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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의 태엽이 느슨하게 풀어지는, 서울의 윌리엄스버그

입력
2022.03.12 04:2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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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서촌

편집자주

부부 소설가인 강보라 박세회 작가가 동네에 얽힌 사회 문화적 단편을 감성적 필치로 담아냅니다.


서촌 통의동 골목길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촌 통의동 골목길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부서 이동을 고민 중이라는 후배 H와 점심을 먹었다. 나와 띠동갑인 H는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모 패션지 디지털 에디터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 등 매체에서 운영하는 각종 SNS 채널에 올라가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그의 일이다. 이제 디지털팀은 잡지사의 핵심 부서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바이럴을 통해 집계된 숫자가 기사의 성과를 판가름하고 매체의 파워를 결정한다. 한때 종이 잡지가 인생의 전부였던 내 또래 에디터들조차 자진해서 디지털 매체로 옮기거나 새로운 일을 찾는 요즘이다.

각설하고, 헐렁한 청바지에 배꼽이 드러난 크롭트 니트, 90년대 말에 유행했던 ‘Y2K’ 스타일로 나타난 H는 뜻밖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자신은 디지털보다 지면이 더 적성에 맞는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는 H는 5G 속도로 빠르게 소비되는 디지털 콘텐츠의 허망함을 이야기하며 볼멘소리로 덧붙였다. “꼰대들은 20대면 무조건 디지털이 적성인 줄 알아요. 저는 서촌에서 전시 보고 MK2 같은 데서 커피 마시는 거 좋아하는 사람인데요.” (MK2는 서촌의 유명 카페 이름이다.)

서촌에서 전시 보고 MK2에서 커피 마시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라. 알 듯 모를 듯한 그 말의 속뜻이 궁금해 사무실로 돌아오는 내내 골똘해졌다. 무엇보다 특정 동네를 자기 정체성의 일부로 여기는 후배의 사고가 흥미로웠다. 생각할수록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었다. ‘좋아하는 동네’가 그 사람의 많은 것을 말해주는 듯한 기분, 다들 알지 않나. 죽마고우들과 제주도에 갔을 때 이효리가 민박 했던 애월읍부터 찾는 친구보다 표선면의 오래된 몸국집을 검색하는 친구에게 더 마음이 가는 것처럼 말이다(순전히 내 경험이다). 어쩌면 소개팅 자리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동네를 밝히는 것이 서로의 성향을 가늠하는 지름길일지 모른다. 데이팅 앱 프로필에 좋아하는 영화나 MBTI 대신 자신이 즐겨 가는 동네를 적어두는 것도 좋겠다. 나이: 29살, 직업: 잡지사 에디터, 취미: 전시 관람, 자주 가는 동네: 서촌.

젊은 부부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따와 이름을 정한 대오서점. 1951년 문을 연 한옥 책방으로 서점 안에 수십 년은 된듯한 책장과 오르간, 장롱 등이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젊은 부부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따와 이름을 정한 대오서점. 1951년 문을 연 한옥 책방으로 서점 안에 수십 년은 된듯한 책장과 오르간, 장롱 등이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9살의 잡지사 에디터 강보라에게도 서촌은 유의미한 동네였다. 마감이 끝나면 야근에 절은 몸을 이끌고 목욕재계하듯 그 동네를 찾았으니까. 그게 꼭 나만의 의식은 아니어서, 월간지 마감이 끝나는 15~16일경 서촌에 가면 경쟁 매체 에디터들을 잔뜩 마주치곤 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은 아니, 놀고 싶지만 감각은 벼리고 싶은 잡지인들에게 서촌에서의 하루는 완벽한 시티 바캉스였을 것이다.

2000년대 후반, 포화상태인 삼청동과 인사동의 대안으로 떠오른 당시의 서촌을 뉴욕에서 온 한 지인은 ‘서울의 윌리엄스버그’라 불렀다. H가 말한 MK2, 눈이 핑핑 돌아가게 멋진 바우하우스 가구들이 보기 좋게 흩어져 있던 그 카페는 동네 주민들과 문화계 인사들의 힙한 사랑방이었다. MK2와 스튜디오 워크룸, 갤러리 팩토리, 서승모 건축사무소 등 당대의 문화 공간들이 함께 오픈한 위탁 서점 ‘가가린’은 또 얼마나 각별했는지. 시인 서정주와 화가 이중섭이 기거했던 일제강점기 때 건물을 전시 공간으로 가슴 벅차게 번역해낸 갤러리 보안여관, 세월의 더께가 뽀얗게 내려앉은 책들이 천장 서까래까지 쌓여 있던 대오서점과 그 곁에 알찬 부록처럼 딸려 있던 문구점 ‘풀’, 넉넉한 테이블과 투박한 찻잔, 예쁘게 닳은 패브릭이 삼박자를 이루던 카페 ‘고희’까지.

