 10층석탑 앞에 서 있다. 최주연 기자

"박물관 하면 멀게만 느껴지는 분들 많으시죠. 이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 이 안의 사람들 이야기가 밖으로 많이 안 나간 것 같아요. 그런 우리 이야기를 좀 더 들려주면 '몰랐는데 나 박물관 좋아하네'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지 않을까요."

2002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중박)에서 일하고 있는 21년 차 큐레이터 정명희(49·학예연구관)씨의 말이다. 그는 유물이나 작품을 관리·조사하고 전시, 홍보 활동을 한다. 2018년 그가 기획하고 올린 특별전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은 한국 문화재 전시 중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찾은 기록을 갖고 있다. 지난 8일 서울 용산구 중박에서 만난 그는 전시의 성공을 가른 요인으로 '박물관과 나와의 연결고리'를 꼽았다. "무겁게만 접근하지 않고, 고려인들도 현재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며 접점을 만들어준 게 통했죠."

그가 매일 박물관에 출근하며 겪은 일을 담아 지난해 11월 출간한 에세이집 '한번쯤, 큐레이터' 역시 마찬가지다. 박물관과의 첫 접속을 돕는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 큰맘 먹고 한번 박물관에 가는 사람들에게 슬쩍 들이미는 친절한 '중박 사용 설명서'인 셈이다.


정명희 학예연구관은 지난해 출간한 에세이집 '한번쯤, 큐레이터'를 통해 박물관으로 매일 출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최주연 기자

정명희 학예연구관은 지난해 출간한 에세이집 '한번쯤, 큐레이터'를 통해 박물관으로 매일 출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최주연 기자

정씨는 "취향을 찾는 데는 중박이 제격"이라고 말했다. 대규모 기획·특별전뿐 아니라 시대와 주제별로 꾸민 6개 상설전시관에서 연중 크고 작은 전시를 하는 '유물 백화점'이기 때문이다. 특정 기간이 아니면 못 보는 특별전은 '기간 한정판'이어서 "안 보면 손해"다. 상설전도 놓치기 아깝다. 1층 조선실, 2층 서화실과 불교회화실, 3층 중앙아시아실, 일본실은 매년 전시물을 교체한다.

요즘 시국엔 세계문화관도 추천할 만하다. "코로나19라는 어려움을 뚫고 우리에게 와준 전 세계 유물"을 통해 "역사적 균형 감각을 익히기" 딱이다. 5월엔 멕시코 등에서 찾아오는 '아즈텍 문명전', 7월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소장품 전시, 10월 '비엔나 명화전, 합스부르크 왕가의 보물'전 등을 줄줄이 연다.


정명희 학예연구관은 "박물관과 박물관에서 일하는 우리 이야기를 듣고 '몰랐는데 나 박물관 좋아하네'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주연 기자

정명희 학예연구관은 "박물관과 박물관에서 일하는 우리 이야기를 듣고 '몰랐는데 나 박물관 좋아하네'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주연 기자

맛집에 가면 일단 시그니처 메뉴를 시키듯 반가사유상이나 신라 금관 같은 이른바 '명품 유물'을 훑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중박 홈페이지에는 주요 유물 30선 등이 공개돼 있다. 매년 초파일이 되면 내거는 10m가 넘는 대형 불화('괘불') 전시도 볼거리다. 이팝나무길, 자작나무길, 거울못 등 한가로이 거닐 수 있게 마련된 야외정원은 중박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큐레이터는 보수에 비해 높은 학력수준과 전문성, 꼼꼼함, 열정을 요구하는 직업이다. 그 역시 전시 원고 교정을 보다 진통이 와서 첫 아이를 낳은 기억이 생생하다. 둘째를 얻은 후 산후조리원에서도 어김없이 교정을 봤다고 한다. 그럼에도 "시공간을 넘어 실존했던 존재를 만나는 마법의 순간"은 그 고됨을 잊게 한다. 그는 유물 조사를 하면서 알게 된 조선의 승려 장인 혜식의 이름을 꺼냈다. 수차례 화재로 혜식의 불화가 불타 사라지면서 행적이 묘연한 가운데 다른 유물을 조사하다 우연히 그의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지금은 뭔지 알지 못하는 이 조각이 나중에 큰 퍼즐의 일부가 됩니다. 그걸 하나하나 끼워맞추는 경험을 큐레이터라면 누구나 갖고 있죠. 그럴 때 '아, 이거 재미있다. 계속해봐야겠다' 싶어요. 나만 아는 이 이야기들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어서 오늘도 박물관으로 출근하는 사람들, 그게 바로 우리 큐레이터들이랍니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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