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는 한국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했던 의제들이 제도권 정치의 공론장 복판으로 불려나왔다. 성평등부터 세대 갈등까지 다양한 의제들을 놓고 정당과 국민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의견 차이는 존재할 수밖에 없지만 대결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본투표가 진행된 9일 한국일보에 의견을 보내온 종교인들은 새롭게 선출될 대통령에게 사회적 갈등을 통합하는 정치를 해달라고 당부했다.
"선거 치르며 갈등 커져…차기 대통령은 사회 통합해야"
먼저 한국교회총연합 명예회장을 맡고 있는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정신에 따라 국민을 진정 사랑으로 섬기는 겸손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면서 "특히 이번 선거운동 기간에 온 국민들이 바라고 요청한 것이 국민통합의 정치를 해달라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목사는 이어서 "우리 사회는 지역, 이념, 세대, 남녀 간에 심각한 갈등과 분열을 겪고 있어 공화국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새 정부를 이끌 대통령은 이런 분열과 갈등을 통합하여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이 목사는 다문화 가족과 쪽방촌 주민 등을 거론하면서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가난한 국민들이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해달라고도 당부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반대△한미동맹·국방 강화 △저출산 문제 해소 △동해안 산불 피해자 구호도 주요 과제로 꼽았다.
다른 종교계 인사들도 사회적 갈등을 중재하고 민주적 사회를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진행한 대통령 후보별 정책평가에 참여한 상지종 신부(전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장)는 "대통령 선거는 갈등을 격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서로의 입장 차이를 극대화시켜서 나의 편으로 끌어들이려다 보니 갈등이 표출되고 다양한 주장이 넘친다"면서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주장에는) 근거가 없는 것들도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정치권이) 실제 이상의 강도로 (갈등을) 부추겼던 측면이 크기 때문에 누가 대통령이 되든 간에 현존하는 여러 갈등을 현실적으로 살펴보면서 풀어나가야 한다. 대화와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 신부는 "향후 정부에서 가장 첫 번째 아젠다로 삼고 나아가야 할 부분이 기후위기"라면서 "(주교회의가 진행한) 정책 질의서에도 비중 있게 다뤘던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상 신부는 "탄소 중립 정책은 관료집단 등에서 저항이 클 수밖에 없는 문제이지만 지금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게 아니다"라면서 "많은 국민이 기후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열심히 싸우고 있다. 이 역시 중요한 과제"라고 덧붙였다.
차별금지법 등 일부 현안에선 다른 의견도
차별금지법(평등법) 등 일부 현안을 두고서는 의견이 엇갈리기도 했다. 이 목사는 "마지막으로 새 대통령은 모든 종교의 가치를 존중해주기를 바란다"면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뜻을 밝혔다.
이 목사는 "이 땅의 교회들이 몇 년째 간곡히 차별금지법 제정의 문제점을 지적해 왔는데 새 정부는 이 법의 문제점을 또렷이 인식하여 차별금지법안의 상정으로 인해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이 법은 ‘차별금지’라는 이름과 달리 실제로 소수를 위해 다수를 역차별하는 악법임을 많은 법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다. 우리 기독교는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다름으로 인해 차별받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권은 존중되어야 함을 천명한다"고 밝혔다.
반면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지몽 스님은 '어느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도록 하려면 차별금지법이 꼭 필요하다'고 다음 대통령에게 당부했다. 조계종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지켜왔다. 지몽 스님은 '짐승을 찾는 자는 태산을 보지 못하고, 금을 움켜잡는 자는 사람을 보지 못한다‘는 고사를 인용하면서 "새 대통령(정부)의 아집과 독선, 탐욕의 함정에 빠져서는 국민들의 아픔을 바로보지 못하고 원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어서 지몽 스님은 "지금의 성장중심, 자본중심의 경제성장주의에 함몰되어서는 국민들이 원하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보이지 않는다. 누구나 인간이면 안전하게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지만 현실은 그 바탕이 되어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지몽 스님은 "도덕과 인성이 무너지고 실종되어 가는 현실에서 그 누구도 배제되고 소외되지 않고 함께 나아가야 될 존재임을 자각하고 모두를 위한 (평등법)차별금지법제정을 하므로서 그 단초를 풀어나갈 수 있다"고 당부했다.
지몽 스님은 △일자리 △젠더 △부동산 △고령화 △경제적 양극화에 따른 빈곤과 불평등 △이주민과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등과 관련해 벌어지는 사회적 문제는 모두 민생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차별금지법을 토대로 교육의 장에서 배우고 습득할 때 갈등과 분열의 인식은 전환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기에 "새 대통령과 정부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상호 돌봄으로 의지할 수 있는 그래서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을 중장기적인 계획을 만들고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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