1930년대 문학인의 아지트였던 서울 종로구 통의동의 '보안여관' 외관. 서울역사아카이브 제공

1930년대 문학인의 아지트였던 서울 종로구 통의동의 '보안여관' 외관. 서울역사아카이브 제공


통의동, 효자동, 창성동, 누하동, 옥인동, 청운동... 모퉁이만 돌아도 동명이 바뀌는 조붓한 골목을 걸으며 그렇듯 선하고 특별한데 멋지기까지 한 공간들을 구경하다보면 마감 내 곤두섰던 신경이 차분하게 가라앉곤 했다. 온몸의 태엽이 느슨하게 풀어지는 그 느낌이 좋아, 휴일이면 집에서 택시로 1시간 가까이 걸리는 그곳을 이웃 동네처럼 무시로 드나들었다. 당시에는 서촌이라는 명칭 자체도 낯설어서 목적지를 말하면 알아듣지 못하는 택시기사가 많았다. 인왕산 동쪽, 청와대 근처라고 하면 “거길 서촌이라고 해요?” 하고 그제야 신기해하는 식이었다.

결혼 후 북촌에 터를 잡은 내게 서촌은 이제 엎어지면 코 닿는 진짜 이웃 동네가 됐다. 오늘날 윌리엄스버그가 그렇듯 이 동네도 다소 진부해진 것이 사실이나 내가 익히 아는 곳, 언제 가도 실망하지 않을 장소들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반나절 산책은 충분히 보람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산책의 출발점은 경복궁 서문, 영추문 앞이다. 보안여관 신관 ‘보안1942’에 들러 지하 전시 공간과 2층 서점을 둘러보고 1층 카페에서 뜨거운 차로 몸을 덥히면 워밍업 끝. 월급날이 가깝다면 ‘이라선’, ‘더북소사이어티’ 등 서촌의 여러 책방 중 내키는 곳에 들어가 양장 표지를 두른 사진집이나 읽지도 않을 외국 잡지를 몇 권 구입한다. 작은 갤러리들을 바 호핑하듯 총총 돌아다니는 것도 서촌 산책의 큰 기쁨 중 하나. 팩토리2,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눈에 담고 나면 냉장고에 일주일치 식량을 꼭꼭 채워 넣은 듯한 뿌듯함이 밀려온다.

위탁 서점 ‘가가린’ 모습. 서울역사아카이브 제공

위탁 서점 ‘가가린’ 모습. 서울역사아카이브 제공


포토제닉한 카페가 지천인 동네지만 내가 편안해하는 곳은 내부 사진 촬영이 제한된 ‘노멀사이클코페’다. 옥인동 다세대주택 3층에서 간판도 없이 영업하는 이곳에서 쫀쫀한 거품을 올린 ‘폼앤딮’ 한잔 들이켜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치킨 남방가스를 내는 일본 가정식 밥집 ‘누하의 숲’, 이름부터 범상찮은 중식집 ‘중국’도 이미 유명하지만 여전히 나만 알고 싶은 단골 혼밥 플레이스다.

마흔을 넘기니 이 동네 어르신들이 그토록 강조하던 서촌의 인문학적 매력에 뒤늦게 관심이 가기도 한다. 개인적인 이유로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의식적으로 경계하는 편인데도 그렇다. 운 좋게도 내게는 서촌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이웃이 적지 않다. 인터뷰로 인연 맺은 작가부터 하루에도 몇 번씩 문자를 주고받는 친구까지 관계도 다양하다. 나는 이들이 알려주는 고급 정보를 구슬처럼 모았다가 주말 하루 시간을 내어 착착 꿰어내면 그만이다.

불현듯 봄이었던 지난 일요일 아침에는 동 트자마자 택시를 타고 인왕산 등산로로 향했다. 내게는 잡지계 선배인, 서촌에 집 짓고 사는 ‘갤러리 클립’ 정성갑 대표가 최근 한 일간지에 소개한 인왕산숲속쉼터를 보기 위해서다. 1968년 북한이 청와대 기습을 시도한 일명 김신조 사건 이후 경찰 병력이 내무반으로 사용하던 옛 ‘인왕3분초’를 솜씨 좋은 건축가들이 근사한 전망대 겸 쉼터로 바꿔 놓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통창 너머 인왕산 산세가 병풍처럼 펼쳐진 인왕산숲속쉼터 실내에는 잘 정돈된 서가와 창밖을 보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강보라 작가 제공

통창 너머 인왕산 산세가 병풍처럼 펼쳐진 인왕산숲속쉼터 실내에는 잘 정돈된 서가와 창밖을 보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강보라 작가 제공


인왕산숲속쉼터는 어느덧 서촌의 명물이 된 북카페 ‘초소책방’ 뒤편에 있었다. 경사진 계단을 10분가량 올라 도착한 숲속쉼터는 주말 나들이객으로 북적대는 초소책방과는 비교할 수 없이 한산했다. 통창 너머 인왕산 산세가 병풍처럼 펼쳐진 실내에는 잘 정돈된 서가와 창밖을 보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햇볕에 따끈해진 의자에 몸을 묻고 책을 펼치니 시간이 양털구름처럼 흐르는 듯했다. 나서는 길에 우연히 서촌 사는 도자 작가 선생님과 마주쳤다. 여쭤보니 자기는 아침마다 이곳을 찾는단다. 한 손에 펜을 들고 책을 넘기는 그의 귀중한 고요를 깨고 싶지 않아 더 이야기 나누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조용히 돌아 나왔다.

북촌이 양반들이 모여 살던 동네라면 서촌은 중인들의 동네다. 그들이 남긴 시간의 켜를 제대로 감각하는 법은 서촌 사는 안동선 선배에게 배웠다. 프리랜서 기자로 미술을 비롯해 역사, 미식 등에 두루 해박한 선배는 지난 가을 산책길에 나를 이끌고 막다른 골목 끝에 자리한 이상범 가옥으로 발을 옮겼다. 한국의 산천을 독자적인 화풍으로 그려낸 화가 이상범이 30대부터 작고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널리 알려진 박노수 가옥보다 화려함은 덜하지만 그만의 고졸한 맛이 있다며 선배는 너도 한번 이 기쁨을 누려보라는 듯, 툇마루에 앉아 한옥 지붕에 걸린 하늘을 가만 바라보았다. 아는 것과 향유하는 것은 이렇게 다르구나, 그렇게도 헤집고 다녔건만 내가 몰랐던 서촌이 또 하나 있구나 싶었다. 그 마음은 아쉬움보다 안도의 감정에 가까웠다. 내가 사랑하는 동네에 아직 꿰지 못한 구슬이 넉넉히 남아있다는 안도감 말이다.

서촌에 위치한 이상범 가옥은 한국의 산천을 독자적인 화풍으로 그려낸 화가 이상범이 30대부터 작고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문화재청 제공

서촌에 위치한 이상범 가옥은 한국의 산천을 독자적인 화풍으로 그려낸 화가 이상범이 30대부터 작고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문화재청 제공


서촌의 한 갤러리 대표님이 귀띔해준 인왕산 선바위도 부러 아껴놓은 구슬 중 하나다. 1억 8000년 전 중생대 화강암으로, 바위 모양이 스님이 고깔과 장삼을 입고 참선(參禪)하는 것 같다 하여 ‘선바위(禪巖)’라 이름 붙여진 곳. 조선 개국 공신인 무학대사와 정도전이 도성 안에다 두자, 밖에다 두자 설전을 벌였다는 흥미진진한 설화를 품은 바위이자 청와대와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한눈에 품는 전망 명소다.

경복고등학교 교정 안에 있다는 겸재 정선 집터, 통인시장에서 가오픈 영업 중인 예약 전문 술집 ‘사계항’... 원고를 쓰며 핸드폰 메모장을 살펴보니 아직 꿰지 못한 서촌의 구슬이 한 바닥이다. 이러다 좋은 구경 다 놓치고 세월만 보내는 건 아닌가, 내심 조급해지기도 한다. 서촌에서 전시 보고 차 마시기 좋아한다던 H의 말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저당 잡힌 이 도시에서 나는 좀 다른 속도로 살고 싶다는 소박한 항변이 아니었을까. 이번 주말에는 H와 선바위에 올라야겠다.

강보라(소설가ㆍ코스모폴리탄 피처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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